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리지 Dec 06. 2020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

북극성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


어렸을 적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고 물으면 외모부터 말했다.


    - 턱이 갸름하고 옆선이 예쁜 사람, 쌍꺼풀은 없거나 속쌍꺼풀이 좋고 키는 크지 않아도 되지만 목소리는 부드러운 사람이면 좋겠어.


그러다 외적인 조건이 다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 스물세 살 정도엔 취향과 취미로 옮겨갔다.


    - 담배 안 피고 술을 잘 안 마시는 사람,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연애를 거듭할수록 바로 직전 연애의 전철은 밟고 싶지 않았기에 조건도 늘어만 갔다.

 너무 바쁘지 않은 사람  
 가끔 꽃을 사주는 사람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사람
 마음 넓고 이해심 많은 사람   
 …

이십 대 후반이 되자 리스트는 점점 많아져서 한 번에 말하기란 불가능했다. 이젠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하는 친구의 청첩장 모임에 가거나,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잘하고 있는 커플들에겐 상대방의 어떤 면을 보고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 꼭 물어봤다. 동화(Fairy tail)의 마지막은 항상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누굴 만나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줄 사람.
 

아무리 외모가 내 스타일인들, 경제적인 조건이 맞다 한들, 취미가 같고 바쁘지 않고 마음이 넓다 한들,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면 무슨 소용인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 中


모든 면에서 나와 꼭 맞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맞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백 개 중에 열 개만 맞는 것이었다는 얘기, 너는 로또같다며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하는 얘기는 농담 같은 현실이다. 내가 아무리 조건을 따지고 따져서 잘 맞는 사람을 만나도, 막상 지내다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문제가 일어나게 될 가능성이 99%다.


한결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갈등이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서로 다른 문화,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은 당연히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고방식의 차이는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냐는 것이다. 상대방을 사랑해서 차이를 이해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관계의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 차이를 발견했을 때 사랑이 변했다면 관계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함께 해결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쁘지 않은 순간도 예쁘게 보려고 하면서, 좋지 않은 것도 좋게 생각하려고 하면서 말이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태주, 「사랑에 답함」



모든 조건은 변한다. 외모는 세월이 지나면 당연히 변하고, 돈도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사업이 대박 날 수도, 친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서 하루아침에 가난해질 수도 있다. 라이프스타일도 당장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더라도 점점 직급이 올라가거나 새로운 일을 맡게 되면 자연스레 바빠질 수 있다. 취미나 취향도 계속 변한다. 어렸을 땐 그렇게 맛있었던 햄버거와 파스타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강낭콩과 취나물이 맛있어지는 것처럼.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과 '신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싸우더라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만은 변하지 않을 사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한결같이 사랑해줄 사람. 좋을 때뿐만 아니라 좋지 않을 때도 한결같이 사랑해줄 사람. 평생 내 곁에 있으리란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어떤 고난에 부딪혀도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사람.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다. 그래서 서로의 단점을 보듬고 채워주며 살아가야 한다. 한결같이 서로의 곁에서 보듬어가며 살아갈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어린왕자』 中


결국은,
한결같이 따뜻하게 사랑해줄 사람이면 된다.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거면 딱 좋겠다.



북극성


먼 데 까만 하늘에

움직이지 않는 빛


내가 어디로 가든

그 자리에 있는 빛


길을 잃고 헤매어도

나를 지켜주는 빛


바라보며 걷다 보면

집으로 데려주는 빛


언제나 같은 곳에서

은은하게 바라보는 빛


아주 작아 보이지만

누구보다 찬란한 빛


오늘 밤도 한결같이

나를 비춰주는 빛



매거진의 이전글 800일에 이별을 선물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