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름 - 은정
전화가 울린다.
응? 오빠.
이제 곧 마쳐. 응 알았어 30분 뒤에 와.
응.
그래. 우리도 이제 가자.
너무 늦었다.
야 늦긴 뭘 늦어
정민이만 가고 우리는 계속 놀자.
은정이는 이미 다 취했다.
은정이는 술이 약하다.
그녀의 통통한 손이 내 손을 잡는다.
아직 멀었어. 아직 멀..었...다고...
우리 생일파티하러 모인 거 아니야?
내 서른 살 생일은 대체 누가 축하해 주는 거야?
다들 쿡쿡 웃는다.
야 너만 서른이야?
아 맞네
죄다 생일이 나보다 앞이구나.
은정이는 돌아왔다.
스물다섯에 첫사랑과 결혼하고 스물여섯에 돌아왔다.
그녀가 결혼할 때 나는 고시원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식에 못 갔다.
그녀는 대학동기랑 결혼했다.
활달하고 낙천적인 은정이는 학과에서나 동아리에서나 늘 사람에 둘러 싸여 지냈다.
그녀는 항상 웃었고, 큰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고 꾸밈이 없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아버지 같은 존재를 찾아 헤맸다.
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엄마가
아버지 기일이 한 달 지난 후에 뒷산 산책로에서 만난 아저씨와 사랑에 빠진 후부터. 였다.
은정이는 엄마가 그 아저씨와 사귄다는 걸 알게 된 날. 무슨 사랑이 그런 거냐며 울었다.
사랑이 뭐 이따위냐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냐고.
사랑이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수단이냐며.
엉엉 울었다.
그리고 2년 후에 엄마에게 보란 듯이 결혼했다.
그리고 1년 후에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그 아저씨도 함께 있는 집으로.
은정이는 남편과 헤어지고 바텐더들이 있는 바에 들락거렸다.
나는 잘 모르겠다.
바텐더들은 저녁부터 일을 시작하고 새벽이면 일을 마치는 거 같다.
그리고 밤새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술을 따라주고 만들어도 주는 직업 같았다.
은정이는 2년 내내 어떤 바에서 같은 바텐더를 만났다.
옆으로 길게 찢어지고 웃으면 사라지는 눈을 가진 남자.
목소리가 여리고 소곤대는 남자.
어디서 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 번에 알기 어려운 남자를.
그는 누구의 것도 아닌 거 같았다.
그냥 공중에 떠있는 민들레 씨앗처럼.
그는 어느 날 사라졌다가
또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은정이는 아마도 그 남자 이야기를 하려는 거 같다.
우리는 안다.
그 끝이 어딘지.
그런 민들레 씨앗을 만나는 은정의 떠도는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바람에 날려 배회하다 결국에 다시 바람으로 돌아갈 남자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휘적대는 은정이를 짊어지고 사케집을 나선다.
금요일이다.
시끌시끌. 북적북적.
여름의 밤거리는 뜨겁다.
수증기 가득한 공기.
저 구석에서 구토하는 여자.
그 등을 두드리는 남자.
휘청대는 사람들.
아득하다.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나와 이 흥겨움은 참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먹다 남긴 생일케이크 상자를 들고 택시에 오른다.
은정이는 택시 안쪽 창문에 기대어 있다.
너를 바래다주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