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오는 17일 코스피시장에 들어옵니다. 1조 원 정도의 자금을 받기 위해 신주를 발행해 팔겠다(공모)고 했더니 이 주식을 사겠다는 자금(청약증거금)이 56조원이나 몰렸으니대성공입니다. 혹시 IPO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으시다면 이전 글도 읽어보세요.(https://brunch.co.kr/@kimq/37)물론 거래가 시작되는 17일 시장에 어떤 모습으로 데뷔할지는 다른 얘기긴 하지만요.
출처:이투데이 /현대중공업 상장 전 지분구조
최근 나오는 뉴스들을 보니 신주를 받아 간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상장 초기에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울 가능성을 걱정하더군요. 외국인 기관들이 이번에 신주로 발행할 물량 중 349만 주 정도를 받아갔는데 이 중 의무보유 물량이 4만여 주 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의무보유는 일정기간까지는 팔지 않겠다고 회사와 약속하는 걸 말합니다. 좋은 물건을 많이 받으려고 사가는 사람이 파는 사람에게 거는 조건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현대중공업 공모물량 중 국내 기관투자자들이가져간 640여 만주 중 92%가 이 의무보유 물량이라고 하니 비교가 되긴 하네요. 상장 초기 현대중공업 주가가 급등하면 충분히 물량 출회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사실 핵심은 적정주가를 어떻게 보느냐 잖아요. 현대중공업의 공모가는 6만 원. 이른바 따상이나오면 상장 첫날15만9 천 원까지도 오를 수 있죠. 그럼 5.3조 원으로 정도로 시작한 시가총액은15조 원을 넘습니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한국조선해양의 시총이 현재(2021.9.14 기준) 8.3조 원 정돕니다. 급등한 현대중공업의 시총이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면 그만큼 한국조선해양 주가도 올라야겠죠. 어쨌든 일단 증권사들은 9만 원 정도가 현대중공업의 적정주가다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아래 글은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시즌에 있었던 한국조선해양의 '빅베스'에 대해 탱고픽 위클리 리포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의도가 담긴 대규모 손실. 투자자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얼마 전 2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어요. 아시겠지만 올해 들어 해운과 조선업 경기는 꽤 좋습니다.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글로벌 경기가 백신 보급 등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물동량이 엄청나게 늘었거든요. 당장 물건을 실어 나를 배가 부족하고 심지어 컨테이너 박스도 없다는 뉴스가 마구 들려왔잖아요. 흠슬라라는 애칭을 얻은 HMM의 주가만 봐도 실감이 나는 상황이죠. 당연히 대형 선박을 만드는 조선업의 호황도 점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국조선해양은 연결기준(계열사들의 실적까지 반영한)으로 올 2분기 8973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고 밝힌 겁니다. 말 그대로 어닝쇼크입니다.
한국조선해양 공시자료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
빅배스(Big Bath)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어떤 분들은 외래 어종 중 닥치는 대로 토종 물고기를 잡아먹는 대표적 생태계 교란 종인 물고기 배스(Bass)를 떠올리시더군요. 아닙니다. 영어 단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빅배스는 목욕해서 때를 씻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회사들이 과거의 부실 요소를 한 번에 반영해 버리는, 즉 씻어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보통 부실을 '털다' '떨다' 뭐 이런 표현도 씁니다. 시장에서는 이번 한국조선해양의 어닝쇼크가 이런 빅배스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 올 들어 한국조선해양은 수주량과 선가가 모두 올랐습니다. 일반 회사로 얘기하면 물건도 많이 팔았고 파는 물건의 가격도 올랐다는 얘기거든요. 회사가 공개한 7월 기준 수주현황을 보더라도 증감률이 450%를 훌쩍 넘어서 있습니다.
한국조선해양 7월 IR자료
"후판 가격 상승분을 손실로 미리 반영했다"
큰 배를 만드는 데 꼭 들어가야 하는 자재는 후판입니다. 후판은 두껍다는 의미의 후(厚)로 두께가 6mm 이상인 강판을 의미합니다. 후판은 선박 외에도 보일러, 압력용기, 교량 등에 주로 쓰이죠. 어쨌든 이 후판 가격이 최근 계속 오르고 있어요. 실제 포스코가 올 하반기 조선용 후판 가격을 적어도 t당 115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했답니다. 원래 얼마에 팔았는데 그러느냐고요? 올 상반기 평균 후판 가격은 t당 72만 원이었으니 60%나 올린 가격입니다. 조선용 후판의 지난해 평균 공급가는 t당 60만 원 정도였으니 지난해와 비교하면 두배 오른 거죠. 자, 정리를 해보자고요.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물건도 많이 팔고 파는 물건의 가격도 꽤 올랐지만 물건을 만드는 재료값이 너무 올라 재미를 못 봤다는 얘깁니다. 더구나 하반기에는 이 재료값이 더 오를 건데 선주문 그러니까 만들어서 주겠다고 미리 팔아놓은 물량도 많은 상태라 하반기 예상되는 재료 인상이 매우 걱정됩니다. 그래서 그럼 미리 이런 걱정을 덜자고 이걸 손실 충당금으로 미리 반영해 버린 거죠. 바로 이걸 빅배스라고 하는 거고요. 지금 조선업체들은 다들 비슷한 상황입니다.
한국조선해양처럼 이번 2분기 실적에 하반기 후판가 인상분을 손실로 반영한 빅배스를 할지는 회사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시장에서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몇천억 원대의 손실을 공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빅배스는 주가에 어떤 영향?
사실 중요한 건 여깁니다. 어떤 회사가 빅배스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빅배스는 나타난 현상을 그대로 보여 준 게 아니라 다분히 의도를 담은 행동이 포함된 내용을 보여준 것이거든요. 기업의 손실이 이번 분기에도 그리고 다음 분기도 여기서 더 나아가 다음 해에도 지속될 것 같다면 과연 빅배스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해봐야 또 손실이라면 빅배스의 효과가 없을 테니 기업들은 굳이 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가끔 경영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부실을 미리 반영시키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빅배스가 나오면 어느 정도 실적 악화가 다 마무리되고 있구나란 판단을 하게 됩니다. 아시겠지만 주식시장에서는 턴어라운드 다시 말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는 순간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때를 맞춰 잘 투자하면 꽤 좋은 성과를 내곤 하거든요. 다만 회계장부에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미리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장부상의 얘기고 기업의 실제 상황은 여전히 손실 혹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건 변하지 않았죠. 그리고 미래란 우리의 예측을 빗나가기도 하지요. 그래서 빅배스가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이 기업은 이제 바닥을 찍었다는 판단을 해서도 안된다는 점은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