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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Nov 12. 2024

나의 머릿니 투쟁기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백만가지 이유 1


미국에는 라이스가 있다.

많다.

나는 항상 R 발음과  L발음, P와 F 발음이 헷갈려 난감한 경우를 겪는다.

예를 들면,

식당에 가서 캔아이 유즈 포크?

그러면 점원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돼지고기를 가져다주는.

그런 서글픈 장면.






발음에 유의해야 한다.

롸이스, 아니고 라이스.

안면근육을 옆으로 주욱 늘이면서 혀 끝을 앞니에 탁 부딪히면서.


웨어 캔아이 파인드 헤어라이스 트리트먼트?

내가 미국 오고 처음으로 드러그스토어에 가서 한 질문.



떠올리니 몸이 간지러워진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 간간히 머릿니가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머릿니를 본 적도, 그 알을 본적도 없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머릿니는 나에게 그저 전설 속에 나오는 고생대 생물? 정도로 여겨졌다.


고생대 캄브리아기를 주름잡던 삼엽충(출처, 위키백과)

우리 아이들은 진정한 미국 라이프의 신고식을 머릿니 감염과 함께 시작했다.


봄이 시작할 즈음.

찬기운이 물러나고 캠퍼스에도 뒷마당에도 초록이 파릇하게 일어날 때.

그 여린 기운에 젖어

아 이제 나도 미국생활 제대로 할 수 있는 건가.

비행기 내리고 두 달 만에 약간의 행복감 같은 감정이 빼꼼히 들이밀던 그때.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나마 움트는 평안함의 씨앗이 바스러지는 소리.



그리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머릿니를 보았다.

잡았다. 죽였다.  그 알들도.

그것은 정말 밤과 낮이 없는 전투였다.

신경증 같은 것.

첫아이의 길고 검고 풍성하고 찰랑이는 머릿결은 적들에게 최적의 안식처였다.

그 베이스캠프에서 번성하여 가늘고 숱이 적은 둘째의 머리에도 늙고 힘없는 내 머리카락에도

신속하고 치밀하게 이주, 정착했다.

감염병이란 이런 것이구나.

나는 열심히 싸웠다.


깊은 밤 그들에게 온몸이 뜯어 먹히는 악몽에서 깨어나 났다

적개감과 복수심에 불타올라

잠든 아이들의 머리를 헤집으며 사투를 벌였다.

내 생전에 벌레와 그 후손을 가장 많이 발견하고 또 죽인 날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평생 잊지 못할 새벽.

새와 벌레, 그리고 나.



며칠 후 무서워서 병원에도 갔다.

진료비 100불, 약값 80불

전문가가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리 동네 어전트케어에 머릿니 전문가는 없는 거 같았다

선생님은 잘생기고 친절했지만 우리를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증상을 듣고는 비닐장갑을 끼고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전문가라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없다.

약이 너무 독하니 조심하라는 경고.

8시간 동안 바르고 있어야 한다는 지침까지.



그리고 2주 후 나는 종전을 선언했다.

멸족.

완전한 해방.



지금도 학교에는 머릿니 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해맑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지난여름에 둘째 머리에서 한 마리를 잡고

2주간 2차 전쟁을 치렀다.



나는 이제 벌레를 잘 잡는다.

작은 파리나 모기. 거미 같은 것들.

아무런 죄의식도 두려움도 없이.

설사 바퀴벌레가 나온다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



헤어라이스는

검고 긴, 동양인의 참머리를 좋아한다.

꼬불한 머리는 기동력이 떨어져 선호하지 않는다.

머릿니 약은 살충 성제분으로 사멸시키는 유형과 냄새로 질식시키는 유형 두 가지 방식이 있으며

샴푸형, 거품형, 로션형으로 제형이 나뉜다.

두피뿐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모두 약을 도포해야 하고

15분 후 샴푸한다.

샴푸 후에 참빗으로 알을 제거해야 한다.

일주일 후 다시 검사하여 재발한 경우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헤어스타일을 바꾸었다.

짧고 귀여운 단발머리.

머리를 자르고 헤어라이스 멸종 샴푸사용 후 등교한 딸에게 친구들이 하는 말.


와 너 머리 너무 이쁘다.

그리고 샴푸향이 너무 좋아. 킁킁..

어디서 샀어?


"..................................................."



한창 사투를 벌이던 사흘째날 저녁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께서 조언을 주셨다.


"이는 말이다. 그 머리에 바퀴벌레약을 확 뿌리는 기라.

그라고 버닐봉지로 한 시간 덮고 있으면 싹 없어지뿐다"


그래 그게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머릿니 안전지대가 된 건지도.



기억난다. 새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맞이한 새벽.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흐르륵..."



내 미국라이프 최대의 위기.

절망과 혐오로 가득했던 나의 봄.

아메리카 풍토병과의 전쟁.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는 없다.


그래도

이제 고만하자. 마이 뭇다아이가.



끝.


추신.

한국은 참 좋은 나라다.

이곳에서 40$씩 하는 머릿니 약이 한국에서는 몇천 원이면 인터넷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지난봄 남편은 보부상처럼 여행가방에 한국산 머릿니 약을 싣고 왔다.

내 나라에서 당연하던 많은 좋은 것들이

여기서는 영 시원치 않다는 걸 느낄 때

어떤 즐거운 마음이 든다

이런 걸 국뽕이라 부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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