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착한 죄책감, 자책 줄이기

by 나무둘

[1분 인생 힌트] 이상하게 착한 죄책감, 자책 줄이기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미 현실이 충분히 고통스러운 분이 자책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할 때입니다. 이미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만으로 충분히 힘들 텐데 내면에서 또다시 자기를 탓하며 '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이지요.


심리상담에서 거의 매일같이 만나게 되는 죄책감. 착한 사람만 느낄 것 같은 이 죄책감에는 생각보다 음흉한 계략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자책, 죄책감의 수작을 간파해 봅니다.



착한 죄책감은 없다.


자책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되돌아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죄책감을 갖는 것은 양심이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반성 능력이 있는 사람,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때 이 사람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왠지 착한 사람 같지 않나요? 선량한 시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우리는 이렇게 속아 넘어갑니다. 죄책감을 갖고 자책을 하게 되면 내가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이 생깁니다. 죄책감을 갖고 사는 동안, 내가 미안해하는 동안 나는 적어도 양심이 살아있는 착한 사람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의 이미지라. 잠시 적나라하게 파고 들어가 볼까요?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죄책감과 자책을 통해 내 이미지를 거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힘든데 나쁜 사람까지 되는 것은 싫으니까요. 타인에게 또 한 번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정말 너무 아프겠지요. 타인에게 비난받는 것은 외부의 충격이 한 번 더 생기는 것이기에 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자책하고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자책하는 사람을 또 공격할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까요. 그럴 때 우리는 은근히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 수 있습니다.



난 이미 충분히 힘들어.
이렇게나 아프다고.
나 스스로 이렇게 아프게 하고 있잖아.
그러니 더 건드리지는 말아 줄래?



이는 타인의 비난을 피하는 대신 자기 비난을 택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찔리는 것은 너무 아플 것 같으니 차라리 내가 찌르고 말겠다는 셈법입니다. 자가당착입니다. 이리 찔리나 저리 찔리나 또 찔리고 말았으니까요. 정확하게는 이번에는 찔린 것이 아니고 찌른 것이지요. 자기를 보호하려고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자기를 공격하고 만 것입니다. 맙소사. 기막힌 일이지요.


기막힌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자책을 하고 죄책감에 짓눌려 있는 동안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삶의 의욕이 생기고 활기가 넘치나요? 아니지요. 완전히 정반대로 가라앉지요. 이미 잘못된 것 같고 또 잘못할 것 같은 사람은 활력이 넘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행동할 에너지가 없습니다. 행동할 에너지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사고능력도 떨어집니다. 자책과 죄책감을 떨치고 싶다면 앞으로의 삶에서는 더욱 잘 살아야겠지요. 그러면 건설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자책하며 죄책감을 크게 느낄 때에는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이게 자책과 죄책감의 본래 숨겨진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책하는 동안 정녕 책임져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유보하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대단한 착각이 일어납니다. 자책과 죄책감의 심리적 무게를 지고 있는 것만으로 엄청 버거운 짐을 감당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게나 무겁게 내가 뭔가를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책임을 다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어납니다. 정작 현실의 무게는 감당하지 않고 말이지요. 자책한 만큼 그것을 개선할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실제 행동을 바꿔야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일 텐데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무거운 심리적 고통을 지고 있는 마음은 면죄부를 얻습니다. 이 교묘한 마음의 흐름이 보이나요?



자책 대신
자기 책임.

고로 나는 당당하다!



반면에 정말 내 잘못이 맞다고 인정하기에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은 어떻게 움직일까요? 마음이 건강하게 움직인다면 우리는 자책을 한 번 하고 그 자책에 해당하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자기를 만들어서 책임을 전가하는 심리적 연극을 하는 대신 내가 나서서 바로 그 일을 현실에서 책임질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음지에서 면죄부를 얻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 조마조마하는 대신 자책과 죄책감을 완전히 떨쳐 나갑니다. 자책과 죄책감이 근본적으로 줄어들면서 그것들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이 홀가분한 맛이 상상이 되나요? 자책이 아니라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삶의 은근하고도 깊은 맛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예시를 덧붙여 봅니다. 한 상황을 설정해 봅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렸는데 돈을 갚아 버리면 내 생활이 당장 궁색해져서 갚는 것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때 돈을 갚는 대신 이래저래 자꾸 미안해하다고 그러면 그 친구가 고마워할까요? 아 너 미안해라도 하는구나. 그 정도로 자책하다니 그러면 갚지 않아도 돼. 이렇게 말할까요? 친구가 원하는 것은 자기에게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갚는 것이겠지요. 미안함을 받는 것조차 달갑지 않을 테지요. 돈도 빌려줬는데 마음까지 빌빌거리고 있다면 썩 유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친구 입장이라면 어떨지 생각해 보면 뻔히 보입니다. 당당하게 딱 갚고 덕분에 고마웠다고 시원하게 말하길 친구는 원하고 있을 테지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이상하게 착한 죄책감'을 갖고 자책하지 않습니다. 그는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책임을 다 집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당당해지고 자유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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