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내 편인 사람은 물론이고 원수 같이 미운 사람도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행복하면 마음이 편안할 테고 예전의 이상한 짓은 덜할 거라는 심산에서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심리상담에 오는 마음은 결국 행복하고 싶다는 아우성입니다.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얼마나 복잡한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든 간에 행복을 원합니다.
행복을 원하는 그 마음이 과녁을 빗나가는 것을 자주 봅니다.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마음.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삶의 조건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기로 마음 먹으면 아무 조건 없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만족과 불만족을 떠나서도 다다를 수 있는 곳이 행복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괴상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를 닦은 사람들이나 성취할 수 있는 경지로 생각을 하거나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운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 시험에 떨어져도 집값이 떨어져도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떨어져도 행복할 수 있느냐, 그게 말이 되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다다른 경지는 아니지만 부처님께서 분명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는 사람들도 행복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세계적인 성인의 말씀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잠깐만 경험을 해보면 행복은 조건에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접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미 나의 눈, 코, 입, 귀, 피부를 통해 뇌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외부의 정보는 걸러지게 되어 있으며 뇌에서는 기존의 정보와 비교 분석을 하면서 나에게 인식 가능한 정보로 탈바꿈시키고 축약한다고 합니다. 오감을 받아들이는 기관의 한계로 인해 우리가 접하는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정보 등은 처음부터 왜곡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뇌과학자들은 우리의 뇌로는 절대적인 현실을 결코 알 수 없다고 하지요. 묘하게도 뇌과학의 이 발견은 종교와 철학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한 지점과 딱 만납니다.
그러니까 비약을 하면(사실이지만 안 믿기니까 비약이라고 표현해보면)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행복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왜곡된 행복인 셈이지요. 행복이라는 것의 기반이 그렇게 탄탄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왜곡돼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면 이왕 왜곡된 내 느낌을 얼마든지 더 왜곡해 볼 수 있지요.
장자나 노자의 관점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차피 비틀린 세상이니 또 다시 비틀면서 유머와 해학을 곁들여 삶을 가볍게 만들어 버립니다. 가끔 천근만근이라고 표현하는 우리의 눈꺼풀은 사실 그리 느껴지는 것이지 피곤하다고 해서 정말로 천 근 만 근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마음도 종이 한 장 차이로 잠깐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갑니다. 비유하자면 아무 객관성이 없는 불행이기에 그 불행이 천근만근 같더라도 어느날 개운하게 잠자고 나면 싹 가실 천근만근입니다.
마음에 너무 큰 비중을 실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은 우리를 아무때나 속입니다. 그리고 겨우 종이 한 장의 무게를 천 근 만 근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우리의 뇌가 그렇게 셋팅되어 있습니다. 틈만 나면 부정적인 정보에 주의를 더 많이 기울이고 부정적인 해석을 하면서 부정적인 기분에 빠지는 호르몬을 다량 분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뇌입니다. 이제 뇌의 신화는 그만들 하십시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언제든지 지옥에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을 수행하는 방법이 맥이 끊기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원래 그런 모양, 그런 꼴이니까요. 불행하기 아주 쉬운 마음이기에 우리는 마음을 잘 관찰하고 잘 다루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지금의 불행에 너무 주의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건 뇌의 조작이요, 마음의 습관입니다. 그런 행위를 반복하면 불행에 더 빠져들고 헤어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행의 조건을 개선하려고 하기보다는 불행 자체에 무관심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불행에 무관심하기. 지금 불행하든 말든 불행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조건에 신경을 꺼버리는 것입니다. 잠깐만이라도 꺼 보세요. 갑자기 깊은 숨이 쉬어지면서 상쾌해집니다. 불행에 집착하지만 않아도 불행은 훨씬 작아집니다. 뭣하러 불행을 확인합니까? 이미 충분히 불행하다면.
그 불행마저도 내 뇌와 마음이 나를 속인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불편한 불행과의 동거는 끝내보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차피 뇌의 착각이라면 이왕 착각할 것, 행복하게 착각하는 것이 낫습니다. 불행의 굴레를 굴리는 것이 마음의 습관이라면 마음을 믿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특히 불행할 때는 내 마음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마음은 불행의 확고한 대변인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자 여기까지 생각해 보았으니, 뇌과학과 인지심리학과 부처님과 예수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라도 행복을 선택해 봅니다.
왜곡하고 비틀어서라도 행복하자.
불행이 이미 왜곡되고 비틀려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