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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와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열살 여자아이의 사회생활

by ZAMBY




딸아이의 학교생활은 제법

집단생활의 다양한 면들이 드러나는 작은 실험실과도 같다.


아이는 이제 10살이고 아이의 반 친구들도 대부분 그러하다.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여전히 몸을 사용하고,

단순화된 언어를 구사하여 관계가 비교적 단순한 반면

여자 아이들의 관계는 제법 미묘한 계층구조를 형성하고

무리를 짓거나 배제하는 비언어적 혹은 간접적인 언어 표현을 구사하기도 한다.



아이가 실연의 아픔을 겪었던 지난 가을,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한국인 여자아이는

반에서 여왕벌(Queen bee) 역할을 하는 친구와 가까워졌다고 했다.

여왕 역할을 하는 그 친구의 주변에는 늘 여자아이들이 무리 지어 함께 하고

그 친구와 다투거나 사이가 멀어지면

무리에서 묘하게 배제되거나, 하루 종일 무시당하는 형벌을 받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반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그 무리를 인기그룹으로 인지하고, 그 무리에 속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내 아이도 자신을 버리고(?) 자리를 찾은 친구를 힐끔대며

그 무리를 선망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무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내 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아이가 속한 무리는 결속력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닌 듯하다.

때로 인기그룹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오면 조직이 와해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아이가 함께 하는 무리에 들어온 전학생 친구가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와 가까워지면서

내 아이를 철저히 무시하거나 구박(?)하는 속 터지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주말에도 만나 플레이데이트를 하는 친한 친구지만

어떤 날에는 내 아이가 시녀가 된 기분이 들만큼

아이를 무시하거나 냉정하게 굴어

잠들기 전에 엉엉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 날도 있다.



아이가 친구문제로 시무룩하거나

며칠 전처럼 엉엉 울거나 하는 날이면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세월이 흘러도 여자 아이들의 행태는 달라진 것이 크게 없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땅에 와서도

결국 10살짜리 여자아이들의 변덕스러움과 동조심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10살 즈음(한국에서 4,5학년)부터 시작되는 거 같다.

무리를 짓고, 베프를 만들고, 특정 무리에서 규율을 만드는 아이가 존재한다.

뭔가 '있어 보이는' 그 집단에 들어간 아이들은

그 집단의 정체성이 곧 자기 자신이 된 듯 어깨에 힘을 주게 된다.

규율과 상벌을 설계하는 여왕은 리더십 있고 성격 좋은 아이로 비치고

설사 그 아이의 외모가 평범할지라도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그 아이를 절세미녀로 여긴다.

여왕은 이 무리에 속할 자와 배제될 자를 선별하고

내 곁에 있을 자와 주변에 있을 자를 서열 짓는다.

물론 그 내부에서도 각각 매칭을 통해

조직 안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짝짓기는 이루어진다.




봄이 되니 학교에서 소풍, 여기서는 Field Trip이라 불리는 야외활동을 종종 한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부모님이 보호자(chaperone) 역할로

필드트립을 따라가 소그룹의 아이들을 보살핀다.

보통 한 반에 스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으면 부모님들이 3-4명 정도 참여한다.

담임선생님, 보조선생님, 교생선생님까지 인솔자가 되니

한 팀에 4-5명 정도의 아이들을 인솔하게 된다.

나는 이번 학기에 두 번 필드트립에 참여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침팬지 무리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여왕 혹은 알파 역을 하는 아이의 주변에는 대여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늘 함께했다.

알파 옆에는 한 친구(이 친구가 종종 바뀐다) 함께 있었다.

그 주변에 두 명씩 짝을 지어 여자아이들이 한 무리를 이루었다.

어떤 아이는 홀로 그 무리에 남아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가 빠르고 얼굴도 예쁜 한 전학생 여자아이는 아직 자리 자리를 못 잡은 듯 절박하게 자리 자리를 찾았다. 어떤 두 친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 아이에게 유난히 정성을 쏟았다.

그 친구들이 멀어지지 않자 저쪽에 베프가 결석해서 혼자인 친구를 보고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그날 점심시간까지 그 친구의 팔짱을 꼭 낀 채 여기저기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아이는 줄곳 혼자 다니며 눈꼬리가 내려가 있었고

어떤 아이는 남자인 소꿉친구와 꼭 붙어 다녔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각자 무리 속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들은 혼자인 친구에게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지 않았다.


각각의 홀로 된 아이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각각 도시락을 먹었다.


친구들이 은근히 멀리하는 아이들은 교생선생님과 다녔다.

우연히 그 무리에 들어간 한 아이는 잽싸게 뛰쳐나와 또 다른 무리에 들어갔다.

새로이 들어간 무리에서도 또 한 명의 제 편을 만들고자

다른 친구를 배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마치 유인원들의 오후를 보는 듯했다.


유인원에도 무리 짓기와 배제하기에 특화된 침팬지가 있고

보다 포용적이고 관용적인 보노보도 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은 본래 침팬지에 더 가까운가 보다 싶었다.


우리는 어쩌면 특유의 배타성과 무리 짓기 본성을

이성의 이름으로 억제하고 있구나.

약자를 보호하고, 소외된 이는 무리 안에 포용하며,

항상 친절하고,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으로 가능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리 짓는다.

국가도 지역도 커뮤니티와 회사나 교실에서의 소그룹까지.

자기 보호, 편의, 권력투쟁, 심리적 안정 등 갖가지 이유로 크고 작은 무리를 만든다.

그리고 배제한다.


불법체류인을 추방하고, 감염병자를 격리한다.

부와 학력의 격차, 사는 지역의 다름이 배타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선호와 취향, 삶의 지향과 종교의 차이가 서로를 가르기도 한다.

우리는 끝없이 무리 짓고 결집하며 동시에 배제한다.


딸아이가 인간의 본성을 배워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또 아프다.

먹이사슬의 상위에 자리잡지 못하는 아이의 능력치.

'둥글게 둥글게' 노래가 끝날 때 의자를 차지할 만큼 재빠르지 못한 눈치.

그럼에도 군중과 함께 막연한 선망을 가질 만큼의 허세치.

이런 아이의 모순된 바람과 특성들을 바라보며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온,

그러나 여전히 나는 졸업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다.



인기걸 그룹을 폄훼해야 하는가 - 걔네 전혀 예쁘지도 않고 쿨하지도 않던데?

본연의 내면을 들여보라고 해야 하나 - 각자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단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유사성을 알려줘야 하나 - 무리 짓기는 본능이고 배제는 속성이다.

인생 새옹지마, 사필귀정 - 살아보니 학생 때 깝죽대는 거 아무것도 아니더라.

자기애와 기살리기 - 네가 훨씬 나아. 여왕노릇은 천박하고 그 주변에 있는 건 시녀노릇이야.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인가.

정신승리?

삶의 지혜?



사회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관계를 맺고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충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삶.

내가 아이에게 수학과 영어를 학습시키고,

명분과 도의, 아량과 관용, 포용과 양보를 가르치는 이유.


모두가 무리 짓고 배제하는 절박한 순간에도

내 자식이 끝끝내 누군가를 끌어안아 혼자되는 운명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누군가의 시녀가 되지 않고

나 스스로 존재하는 나로 살아가는 내가 될 수 있을까.

매일 하는 질문 앞에 또 하나 덧얹는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침팬지보다 잔혹하지만

보노보보다 다정하기에


학습으로 얻은 포용일지라도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딸아.

혼자되는 것을 두려워 말자.

세상 마지막까지 다정하고 또 고독한 인간이 되자. 우리.


인생 독고다이.

친구는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고.

원래 그런 거야.


중요한 건 우리가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는 거야.


친구가 없을까 봐 부당한 대우를 참지 마.

무리에서 배제될까 봐 불합리한 상황을 방관하지 말자.

더 나아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다 불안하고 힘들어.

특히.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대부분

조급함으로 인해 삽질을 하는 거란다.

그러니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측은한 마음을 가지렴.

너는 아름답고 귀한 사람이야.

그러니 누구에게도 무시당해서도 안되고 그것을 받아들여서도 안돼

그런 사람에게서는 얼른 멀어지거라.


너는 잘해왔고

또 잘할 거야.



인간은 침팬지와 1%만큼 달라.

그 1%가 마더 테레사를 있게 한 거야.


그 1%가 네 안에 있단다.

그래서 우리는 기어코 인간일 거야.


알겠니?

우리는 인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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