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 공항에서 생이별하는 법
어김없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극적인 수난이 수반된다.
이번 수난은 더욱 극적이라 남편에게도 말못한 사건이다.
그래도 나는 쓴다.
뉴욕의 JFK 국제공항은 악명이 높다.
그 규모와 명성에 맞는 번잡함과 잦은 사건사고로.
주변 친구들이 JFK 공항에서 짐을 분실해서 몇날며칠 고생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기에
이번 여행의 출도착이 JFK인것을 보고 살짝 긴장했다.
설마.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는 헛된 기대를 동반한.
짧은 비행끝에 우리는 넓은 공항에 내렸다.
가뿐했다.
서울이나 제주에 가는 마음으로 가볍게 내렸다.
짐도 빠르게 찾았다.
국내선이라 그런가. 분실따위 나에게는 일어나는 불행이 아니구나.
음. 출발이 좋다.
우리는 즐거웠다.
짐을 찾고 늘 하듯 우버를 검색한다.
비싸다.
멀다. 여기서 맨하탄은. 그리고 온통 붉은색 도로.
소요시간 1시간30분. 비용 112달러
역시 뉴욕이구나.
히드로의 악몽을 뒤로하고 용감하게 대중교통노선을 검색한다.
쉽네? 싸네?
얘들아 절약해서 기념품사주마. 가쟈!
우리는 에어트레인을 찾아 걷는다.
이정표는 보기에 편했고, 공항의 스테프들은 친절했다.
중간중간 공항 바닥에 누워자는 분들을 요리조리 피해
우리는 에어트레인 승강장에 도착했다.
한창 붐비는 시간이었다.
긴 줄이었고 사람들은 커다란 여행가방과 씨름하며 열차에 몸을 싣고있었다.
낡은 1호선 지하철 도어처럼
자메이카행 열차의 문은 열렸다 닫혔다를 몇번 반복하며 승객들와 쌀보리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문이 열린듯했다.
사람들은 재빠르게 열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6살짜리 딸아이도 폴짝, 뛰어들어갔다.
문제는 그 짧은 순간에 열차의 자동문이, 정말 자동으로 닫혔다.
자동으로 닫히는 문틈 사이로 그 아이는 다람쥐 마냥 쑉, 빠져들어갔다.
마치 장애물 게임을 하듯이.
서바이벌 게임의 주인공이 된듯이.
결코 잊지 못할 장면.
노란빛이 나는 도어 윈도우 안에,
키가 요만한 여자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고있다.
그 주변에 모든 키 큰 어른들의 눈도 함께 동그랗다.
문을 두드려도 그 크레이지 자동문은 꿈쩍도 않는다.
그리고 서서히 왼편으로 움직이는 차.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우리는 이별했다.
애타게 문을 두드리며 나는 그렇게 6살 여자아이를 보냈다.
엄마가 갈께. 를 수화로 말하면서.
기억난다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 곧 눈물이 쏟아질듯한.
글을 쓰는 지금도 약간 손이 떨린다.
모두가 놀랐고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의 탄성이 들렸다.
오마이! 오 마이. 오마이 오망..................
동생을 잡아보려 손을 내밀었던 첫째는 문에 끼었던 손가락을 잡은채 엉엉 울고있고
나는 할말을 잃고 곁에 서있던 인도인처럼 생긴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영어를 매우 잘했다.
얼굴은 인도인이지만 발음은 네이티브였다.
상황대처능력도 좋아서
여기저기 스테프를 찾아 뛰어다니다가 이머젼씨 콜 버튼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본인의 아이를 잃어버린 것처럼
다급하고 절박하게 그 모든 상황을 대처했다.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황을 침착하게, 하지만 긴급한 어조로 설명했다.
내가 영어를 잘못한다는 설명도 함께.
그 긴급한 순간에도 나는 아저씨의 설명에 왜 자존심 상했을까.
참 속되다.
아저씨는 다음열차를 타고 가버리고
나는 스피커 앞에 서서 아이를 찾았다는 콜을 기다렸다.
울고있는 첫째를 달래면서.
1분이 1시간 같았다.
그리고 지나가는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스테프를 붙잡고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했다.
좀전에 아저씨가 사용한 단어를 그대로 베껴서. 유창(?)하게.
조끼입은 아저씨는 다시 한번 이머전씨에 전화를 하고 나에게 다음 터미널에서 내리면
네 아이를 만날 수 있을거라 전해주었다.
다음 터미널로 가는 그 짧은 시간이 지구 두어바퀴를 도는 것 마냥 길고 느렸다.
반면 내 머릿속은 천만가지 시나리오들이 생성되고 지워졌다.
챗GPT보다 빨랐을거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거다.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키가 큰 아저씨 옆에 서있던 조그만 네 모습
큰 눈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힌 네 얼굴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문 너의 조그만 앞니.
소심하게 검지 손가락을 붙잡고 있던 네 작고 통통한 오른손도.
예쁘고 친절한 언니가 네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그녀는 내가 도착하자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조끼입은 아저씨 곁에서 상봉의 기쁨 나누기전에
세명의 경찰아저씨들을 기다려야했다.
테러범들이 나오는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모습
등과 가슴에 폴리스 글씨가 적힌 검정색 유니폼을 입고
어깨에 끼워진 무전기를 향해 뭐라뭐라 말하며 다가오는 세 명의 경찰 아저씨들.
나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주의한 부모가 되어 다시한번 풀이죽었다.
그들은 나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아이의 상태와 아이를 찾은 시간을 분단위로 체크해 수첩에 적은 후
다시 무전기에 뭐라뭐라 말을하며 떠나갔다.
세명이나 온 이유는 무엇일까.
두 명의 경찰이 양쪽으로 내 팔짱을끼고 연행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는 조심스럽게 에어트레인에 탑승했다.
딸아이의 다람쥐같은 민첩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저렴하게(!) 맨하탄에 도착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아이들을 위로했지만
나는 지금도 나의 느린 움직임과 부주의함을 자책하며 글을 쓴다.
짐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네 점퍼 뒷덜미를 잡고 있었어야 했다.
문이 닫히면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 작은 몸을 웅크려 틈안으로 뛰어들어갈 너라는 걸
진작에 인지하고 있어야했다.
미안하다.
뉴욕 한복판에서 너를 혼자 지하첼에 태워 보냈더라면
나는 지금처럼 여유롭게 수난기나 쓰고 있을 수 있었을까.
오우.
생각중지.
이렇게 내 뉴욕여행은 스릴러와 드라마가 믹스된 에피소드로 시작했다.
자동문 앞에선 누군가에 말해주고 싶다.
자동문에게는 휴머니즘이 없다고
아이의 손을 잘 잡고 있으라고
하다못해 뒷덜미라도.
시작은 스릴러였지만
모든것이 좋았던 여행
가을의 뉴욕은 참 아름답다.
내 평생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싶은 곳
비싸고 붐비고 냄새나고
하지만 재미있고 신나는 도시
번잡함 속에 아름다운 보석을 담고있는 곳
센트럴 파크에서 귀한 여행기간 절반을 보낸 사람 나야나
떨어지는 낙엽, 그위에 뒹구는 너.
빌딜숲을 바라보며 매끈하게 미끄러지는 아이스스케이트.
그리고 그위에 뒹구는 나.
아직도 아픈 꼬리뼈.
그렇게 대도시의 공원 즐기는 법을 마스터한 우리는
자동문의 공포를 잠시 잊고
가슴에 뉴욕in가을을 새기고 무사히 돌아왔다.
새벽5시. 돌아가는 공항까지 교통수단은 한인콜택시였다.
우버보다 저렴하고 또 자동문이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