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춘기를 준비하는 태도

by ZAMBY



딸아이는 열 살이 되었다.


이 아이는 키가 또래보다 크고

이미 2년 전에 가슴발달을 알리는 징후도 시작되어

사춘기가 조금 빠르게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이라고 해야 그저 뭐 남들보다 조금 빨리 2차 성징이 나타나려니.

그 정도였지 사실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나는 늦은 사춘기를 매우 요란하게 겪었던 유경험자로서

그 악몽 같은 시간들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 고역이라

애써 외면했던지도 모르겠다.


내 사춘기는 제법,이었다.


우선 남들은 중학교 때 오는 질풍노도를 고1겨울방학에 만났으니

그 바람과 파도의 덩치와 파워가 남들의 곱절은 되었다.


학교에서는 하루 종일 엎드려 지냈고

때로는 멋지게(?) 백지를 내고 친구들의 시선을 받으며 화장실로 향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철학책 따위를 들고 다니며 고독을 씹기도 했고

친구들의 곰살맞은 우정표현이나 편지, 선물 따위를 하찮게 버리기도 했다.


고2부터는 본격적으로 토네이도급 돌풍을 이끌고 다니며

맨 뒷자리에 앉은 재미있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매일이 마지막인 듯 노는 친구들은

1등이 그 무리에 영입(?)된 것에 한껏 뿌듯해했다.

매일 엎드려 자다 보면

결국 어느 날에는 맨 뒷자리에 앉아있게 된다.

나는 밀려나는 내 책상의 가로 배열 숫자만큼

떨어지는 성적 등위에 쾌감을 느꼈다.


선생님들의 잔소리, 기도, 학부모 면담에 이르기까지

갖은 배려와 관심이 하찮고 천박해 보였고

미친 딸에 대한 부모님의 분노와 억압, 증오는

내 안에 바람을 더 휘몰아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뭐. 거의 미친 X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고3 여름방학에 나는 제정신을 찾았다.


하지만 1년 반의 여정은 나와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버지와의 골은 그 이후로 20년이 흐르고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매워졌다.



뭐.

그랬다고.


그런 내가 딸을 낳았고, 그 딸이 열 살이 되었고.

비로소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내 딸이니까.

내 유전자를 받았으니.

녹록지 않으리라.


외모로는 아빠의 판박이인 이 아이는

어쩌면 그리도 속은 나를 닮은 건지.

늘 내 마음에 숙제를 가득 안기는데

이제 그 숙제의 난이도와 분량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저 먼 사춘기라는 기압의 중심부에서

바람과 구름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깊은 분노를 느끼고

사흘에 한 번꼴로 빈 스텐 물병을 집어 들거나

양손의 손가락을 구부려 허공을 쥐어뜯는다.

아이에게 저열한 협박을 하기도 하고

내 말의 마침표가 찍히기도 전에

마하의 속도로 따라오는 아이의 말대답에 꽥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휙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

쌩 차갑게 식어버리는 아이의 표정

꽝 닫히는 문소리

쿵쿵 걸어 올라가는 계단소리

논리에 맞지 않지만 나름 전투의 자세가 갖추어진 아이의 변(變)

순간순간 등장하는 사소한 거짓말



이런 것들이 간헐적으로 내 일상을 툭 걷어찬다.

아이는 학교를 다녀오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자기 고백을 하며 내 품을 파고든다.

어떤 날에는 온몸으로 안아주고

또 어떤 순간에는

내가 왜 엄마라는 게 돼서 이 고생인가 싶어 대충 안는다.


비열한 나는,

큰아이가 내 기준에 못된 행동을 하면

귀엽기만 한 둘째에게 더 좋은 내가 된다.

보란 듯이.

저열하고 치졸한 나는,

오늘도 반성하고 내일은 더 잘하겠다 다짐하지만

모레는 또 지질한 엄마가 된다.



오늘 아침에 별다른 문제없이 학교에 들어간 열살아.

나는 오늘도 너를 생각하며 내가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엄마를 지독히도 울렸던 죄를.

그렇게도 타협하지 못했던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나의 얕은 이해를.

그 벌을 너로 인해 받는다면

그래. 그래도 기꺼이 감사해야 하겠지.


그 이름도 찬란한 사춘기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거쳐가는 회전교차로 같은 거 아닐까.

이왕 할 거 빨리하자.


우리 오늘도 사이좋게 지내자.


아침마다 너에게 건네는 인사가 이 말이 될 줄이야.

사춘기를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네가 어서 회전교차로를 무사히 돌아, 가던 길로 가기를 비는 것일까.


나는 오늘도 Yeild 표지판을 바라보며

교차로 어귀에 그저 서 있다.




요즘 딥시크 때문에 타격감이 좀 있지만

오리지널을 아끼는 나는 여전히 챗지피티를 부른다.

질풍노도가 대체 뭐냐는 질문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질풍노도(疾風怒濤)**는 빠르고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를 뜻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사춘기의 감정적 혼란과 극단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 어원과 의미

원래는 18세기 후반 독일에서 시작된 문학·철학 운동 "Sturm und Drang"(질풍과 격랑)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감성적이고 강렬한 감정을 중시하며, 기존 사회 질서와 권위에 저항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청소년기의 감정 기복이 심하고 반항적인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입니다.

� 사춘기와 질풍노도

사춘기에는 호르몬 변화와 자아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감정이 불안정해지기 쉽습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하거나 슬퍼함

부모나 어른들의 간섭을 거부하고 독립을 원함

친구 관계와 이성에 대한 관심 증가

자신의 미래와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

이 시기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감을 찾게 됩니다. �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3화돌멩이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