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비행기를 놓치면 생기는 일
제목을 먼저 쓰고 글을 쓸것인가
글을 쓰고 제목을 쓸것인가.
항상 고민하게된다.
그래도 제목을 먼저쓰면 어떤 이정표 처럼 내 글을 한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믿음
그래서 제목을 늘 먼저 쓴다.
제목이 자극적이다
히드로 공항에 죄송한 마음이다.
나의 미국생활 실수담은 계속 되어야하니까
그냥 제목도 좀 일방적주인공시점으로.
지난 여름에 런던에 다녀왔다.
런던은 항상 숙제, 같은 도시다.
세계의 금융도시 1위
글로벌 도시순위 1-3위
외국인 관광객 방문도시 1-4위
세계 박람회 최초 개최
브렉시트
천일의 앤
아더왕
원탁의 기사
로미오와 줄리엣
빅벤과 타워브릿지
뭐.
오늘 오후 내내 적어도 끝이 안날법한 런던이 유명한 이유
명성에 비해 내 여행목록에서 항상 로마나 파리에 밀리는 런던.
그 런던에 드디어 다녀왔다.
내가 사는 미국 동부는 영국과 상대적으로 가깝다.
게다가 작은 우리동네 공항에도 런던행 직항 비행기가 뜬다.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 아름다운 성과 드레스, 에 대한 판타지로 가득한 내 아이들도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내내 수첩에 공주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런던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길거리는 깨끗하고 2층버스는 예쁘고 편리했으며
우유를 넣은 에프터 눈 티는 커피만큼 향긋했다.
혀를 덜 굴리는 담백한 영국식 영어와 냉정한데 친절한(?) 런던 사람들
청명한 하늘, 선선한 여름 바람, 아름다운 백조들.
심지어 무료인 박물관과 미술관
유료일지라도 전혀 아깝지 않는 관광지들
유구한 역사
촉촉바삭한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
눈을 즐겁게하는 세련된 길거리 패션
딱 하나.
내 지갑이 증발해 버릴 것 같은 크레이지한 파운드환율을 제외하고는
모든것이 좋았다.
뭐야, 왜 여태 여기에 안온거지
너무 좋은데?
그렇게 우리의 8일간의 런던 여행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날 아이들과 런던브릿지위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다시 꼭 오자고 약속했다.
저 멀리서 해리포터가 날아올것만 같았다.
환상적이었다.
다음날 9시 출발인 비행기를 타기위해 5시반에 기상했다.
잠이 덜깬 아이들은 런던의 차가운 아침공기에 화들짝 놀랐다.
우리는 그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히드로로 향했다.
나는 5시에 일어났어야만 했다.
아니면 10만원짜리 우버를 탔어야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시간을 언더그라운드(런던 지하철 이름)안에서 보내고 우리는 히드로에 도착했다
아직 70분 남았다.
짐을 부쳤다. 성공.
그리고 하염없는 줄..........
우리는 차단. 당했다.
보딩이 끝났단다.
아직 시간이 있는데요. 플리즈....
플리즈를 그토록 절박하게 외쳐본적이 있었나.
나중에 집에와서 딸이 말했다.
엄마, 그때 솔직히 좀 부끄러웠어.
근데 엄마가 너무 절박해보여서 가만히 있었어.
그래.
절박했다.
그 순간에는 그 비행기를 못타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갈것만 같았다.
플리즈.
공허한 플리즈.
"나는 몰라. 네 보딩패스가 안먹혀
1층에 항공사 카운터에 물어봐."
뭐라고
이제 이륙이 20분 남았는데 나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라고 말을 못했다. 영어로 말하려니 머리도 안돌아간다.
혹시라도 우리를 태워줄까해서 다시 항공사 카운터로 달렸다.
아, 기다란 줄.
기다리라는 말만.
내 짐은요
내짐은 그럼 우리동네로 주인없이 날아가나요
기다리라는 말만.
세상 제일 무서운 "맴, 웨이트."
좋은때는 레이디
나쁠때는 맴
맴은 번역하면 아줌마. 가 아닐까.
아홉시가 되었고
비행기는 이륙했고
우리는 남았다.
북적대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낡은 공항에 -
리부킹을 위한 줄은 더 길었다.
그리고 그 줄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카운터에는 두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종종 사라졌다.
아침도 먹고, 똥도 싸고(죄송), 점심도 먹고, 에프터눈 티도 마시는거 같았다.
나는 인내심 세계1등인 미국인 혹은 미국인처럼 생긴 사람들과 4시간을 서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긴 4시간이었다.
나의 4시간 대기시간은 도입-전개-위기-절정-결말로 전개되었다
* 도입- 좌절, 허탈, 내 자신에 대한 비난, 아이들에 대한 걱정
* 전개 - 위 과정 계속 반복, 심화
* 위기 - 실시간 항공권 검색
우리집으로 가는 항공권이 다 매진
내일자에는 두개가 있다. 우리는 세명인데
모레는 비즈니스석이 있다. 토탈 5,000달러
* 절정 - 줄이 줄어들지 않은지 1시간. 신경질적인 항의 목도(이탈리아인이었다. 미국인들은 웃으며 대화중. 어메이징), 그래, 미국 아무대라도 가자, 각종 국제공항 항공권 검색.
* 결말 - 결말은 자세히 쓰자.
4시간의 기다림끝에 카운터는 한명이 더 충원되었다. 방금 점심을 먹고 왔는지 딱 봐도 일을 잘하게 생긴 그녀는 아주 신속하게 내 앞사람의 민원을 해결했다. 나에게 친절을 배풀던 낙천적인 두 노부부는 내 옆 카운터에 접수를 했지만 아직 대기중이다. 그들은 시종일관 미소짓고 농담을 건넸다. 우리 다음에 네 차례가 될거야. 윙크와 응원도 잊지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들보다 먼저 떠났다. 우리집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
나를 담당한 그 직원은 눈빛이 살아있었고, 담담한 표정으로 나에게 비행기를 놓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내 짐은 다행히 날아가지 않고 잘 있을거라 안심시켰다.
옆에 직원과 어깨를 으쓱하며 공항 직원들의 융통성 없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주 내에 있는 다른 공항을 경유하는 항공권을 찾아냈다.
오늘 아침 출발예정이었지만 연착되어 이제 막 시동을 걸고 있는!!!! 동앗줄 같은 비행기를!!!
그리고 침착하게 일어서서 몸을 살짝 숙이고는 내 눈을 보고 말했다.
너가 내 영국 영어(그냥 영어도 못알아들어요)를 못알아들을거같아서 내가 천천히 말할께
너는 지금 당장 패스트 트랙으로 달려가서 네 비행기가 곧 이륙할 거라고 말해야해
시큐리티 체크는 해야하지만 그렇게 가면 너는 이 비행기를 탈수 있어
기억해 반드시 패스트트랙으로 가야해
눈물 줄줄
유 룩 라이크 가드!
결말이다.
우리는 무사히 새치기를 했고 엑스레이 검사도 무사히 거쳐 지정되지 않는 좌석 티켓을 가지고
마지막 손님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모두가 우리를 한 자리에 앉혀주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왔다.
오기로 한날에.
그리고 한푼의 엑스트라 차지도 없이.
심지어 맛있는 기내식도 먹으면서.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배려를 받으며.
8시간만에 히드로 공항을 탈출하면서
나는 다음 런던행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할거야
아이러브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