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 겨울 - 자신감
차가운 공기.
겨울이 시작되었고
나는 반수에 성공하고 새 학교에서 두 번째 신입생 시절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전 대학에서 사귀던 선배는 내가 반수에 성공하자 많이 당황했다. 그는 군인이었고. 그래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휴가를 나오면 늘 학교 앞 만화가게나 오락실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 그의 절박함을 알 길이 없었다. 새로운 학교는 즐거웠고.
나에게 친절한 남자들은 많았다.
초조함은 초라함을 낳는다.
어느 날부터 나는 그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 첫 이별이었다.
찬란했던 시절이 작고 볼품없어지는 것이 서글펐다.
우리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헤어졌다.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이별 앞에 담담했다.
혼자서도 뭐든 다 할 수 있다 싶을 만큼.
나는 오만했다.
이별이 이런 거라면 나는 더한 것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방학을 맞이하며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과외수업으로 쉽게 벌 수 있는 용돈을 무슨 바람인지 힘들게 벌어보고 싶어서
학교 앞 햄버거 가게에 갔다.
감자도 튀기고 패티도 구워보고 싶었던지도.
그리고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어려웠다.
요리라곤 노른자가 터진 계란프라이만 해본 게 전부인 나는 청소부터 시작했다.
감자를 튀길 수도, 패티를 뒤집을 수도 없었다.
없는 눈치를 장착해야 했고
과외를 하면서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에게 받는 존대와 존중은
타일바닥 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허둥지둥. 안절부절. 아. 그냥 과외나 할걸.
점장언니의 신경질적인 눈길에 내일 그만둔다고 할까. 중얼대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내 빗자루를 휙 빼앗았다.
키가 크고 호리 한 그는 신속하게 바닥을 정리하고 내게 주어진 몇 가지 일들을 척척 해냈다.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농담을 던지며 여유롭게.
마치 나는 투명인간이 된 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경외의 눈빛으로 그의 신속하고 야무진 일 머리를 지켜보면서.
플라스틱 빗자루를 한쪽 벽에 기대어두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지 그래
(어? 어떻게 알았지)
너 같은 애들 많이 봤어.
공주님처럼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으면서 불만만 많은 애들.
그냥 내일부터 나오지 마.
……...
매니저 언니는 웃으며 그 녀석을 달랬다.
어제 온 애야.
네가 좀 잘 가르쳐. 그래도 웃는상에 싹싹해서 일 좀 배우면 카운터 시킬 거야.
(뭐야.
카운터 시킬 거면서 왜 빗자루를 주는 건데)
나는 녀석을 노려보았다.
눈이 크고, 날카롭다.
피식- 웃는다.
부끄럽다.
비질 하나 야무지게 할 줄 모르는 내가.
너의 냉소가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내 일상을 곤두박이 친다.
너의 차가운 눈앞에 수십 번 스러질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잘하고 싶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내 스물두 살 겨울을 작은 햄버거 가게에서 보내게 되었다.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