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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은 조용하다.
혹시 아빠가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시면 어쩌나
걱정하며 조심스레 현관문을 닫는다.
아빠는 엄했다. 늘 무서웠고. 그러다가도 다정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었고.
그래서 힘든 사랑을 쟁취하며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에 성공했다.
엄마는 언제나 아빠의 편이었다.
이른 새벽 일어나 구깃한 남편의 바지 세로줄을 세웠고,
하루도 빠짐없이 따뜻한 아침을 차렸다.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에게 꿀물을 건네고
한 달에 한 번 받는 생활비에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그 시절 남자와 여자의 덕목은 정해져 있어서
엄마의 노동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아빠의 사회 생활은 가치로운 것이 되었다.
집 안에서 ‘노는’ 여자에 비해
집 밖에서 ‘일하는’ 남자는 여러 방식으로 보상을 받았다.
그런 이해와 관용 덕에
아빠는 매일같이 술에 취하고, 옷깃에 누런 파운데이션을 묻혀왔다.
그리고 남들보다 이른 승진을 했다.
엄마를 사랑하던 열정으로
일을, 상사를 그리고 유흥업소에 여인들을 대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에,
나는 사춘기와 대학 시절을 줄곧 증오와 갈망이 뒤엉킨 감정으로 아빠를 대했다.
엄마를 외롭게 하는 남자에 대한 증오.
엄마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그의 능력에 대한 혐오
그리고 나를 보듬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에 대한 갈망.
늘 사회와 아내를 향해있던 시선.
나는 그를 미워하면서 또 원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아버지를 원하지 않는 성인 여성이 되었다.
대학 신입생 때 학교
선배들과 종강 파티를 마치고 술에 취해 귀가한 나는
집 현관문 앞에서 별을 보았다.
내 왼뺨이 아빠의 오른손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얼굴이 휘청 돌아앉았다.
당시 나의 귀가 통금시간은 10시였다.
아빠는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지만 과하게 속박했다.
맞아도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평온했다.
“죄송합니다.”
늘 하듯 허리를 반쯤 숙이고 어깨는 살짝 틀어 예의를 갖추려 애쓰며.
방문도 최대한 공손히 닫았다.
그리고 가방을 쌌다.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는 나를 잡은 건 엄마였다.
아빠는 저쪽 베란다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가 열린 문틈 사이로 포물선을 그리며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남았다.
10년이 지난 일이다.
그 후로는 맞은 적이 없다.
안다. 아빠의 사랑을.
하지만 회사나 일. 엄마에 대한 사랑과는 부피와 무게가 확연히 다른 사랑임을.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했다.
엄마만큼 나를 사랑해 줄 남성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