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학생의 시
딸아이가 지난 학기에 상을 받았다던 시를 오늘에서야 받아보았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뛰어난 공감능력과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분이다.
선생님과 다른 일로 메일을 나누다가 문득 이 시 생각이 나서
아이의 작품을 볼 수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카피본을 보내주셨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겨울답지 않은 따스한 햇살 아래 앉아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이 시를 만나게 되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대략 이런 느낌이 아닐까.
전학생
나는 전학생이다.
그들은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가 개구리가 점프하듯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들 트럼펫처럼 와우 소리를 쳐.
그래도 몇 분 후면 그들은 다시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지.
한국친구들이 있다면, 나는 나비처럼 날 수 있을 텐데.
그녀는 나보다 더 예쁜 다른 친구들을 가지고 있지.
나는 슬프고 다시 혼자 남겨졌어.
아이의 글씨.
내 아이의 마음씨.
열 살짜리 여자아이의 아픔과 외로움.
낯선 곳에서 홀로 선 고독한 뒷모습이 겹쳐와
순간 가슴 한켠이 저릿, 했다.
아이는 방학 전과 사뭇 다른 학교생활을 하고 있기에.
자신을 버린(?) 친구를 잊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기에.
다행히 저 시의 화자는 '과거의' 내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 울보인 나는
다행히 놀이터에서 우는 엄마가 되진 않았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마음'이라는 신비로운 영역이 있다.
그것은 호르몬이나 뇌작용 같은 단어만으로 포괄할 수 없는
영적인(spiritual)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음.이라는 인간의 한 부분은 대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우리를 사랑하게 하고. 견디게 하고. 변화하게 이끄는 것일까.
우리는 견딘다.
참고 인내하고 때로 넘어지고 드러눕기도 한다.
이대로 다 끝났으면. 내일이 없었으면.
끝이 없을 거 같은 고통도.
바닥을 모르는 절망도.
우리에게 마음이 없다면 1-0.5-0.5=0
오늘은 슬프고. 내일과 모래 절반짜리 기쁨이 두 개면
0이 되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상수와 변수. 제곱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수학으로 가늠할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상수인지 변수인지 모를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기억/ 망각변수 * ㅁ +@ = 회복탄력성.
이 회복탄력성이 우리의 마음을 폭삭 내려앉지 않게 지탱해 준다.
ㅁ와@ 는 나는 알 수 없는 시대적 혹은 개인적인 변수 일거 같다.
내 딸아이는 마음 안에
저런 초라한 자아를 데리고 지난가을을 보내었구나.
I’m sad and left out again
I'm flying like a butterfly.
너는 나비가 되고 싶었구나.
아이가 친했던 한국인 친구로부터 일방적으로 거부당하고
한동안 반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런치타임과 리세스타임(휴식시간) 이 두렵다고 말하던 아침.
내가 이곳에 괜히 왔나. 생각했다.
아이도 함께 오면 더 좋을 거라 믿었다.
모두들 아이들에게 미국은 천국이라는 말만 듣고
별다른 고민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왔더랬다.
하지만 4학년인 내 아이는
낯선 미국땅에서 이유도 모른 채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거부당하고
혼자 점심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
다른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전베프를 멀리서 바라보아야 했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뭔가 잘 못한 일이 있나.
내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나.
그러다가 그 떠나버린 아이의 친구를 미워도 해보고
친구의 엄마와 상의도 했다.
원래 걔가 좀 그래요.
원래 그렇다는데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아이를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것 말곤.
그렇게 겨울이 오고.
이제 그 겨울도 끝을 향해가고 있다.
아이는 멋지게 터널을 헤치고 나왔다.
아직 마음에 검은 숯이 묻어있는 것이 보이지만
그래도 아이는 밝게 웃고
미국인 친구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카카오톡을 알려주어
그들과 매일 영상통화나 단톡을 한다.
인간의 마음은 참 경이롭다.
우리는 짓밟히고 어그러져도
어느 순간 다시 차오른다.
아니, 차오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제 인생 10년 차인 저 아이는
지난 가을을 지나며
무던히도 그 마음을 차오르게 하느라 바빴던듯하다.
나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
나비가 되고 싶은 마음
더 예쁘지 못해 더 예쁜 친구들에게 친구를 빼앗긴 마음.
쌍꺼풀 없는 눈에 노란 피부. 검은 머리카락이
다른 친구들의 푸른 눈과 하얀 피부. 금색 머리칼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new student.
그 가난한 마음을 이겨내고
너는 오늘도 환하게 웃는다.
너는 나에게 말한다.
여기 애들은 동양인들의 피부를 부러워한대. 건강해 보여서!!!
친구들이 나보고 너는 어떻게 그렇게 키가 크냐고 물어봐. 그래서 많이 먹는다고 했어. 헤헤.
너의 회복탄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그 아이들에게 나의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애썼을
너의 인내와 노력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우리는 회복한다.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 위해.
나는 너로 인해 또 한 번 배운다.
순간순간 스러지는 내 마음을 추슬러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너를 응원해야지.
젖은 날개를 뽀송하게 말려 힘차게 날아오르는 너를.
언제까지고 바라보아야지.
그리하여
또 회복하는 내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