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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지 Dec 31. 2020

이별에 맞서는 태도  : 아리랑과 진달래꽃

배웅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한국인이면 모를 수 없는 노래들. 바로 아리랑과 진달래꽃이다.

문학 작품을 한창 공부하던 고등학교 시절, 진달래꽃과 아리랑의 화자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왜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고 수동적으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까?'

'나 보기가 역겹다고 가는 사람한테 욕을 한 바가지 못 해줄 망정, 왜 진달래꽃을 뿌려줄까?'


나는 연애와 이별에서 능동적, 적극적인 여성이 되어야지, 다짐했었다. 20대가 되어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면서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다양한 형태의 이별도 경험했다.


그럴 때마다 한용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슬픔을 이별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어 그 힘으로 시를 썼다. 싸이월드 비공개 다이어리에, 노트에, 핸드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감정들을 글로 뱉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졌다. 시어를 다듬고 다듬으면서 어지럽던 감정들을 정돈했다.


그렇게 이십 대에 완성된 서른여 편의 시들을 모아 정리하고 돌아보니,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을 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이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태도로 시를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진달래꽃과 아리랑의 화자가 왜 그렇게 노래했는지 알 수 있었다.

흘러간 시간과 떠나간 사람은 붙잡을 수 없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는데도 헤어질 인연이라면 더 이상 붙잡아도 소용이 없다. 진달래꽃을 뿌려준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최선을 다한 나의 사랑에 보내는 마지막 찬사일 것이다.


진달래꽃과 아리랑. 한의 정서로만 배웠던 수동적인 화자들은 어쩌면 그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배웅     

     

덕분에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역시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군요     


차린 건 딱히 변변찮아도

정성을 한가득 담았답니다

느끼셨다니 그것 참 다행이네요     


화려하지만 더부룩한 양식보다는

수수하지만 속 편한 한식 반상이

밤에 잠도 잘 오게 해 줄 거예요     


벌써 가셔야 할 시간이라니

못다 한 얘기가 아직 많지만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테죠     


가시는 길이 어둡고 험해

헤매시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늦지 않게 얼른 들어가세요     


다 드신 그릇을 치우는 일은

조금 오래 걸리긴 하겠지마는

혼자 할 수 있으니 걱정마세요     


따뜻한 곳에 잘 도착하시면

안부 전화 따위는 필요 없으니

그저 미소 한 번만 지어주세요     


저도 기쁜 마음으로 잠들 거예요

저희 집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멀리 나가진 않을게요, 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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