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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배려란

by ZAMBY



아이는 미국에 와서 친구를 사귀려 애썼다.


한국에서 3학년을 절반 정도 보내면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했다.

또래에 맞게 성장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아이돌의 댄스를 연습하고

소위말하는 3코스, 마라탕-인생 네 컷-아트박스를 돌며 플렉스를 하기도 했다.

생일에는 친한 친구들을 불러 작은 파티를 했고

전학 온 새 친구와 가까워져 그 친구집에 놀러 가거나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친구관계를 맺으며 지내온 아이는

미국에 와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바람에

친구를 사귀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적으로 어린 둘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노는 일상을 보내기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섬세하게 자기표현을 하거나

상대의 뉘앙스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아도

그저 하루종일 우르르 뛰어다니고 외마디로도 충분한(?) 소통을 하는듯했다.


아이의 개인적인 성향차이도 있겠지만

9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이미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것은 한국과 미국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와 같이 또래아이와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던 내 아이는

귀와 입이 제 뜻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러던 중에 좋은 친구 G와 L 둘을 사귀었다.

여름방학에는 L을 집으로 초대해 놀기도 하고

가을부터는 부쩍 가까워서 그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기도 했다.

내 보기에 좋은 친구관계였다.

아이가 금사빠라 급하게 들이댄다 싶으면 친구는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둘은 제법 친했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어느 정도 영어로 말하고 알아듣는데 익숙해졌다.

아이는 지난가을에 다른 한국인 친구에게 상처도 받았고

또 그 실연(?)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고 성장했다.



그렇게 한 뼘 더 자란 열 살 여자아이가 며칠 전 저녁식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엄마. L과 함께 있으면,

마치.. 내가 장애인이 된 거 같아.

(아이의 표현이 서툴러서 과한 표현을 사용한 거 같습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응?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L은 아주 영특하고 재주가 많다.

그녀의 부모님은 아마도 좋은 가정교육을 시키고

아이의 자율성과 개성을 존중하며,

그 아버지는 영어가 부족한 나와도 제법 긴 대화를 나눌 만큼

인내심과 배려가 깊은 사람이다.

그래서 늘 놀이를 할 때,

내 아이는 L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녀의 방식을 따른다.

나는 L이 혼자서 놀이는 하는 기술(?), 창의적인 놀이 방식,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내 아이도 배웠으면 내심 바랐다.


그런데 아이가 저런 표현을 하다니.

놀랍고 의아했다.


아이는 그간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G와 함께 놀 때는 내가 단어를 잘 이해 못 하거나 할 때

G가 손과 표정을 사용해서 설명을 해줘.

그게 아주 자연스럽고 또 재미있어.

그런데 L은 마치 내가 듣기나 말하기에 큰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해.

L은 친절하고 고마운 친구지만

L이 그런 행동을 할 때면 슬퍼져.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거 같았다.


- 그래.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장애인 분들이 그런 걸로 불편을 많이 느낀대

사람들이 자연스럽지 않게 배려를 하거나 과하게 반응할 때 말이야. -


맞아.

나 학교에서 그런 영상 본 적 있어.

막 오버하고, 안 해도 되는 말을 큰소리로 하면서.

자기가 마치 올바른 사람이라도 되는 냥 행동하는 거.


얼마 전에 G가 팔에 깁스를 하고 왔거든

근데 그날 아침에 L이 우리도 모두 오른손을 사용하지 말자는 거야.

G가 오른손을 못 쓰니까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나는 그게 이해가 안돼서 너무 불편했어.

G가 괜찮다는데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근데 엄마. 나 이 이야기 처음하는 거야.


아이가 소곤거렸다.

아이의 눈빛이 말하는 의미가 전해졌다.


- 친구가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데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그래? -


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내가 나쁜 사람 같아서.


아이의 고민을 알 거 같았다.

그 순간 영화 300에서 보았던 장면이 스쳐 지났다.


I'm Generous.


스파르타를 침략하러 온 오스만제국의 황제가

귀걸이 코걸이를 잔뜩 매달고 스파르타의 왕을

굽어보며 하던 대사.



배려라는 것은 참 좋은 거다.

그것이 행동인지 감정인지 정확히 구별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세심한 행동.

같은 것이 아닐까.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배려의 의미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으로 적어두었다.

영어로는 consideration

careful thought, typically over a period of time.

한국어에서는 행위에 가깝고 영어에서는 생각에 가까운 듯한 뜻풀이.



내 아이의 영특한 친구 L은

선진시민으로서, 이민자 혹은 약자에 대해 차별 없고 공정하며 친절한 태도를 견지하려 애를 쓰고 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건전한 생각과 바른 인성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내 아이는 늘 느껴온 불편한 마음이 또 불편했던 것이다.



좋은 배려란 무엇일까.


부모가 자식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동료가 동료에게

그리고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더 잘하는' 사람이 덜 잘하는 사람에게


더 가진 것은 무엇일까.

더 잘한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아무렇지 않게 받을 수 있는 것.

G가 내 딸에게 하는 작은 손짓과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 안에는 분명 내 딸을 편안하게 만드는 깊은 배려가 배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스며있어

드러나지 않고

때로 너무나 자연스러워 깨닫지 못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받는 이가 시간이 지난 후에게 깨닫게 되는 것.

아.

내가 그런 배려를 받았구나.

그렇게.



마음을 털어놓은 후련함과 친구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서성이는

내 아이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었다.


엄마도 그 마음 알 거 같아.

나도 그런 마음 느낄 때 있어.

그리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

너를 배려하는 상대방이 살짝 촌스러워서 그런 거야.

잘하고 싶은데 세련되게 표현을 못해서 그런 거.

그래도 취지는 좋잖아.

좀 기다려주자.

L의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니까

앞으로 L이 자라면서 부모님들이 잘 가르쳐 주실 거야.

그리고 살다 보면 이불 킥하는 순간이 와.

물론 L이 좋은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말이지. 하하.


나는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에게는 L이었던 날들이 없었나.

나는 혹시 배려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초라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미국에서는 Do you need any help? 또는 뭐 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집에 놀러 온 아이들에게 사과 줄까? 쿠키 먹을래? 하고 물어보면

종종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I'm good.



노 땡큐 말고 나는 좋아요.


나는 좋아요.

나는 좋아. 지금 이대로.


나는 이 말이 좋아서 기억해 둔다.

나는 좋아.



아이가 대화를 마무리했다.


엄마 나는 나중에 한국 가면 잘하고 싶어.


잘하고 싶다는 그 말속에 많은 의미들이 들어있음을 알기에

딱히 보태지도 덜지도 않았다.


그래 You're good.

그리고 너의 친구 L도 여전히 good.


너희는 자라고 있기에

너의 배려는 성장하고 있기에

그래서 언젠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세상을 밝게 비출 것이므로.

우리의 배려는 ing니까.

being thoughtful 하기에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므로.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I’m good.

너의 세포 구석구석 품격 있는 배려가 스며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었으면

너의 작은 아픔들을 소복이 쌓아 올려

세상에 필요한 소금이 되었으면.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너를 보며 오늘도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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