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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Oct 30. 2022

내가 너무 그리워

당신의 기억은 안녕한가요 (3) : 리사 제노바『스틸 앨리스』(2007)

 내가 너무 그리워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의 가장 큰 비극은, 흉측한 해충의 몸으로 바뀌고도 인간의 의식구조를 유지한 것이다. 만약 몸은 그대로인 채, 벌레의 뇌를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후회 속에 외로워하지도, 잊혀 가는 것에 슬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브레인 스토리』의 저자 수전 그린필드의 표현처럼, ‘두 귀 사이의 물리적 공간’에 불과한 인간의 뇌는 우리 몸의 기관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일을 한다. 우리의 감정과 의식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과학의 관점에서는 고작 뉴런들끼리 주고받는 전기신호의 결과일 뿐일 텐데, 어떻게 인간이 제각기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롭다.


에밀리 디킨슨이 ‘뇌는 하늘보다 넓어’라는 시를 쓴 것도 우주 공간만큼 매혹적인 신비 속에 쌓여 있는 것이 우리의 의식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리라. 인공위성이 발사대를 거쳐 우주 공간으로 날아올라 토성까지 가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 의식 속의 로켓은 수 초 만에 토성을 한 바퀴 돌고 귀환할 수 있다. 그것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궤적을 사용해서 말이다.  


수전 그린필드의 말처럼, 의식은 오직 ‘자신만이 입력하고 호출할 수 있는 세계’이며, 우리의 의식이 우리를 ‘일인칭의 개인적 세계’를 갖도록 만들어준다.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뇌 이식을 받는다면, 다른 장기 이식과는 달리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닐 것이다. 뇌는 우리를 고유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다.


그런데 만일 뇌가 비활성화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미 그런 일은 우리 중 운 나쁜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다. 뇌를 퇴행시키는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휴대폰에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찍힐 때마다 늘 다녔던 길을 처음 온 길처럼 헤매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진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뜻하지 않은 발병으로 건강했던 일상을 갑자기 잃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신은 우리를 향해 러시안룰렛의 방아쇠를 당기는 모양이다. 불행히도 우리 인간은 이런 불확실성을 통제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존재의 상실


소설 『스틸 앨리스』는 신이 아무렇게나 던진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통으로 맞아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불운한 유전자의 발현으로 쉰의 나이에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된 앨리스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며 인지심리학 분야의 저명인사다.


그녀가 이상을 처음으로 감지한 것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청강연자로 강단에 섰을 때다. 원고를 보지 않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수히 강연해 온 주제였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 하나가 끝끝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야 떠올린 그 단어는 ‘렉시콘(lexicon),’ ‘어휘’였다. 앨리스가 곧 급속도로 잃게 될 단어의 무리를 뜻하는 말. 인지 기능 저하로 고통받을 앨리스가 인지심리학 분야의 전문가인 사실만큼이나 우연한 아이러니다.


이 책을 쓴 리사 제노바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신경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병을 앓는 환자 본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그려보자는데 집필 목적을 두어서인지, 앨리스의 내면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느꼈을 충격, 두려움, 소외, 고독이 그대로 전달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고 가정해 볼 때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일까. 아마 내가 알던 나가 없어지는 일일 것이다. 리셋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집 주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알던 사람들의 이름과 모습도 초기화해버린 낯선 나를,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부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설 속 앨리스도 자신이 알던 자기 모습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가장 두려워한다. 100편이 넘는 논문의 저자로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을 받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던 학자이자 교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두렵고, 딸의 생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백지상태 무뇌인이 되어가는 자신이 무섭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특히 사랑하는 남편이 바보가 된 아내를 떠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그녀가 등장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하는 파티 손님들 속에서 외롭다.      


▫️몰개성화


‘낙인’.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이 감내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다. 몸속 다른 기관이 병든 사람들과는 달리 유독 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주홍 글자가 새겨진다. ‘치매 환자, 그것이 제 이름입니다’라고 앨리스가 말하듯이, 이 병의 희생자들은 ‘치매 환자’라는 묶음 속에서 몰개성화된다. 주소가 새겨진 팔찌를 차야 하고, 대화에도 끼어들 수 없는, 그저 다가올 시간이 두려운 사람들. 우리가 그들에게 찍은 낙인은 일반화의 오류 속에서 이미 그들을 죽은 사람으로, 유령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치매 환자들을 위한 강연에서 앨리스는 힘주어 말한다. ‘저는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현재로서는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한다. 아니 싸움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싸워야 할 대상이 없고 치료제도 없기 때문이다. 암과 같이 대상이 분명한 싸움을 할 수 있으면 차라리 낫겠다고 앨리스도 말한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외딴섬에서 점점 고립되어간다. 그의 뇌는 점점 비어 가서, 그가 외딴섬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    

  

▫️여전히 앨리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달라질까. 우리가 기억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것은 틀림없지만, 기억이 소실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기억해주며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일 수 있다. 소설의 제목처럼 앨리스가 ‘여전히 앨리스’일 수 있는 것은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가족들 덕분이다.     


“언젠가 엄마가 저를 몰라보게 된다고 해도 제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건 알 거예요.”
“너를 보면서도 네가 내 딸이란 것도 모르고 네가 날 사랑한다는 것도 모르면 어쩌지?”
“그럼 제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거예요. 엄만 제 말을 믿을 거고요.” (p. 323)  

   

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감정이란 앨리스가 표현하는 것처럼, ‘복잡한 대뇌변연계 회로’ 작동의 결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랑을 가슴으로, 마음으로 느낀다고 말하지만, 마음도 역시 우리 뇌 활동의 결과물이다. 뇌에 손상이 가해지면 감정을 느끼는 일도 표현하는 일도 힘들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치매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노인의 며칠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상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아내의 상태는 위중했다. 언어 대부분은 소실되어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었고 남편조차 몰라봤다. 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남편이 돌아와서 말을 걸면, 아내의 얼굴은 미소가 번지며 환해졌다. 그들이 함께했던 오랜 세월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겠지만, 지금 그녀를 사랑으로 돌보는 그 마음만은 알아본 것이다. 살아만 있어 주면 그걸로 되었다고 극진히 돌보는 마음도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느끼는 마음도 사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뇌과학의 언어가 다 표현할 수 없는 초월적 영역에 속한 그 무엇이다.


소설에서 충격, 두려움, 공포의 감정을 거친 앨리스에게 마지막까지 남겨진 감정도 사랑이다. 검사를 통해 자신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음을 알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는 큰딸에게는 ‘우리가 얻을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자’라고 위로한다. 뛰어난 두뇌를 타고났음에도 대학 진학 대신 연극을 택해서 그동안 안타까움과 원망으로 다그쳐 온 둘째에게는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아 다행이라는 말을 전한다. 결국 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기 엄마’, ‘여배우’로 인지하게 된 단계까지 가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배우인 딸이 몸짓으로 전하는 사랑의 감정은 정확하게 느낀다. “사랑을 느꼈어. 그건 사랑에 관한 얘기야.”     


▫️이런 서사가 필요한 이유


소설을 읽으면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떠올렸다. 과학자이자 의사인 저자가 뇌 질환자들을 치료하고 관찰하며 쓴 임상 보고서이자 연구서지만, 저자는 책의 정체성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병력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풀어나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나라들을 여행한 사람들’이고 우리가 짐작하지도 못할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인 우리의 뇌에 대한 경외감이 들게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 겪지 못해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 중 누군가의 장애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앨리스의 이야기도 그러하다. 알츠하이머 환자로서의 심리나 감정은 그녀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우리는 도저히 탐사할 수 없는 어두운 대륙이다. 실제 알츠하이머병이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쓴 이 소설이 그 어두운 대륙 언저리에라도 발이 닿도록 도와줄 것이다. ‘내가 너무 그리워’라는 앨리스의 외침을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스틸 앨리스』 (2007), 리사 제노바 (민승남 옮김, 세계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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