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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Apr 27. 2023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거야’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2023), 전자책 『스즈메의 문단속』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거야’


황정은 작가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보며 ‘우리가 여기, 지구에 갇힌 존재들’(『일기』(2021)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별 하나에 갇힌 몸들이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몸집이 커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바이러스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몸을 피해 있을 대체 행성 하나 없이 말이다.


인류가 쌓아 올린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눈부시게 발전하는 생명과학을 생각하면, 고작 바이러스 하나에 지구가 몇 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인류가 이렇게나 무력한 존재였던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지진, 태풍,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도 우리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고 삶을 한순간 무너뜨리는 거대 사건이지만 안타깝게도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엄청난 재난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광속으로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큰 충격과 대혼란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모든 재난은 사망자 수 몇 명, 부상자 수 몇 명이라는 숫자로만 남는다. 이어지는 재난이 앞선 재난을 잠식하고, 희생자 수에 대한 감각도 점차 무뎌진다.


지난 2월에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만 보아도 그렇다. 부상자와 실종자를 제외하고 사망자만 해도 6만 명에 달하는 끔찍한 재난이었다. 당시에는 화면 속 지진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누구도 그 얘기를 하지 않는다. 다른 사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카뮈가『페스트』에서 말하는 재난의 ‘추상성’이다. 재난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깊이 각인되지 않는다. 눈과 귀 등 몸의 감각기관이 기억하지 못하는 비극은 그 규모와는 상관없이 그저 ‘한 때 있었던 일’로 우리 의식 속에 저장된다. 한 줄 수치로 요약된 재난은 그렇게 ‘추상’의 영역에서 단순화되고 잊혀 간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재난의 당사자라면 어떨까. 코로나로 부모를 잃었다면, 지진과 쓰나미로 자식을 잃었다면, 그리고 태풍으로 살던 집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면, 그래도 재난이 한 줄 수치로만 존재할까. 상실의 아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때문에 매일 눈물만 나지 않을까. 시간이 흐른들 트라우마로 남은 몸과 마음의 상처가 다 치유가 될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쓰고 영화화한《스즈메의 문단속》은 네 살 때 겪은 지진으로 인해 12년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비극적 사건을 추상에서 사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서서히 잊혀 가는 과거의 재난이, 그 현장에 있던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악몽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울고 있는 ‘내면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


길을 떠난 주인공이 여정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며 치유, 깨달음, 성장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를 로드 무비라고 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로드 무비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는 영화다.


고등학생인 스즈메는 규슈의 작은 마을에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라고 말하는 신비로운 청년을 만난다. 지진의 뒷문을 닫아 대재난을 막는 일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소타’다. 그의 뒤를 쫓다가 스즈메는 폐허에서 낡은 문을 발견하고 문 앞에 놓여 있던 요석을 실수로 뽑아 든다. 그 순간 고양이로 변신한 요석은 일본 각지의 폐허를 돌아다니며 지진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되고, 스즈메는 고양이의 주술로 인해 의자로 변해버린 소타를 데리고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본격적인 ‘문단속’의 시작이다.


일차원적인 로드 무비로 해석하면 이 영화는《어벤져스》와 같은 영웅담이다. 로드 무비의 원형이 ‘원탁의 기사’와 같은 영웅 이야기가 아니던가. 집을 떠나 일본 전역을 돌며 고양이 ‘다이진’이 열어놓은 지진의 문을 닫는 두 영웅, 스즈메와 소타. 목숨을 건 이들의 봉인 작업이 없다면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붉은 덩어리 ‘미미즈’가 땅으로 낙하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지진을 일으킬 일이었다.


그런데 소타와 스즈메의 이야기는 단순한 영웅담에 그치지 않는다. 심리적 층위의 이야기가 영웅 이야기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격하는 고양이, ‘다이진’은 사실 영화의 ‘맥거핀(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미끼, 헛다리 장치)’이다. 관객은 스즈메와 소타를 따라 열심히 다이진의 흔적을 따라가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 알게 된다. 스즈메가 찾고 있던 것이 다이진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 아이’였다는 사실을.


‘내면 아이’는 심리학 용어로서, 우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 입은 어린아이다. 어린 시절의 두려움, 고통, 공포가 치유 없이 방치될 때, 그 감정들은 무의식 아래로 가라앉아 성인이 된 우리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커서도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충격과 불안, 그것이 우리의 ‘내면 아이’다.


영화는 수미상관 기법으로 스즈메의 ‘내면 아이’를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될 때 네 살의 스즈메는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다. ‘엄마…. 엄마….’라고 외치며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누군가 아이 앞에 멈춰 서고 ‘엄마?’라고 말하며 아이가 고개를 드는 순간 고등학생 스즈메는 꿈에서 깨어난다.


이 꿈은 영화의 마지막, 즉 여정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되풀이 된다. 이번에는 꿈이 아니다. 마지막 목적지로 고향 집을 찾은 스즈메는 그곳에서 저세상으로 가는(아마도 그녀의 무의식으로 가는) 문을 통과해서 네 살 무렵의 그녀 자신과 만난다. 자주 꾼 꿈에서처럼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는 어린 스즈메의 눈에는 불안과 공포가 가득하다.


이토록 어린아이가 어두운 곳에서 혼자 울고 있는 이유는, 데리러 온다는 엄마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스즈메의 고향 이와타 현은 2011년 3월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초대형 쓰나미가 발생한 곳이다. 만 오천 명이 넘는 사망자 속에 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스즈메의 엄마도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서 일기장을 찾아낸 스즈메의 기억은 그날의 진실에 더 다가간다. 그날, 2011년 3월 11일,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엄마를 대피소에서 기다리며 스즈메는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만났다’라고 쓰고 싶었던 그날의 일기는 결국 그 말을 쓰지 못한 채 크레파스로 새카맣게 칠해져 있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의 일기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를 부르며 불안과 공포에 떨던 그날 밤을 떠올린 스즈메는, 어린 스즈메를, 울고 있는 자신의 ‘내면 아이’를 두 팔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리고는 말한다.    

  

지금은 정말 슬퍼도, 스즈메는 앞으로 아주 잘 자랄 거야. 아침이 오고, 또 밤이 오고, 그것을 수없이 반복하며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 나는, 스즈메의, 내일이야.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라는 한 마디. 세상에 고립무원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막막함에 눈물 흘리고 있는 스즈메의 ‘내면 아이’, 그리고 우리 각자의 ‘내면 아이’는 아마 이 한마디에 힘을 얻을 것이다. 내일이 있으므로, 내일의 빛이 우리를 성장하게 할 것이므로.    

  

연대는 우리의 힘

     

《스즈메의 문단속》은, 무의식 아래 가라앉아 있는 ‘내면 아이’를 만나러 가는 심리 치유의 여정이기도 하지만, 재난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교훈도 담고 있다.


스즈메가 재난을 막기 위해 간 곳-에히메, 고베, 도쿄, 이와타-는 실제로 재난이 발생한 장소다. 에히메는 2018년 7월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1995년의 한산-아와지 대지진은 고베를 덮쳐 실종자를 제외하고도 사망자만 6천여 명에 이르게 했다. 역대급 지진이었던 1923년 관동대지진은 도쿄를 강타해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 역사상 최고 규모인 M 9.1을 기록하며 만 오천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았다. 스즈메의 고향 이와타 현은 이 지진의 최대 피해지였다.


12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소녀의 모습을 그리며, 영화는 우리가 숫자로만 기억하게 된 그날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유원지에 놀러 온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 씩씩한 걸음으로 학교에 가는 아이들, 내일을 꿈꾸는 청년들, 혼인을 약속한 연인들,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젊은 엄마들. 바로 이 사람들이 그날의 지진으로 인해 미래를 빼앗기고 사망자 숫자 안으로 영구 박제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쓰나미에 휩쓸려 간 스즈메의 엄마는 수많은 사망자 중 한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 한 사람의 죽음이 한 아이를 얼마나 두려움과 불안에 떨게 했을지 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스즈메의 일기장 속 3월 11일 이후의 날들이 모두 검은 크레파스로 칠해져 있는 것처럼, 희생자 가족의 어둠과 절망은 재난의 날 이후에도 오래 이어졌을 텐데, 그 사실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복불복 재난이 나에게 오지 않음을 다행으로 알았다.


이 영화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하나를 빌려 동고동락하는 공동운명체임을 새삼 일깨워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닥친 재난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의 한 장면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여행 2일째 만난 치카가 몰던 자전거에는 귤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가 실려 있었다. 자전거가 오르막 턱에 걸리면서 상자는 떨어지고 귤들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데굴데굴 굴러간다. 속수무책의 치카가 넋 놓고 있는 동안, 의자로 변한 소타와 스즈메는 재빨리 그물을 펼쳐 귤들이 더 아래로 떨어지지 못하게 막는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고 지나치지 않기, 이미 피해를 보았더라도 더한 피해는 보지 않도록 함께 막아주기.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신기하게도 영화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지진의 문을 연다는 재난의 화신 다이진 조차 결국에는 지진을 닫는 뒷문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의로운 존재로 드러난다. 교사를 꿈꾸는 청년 소타는 다수의 안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의 친구 세리자와는 소타에게 빌려준 돈을 받겠다는 명목으로 길고 긴 시간 운전대를 잡지만,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스즈메의 이모는 드라마《일타 스캔들》의 이모처럼 ‘이모 엄마’다. ‘우리 집 아이가 되어 줄래?’라며 네 살의 스즈메를 데려온 날부터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 왔다. 여행을 가출로 오해하고는 직장 일도 잠시 접고 스즈메를 찾아 나설 정도로 열혈 보호자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또 어떤가. 2일 차에 만난 치카는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주었고, 3일 차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스즈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차에 태우는 루미가 있었다. 그녀는 다이진을 쫓아 황급히 뛰쳐나간 스즈메를 밤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도 닫지 않고 기다렸고, 지쳐 돌아온 소녀를 위해 한밤에 밥상을 마련했다.


스즈메의 ‘내면 아이’가 더 이상 울지 않게 된다면, 그녀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은 이들 덕분이다. 황량한 폐허 속 아이를 눈부신 빛 속으로 걸어 나오게 하는 힘은 따뜻한 연대에서 나온다. 큰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둠으로 추락하지 않게 그물을 함께 쳐주는 손들이 있으면 되고, ‘너는 빛 속에서 자라날 거야’라고 응원해주는 마음들이 있으면 된다.《스즈메의 문단속》은 ‘연대’야말로 우리의 ‘힘’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2023), 신카이 마코토 감독

전자책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민경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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