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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언어

by ZAMBY




딸아이는 10살이다.

이제 한국도 서양식 나이 셈법을 적용하니 한국서도 열 살이다.

미국 아이들은 나이를 물으면 간혹 몇 살 몇 개월이에요 하고 답하기도 한다.


열 살이 된 아이는 조금 큰 아이의 행태를 보인다.

가끔 반항적인 눈빛을 하기도 하고

뭐. 왜. 같은 나의 이성을 저 멀리 날려버리는

짧은 질문(?) 따위를 내던지기도 한다.

쿵쿵거리며 계단을 오르거나

방문을 쾅 닫았다가

바람에 닫힌 거라며 변명을 하기도 한다.


나는 늘 아이의 크고 작은 행태에 민감하다.


아이의 아주 작은 말투나 행동에 이성을 잃고

따발총(따따따 쏘는 총?)처럼 잔소리를 쏟아내는 나를

이성이라는 이름의 내가 내려다본다.


- 좀 과하다. 고마해라. -


내 이성은

이성이 밀려나고 분노나 전투력만 남은 나를 보며 만류하지만

이미 그것은 내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 소리를 듣고도 계속 총알을 장전한다.


어떤 날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룸미러를 힐끗거리며

어떤 날은 설거지를 하면서

어떤 날에는 어디서 무얼 하던 중인지 기억도 안나는 시공간에서

나 스스로도 부끄러워 하이킥을 할 만한 발언들을 쏟아낸다.


그런 식으로 할 거면 한국에 가

너는 교회에 갈 자격도 없어

디즈니 월드 예약도 취소할 거야(취소 안됨)

학교는 왜 다니니. 그만두자


등등.


낯부끄러워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치졸한 겁박들을

쉬지 않고 쏟아낸다.

눈에는 광기 어린 투지를 머금고

입에서는 싸구려 독을 뿜어내며

나보다 35년이나 어린 생명체를 붙들고

끝장을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맞선다.


아.

그래도 글로 쓰면 좀 신사적이구나.

비디오로 찍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갈 법한 모습일 텐데.



이번 사화? 는 교회에 가는 일요일 아침에 일어났다.

나는 아이가 자기 물건을 챙기지 않고

새로 듣는 스포츠 수업의 장비에 대해서도 전혀 준비하지 않는데서 1차로 화가 났다.


그 장비들 중에 한 가지를 구입했는지 빠뜨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아이에게 물었다.

내가 그걸 그날 샀던가??

거기까지는 그래도 친절했다.

아이는 당연히(?) 나도 몰라?라고 무성의한 답을 한다.

나의 작은 분노는 여기서 2차 점화가 된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 물건이잖아. 생각해 봐."


아이는 나의 다그침이 귀찮은 듯 내뱉는다.

"아. 몰라. 나도 모르겠어."


이렇게 나의 싸구려 감정은 3차 점화를 통해 폭발했다.


참 쉽게도 불붙고, 참 천박하게 폭발하는 저렴한 폭죽 같다.

싸구려 불꽃에 불을 붙인 잘못으로

아이는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15분 동안 불발되는 싸구려 불꽃의 폭발음을 계속 들어야 했고

마침에 불꽃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소진되기에 이르렀다.


교회 주차장에서 아이에게 말했다.

"너 이제부터 나한테 존댓말 써."

오는 내내 내 공격의 주 무기는 존댓말 사용 강요였다.

엄마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 너의 잘못된 언행이 나오는 거라며 나는 억지를 부렸다.

그래서 별 반응 없는 아이를 옥죄는 마지막 공격으로


- 이제부터 존댓말 써 -

라는 무기를 택했던 것이다.


아이는 침묵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강요해도 아이의 굳게 다문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너는 교회에 갈 자격이 없으며

너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비열한 협박을 계속해댔다.



아이들을 집으로 들여보내고

한 시간 가량을 차 안에 앉아 화를 가라앉혔다.

각종 육아 조언에서 금기해야 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던

지난 30분이 고스란히 리와인드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잘못된 행동이

존댓말을 사용하라는 내 억압에 복종하지 않는

아이의 태도 때문이라고 자위했다.



화를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와 냉랭한 시간을 보낸 후

잠자리에 드는 밤이 찾아왔다.

우리 셋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제야 나는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아이에게 질문했다.


"너 그런데 왜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잠깐의 침묵 후에 돌아온 아이의 대답은

내 뒤통수를 또 한 번 세게 가격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결연하고 단호했다.


"존댓말을 쓰면 엄마랑 대화하는 것 같지 않아. 엄마랑 멀어지는 것 같아서 싫어."



"......"-




아이는 또 한 번 싸구려 불꽃놀이를 벌인 엄마를 용서했다.

나는 불량 폭죽을 가졌을 뿐 아니라

왜곡된 안경을 뒤집어쓴 채

아직은 나의 인내와 보호가 필요한 존재에게

저열한 협박을 남발하는

천박한 지배자였다.



나는 볼성사나운 중년 고집쟁이 아줌마 그 자체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고 왜곡하여

진실을 외면하고 상대의 감정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

고집불통 독재자.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한번 더 힘주어 잡았다.

눈물이 흘렀다.

배게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소리 내어 울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 코만 들이켰다.


-"미안해."


"엄마는 몰랐어. 네가 그런 생각을 할 줄은. "



"엄마 내가 속 썩여서 미안해."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다가왔다.

더럽게 얼룩진 내 마음에 아이의 순전한 마음이 보드랍게 포개어진다.

순전함이란 이런 것인가.

있는 그대로,

그래서 때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또 갑갑하기도 하지만

결국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더러운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가.


나는 아이의 언어에 관해 공부해야 한다.

45년을 살아온 나의 꼬이고 뒤틀린 언어세계 말고

순전하고 올곧은 아이의 언어를.

그것이 때로 소박하고, 때로 조악하여 내 귀에 보잘것없어도

그 침묵 안에 웅크린 너의 언어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잘못 제작된 따발총을 이제 제발 물리고

너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온몸으로 눈으로 귀로 피부와 영혼을 다해서

너의 마음을 읽어야 할 일이다.


부모가 되는 가장 중요한 과목이다.

너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




아이들은 그날 오후 내가 차 안에 앉아 화를 삭이는 동안

집 안에 각종 실마리들을 숨겨놓았었다.

실을 풀어 실마리들을 연결하고 내가 그것들을 찾아 최종 메시지를 찾도록 설치해 두었다.

냉랭한 오후와 저녁을 보내는 동안

나는 굳건히 그것들을 찾아보지 않았다.

집안에 실들을 넘어 다니고 피해 다니며 아이들이 만들어둔 메시지를 외면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샤워를 하는 동안

슬그머니 그 실들을 따라가며 쪽지를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의 쪽지는 작은 방 옷장에 들어있었다.


- 엄마 미안해. 사랑해 -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나 자신도 사랑하기에 벅찬 나를

이토록 사랑하고 용서할 존재가 세상에 또 있을까.


내가 신을 찾는 이유는

무가치한 내가 가치롭게 만들어진 존재임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인데

어쩌면 신은 나에게 저 아이들을 보내어

나를 어루만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이 짧아,

어쩌면 10년 남짓,

내 80년 인생에 겨우 10년간 누릴 수 있는 특별포상을

내가 이토록 허무하게 흘려보내다니.


어쩌면 부모보다 더 관대하고 포용적인 존재.

더 무조건적이고 더 절대적인 사랑.

가늠하기 어려운 용서와 맹목적인 신뢰를

나는 어리석게 지나치고 살아간다.



다시 한번 정신줄을 다잡고

불량 폭죽과 저렴한 따발총을 폐기하고

신의 선물을 대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아이들을 안아줘야겠다.


이런 다짐을 한지 한 달 조금 지난듯한데

나는 어제도 홧김에 폭죽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도대체 언제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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