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살게 된 지 3주가 넘었다.
많이 불편하고 힘들 거라고 예상한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나는 빠르게 적응했고 매우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가출의 시작이었던 엄마와의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우리는 용기를 내 서로 사과를 했고, 나도 여전히 미움과 상처가 남았지만 엄마 또한 그러리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용서는 쉽지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아직은 잘 지내냐는 말 한마디조차 무거우나 우리는 차차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다.
주말에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가 화근이었다.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이 회사와 병행하기 힘들다는 주장을 펼쳤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말리는 입장이었다.
주 5일, 9시간 근무를 마치고 저녁도 먹지 못한 채 학원에 달려가 2시간 수업을 듣는 것은 당연히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이 드는 일이다. 게다가 3개월을 내내 이렇게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처음엔 미래를 위해 잠시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등록했지만, 갑자기 운 좋게 취업을 하게 되어 회사와 학원을 동시에 다니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애초에 취업을 위해 다니기로 했던 기술 학원이었고, 이제는 취업을 했으니 잠시 보류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지금이 아니면 영영 배우지 못할 좋은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회식이라도 있는 날에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학원에 결석하게 되는데, 그렇게 놓친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한 번 놓치고 나니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이렇게 흥미를 잃은 채 꾸역꾸역 머릿수만 채우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부모님은 요즘 같은 시대에 평생직장이 없으니 기술 하나라도 더 알아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점에서 내가 3개월만 잘 버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다. 내가 흥미를 잃고 몸이 지쳐도 앞으로 조금만 더 참으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하시며, 아버지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셨다.
지금 다니는 학원을 마치면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진다는 이야기였다. 지당히 옳은 말씀이었고,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지금 내가 배우는 기술은 나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과정을 수료하고 접하는 세상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또 다를 테고,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내가 가족에게 서운했던 것은 가족의 시선이 내 몸과 마음의 힘듦보다는 앞으로 나의 비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힘들고 바쁘다는 사실을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내뱉은 고민은 부모님에겐 별 것 아닌 투정이었다. 고작 3개월을 못 참아서 그만두겠다는 끈기 없는 딸의 생떼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에게 또다시 타박을 듣는 순간, 이 집에서 나는 앞으로도 절대 인정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내 감정을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 부모님이 미웠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감정에 호소한들, 부모님은 다 큰 딸의 철없는 외침이 한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픔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아픔을 느끼는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타인의 힘듦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그보다 자신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그 사람과 나의 아픔의 그릇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고통을 받더라도 누군가는 하루 이틀이면 이겨낼 수 있으며, 누군가는 한 달이 지나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타인은 더욱 힘들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내 아픔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고통은 컸다. 가장 이해받고 싶은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날 힘들게 했다. 결국 또다시 싸움과 울부짖음만이 남은 채, 그 일은 내가 눈물을 훔치며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학원은 그만두게 되었나?
아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이왕 시작한 공부인데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힘든 것은 잠깐일 테지만 앞으로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2개월을 더 참기로 했다. 나의 의지로.
아마 부모님은 날 잘 말렸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나는 부모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스스로 나의 길을 정했다. 가족이 나의 인생을 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부모님께서 내 감정에 위로를 보내셨다면 나는 슬퍼 울부짖으며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