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름 - 사케집
정민이는 기다리고 있다.
내 눈 속을 살피며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살핀다.
내 각막과 수정체 이면에 시신경. 시근육. 그것들을 둘러싼 자잘한 혈관들의 미세한 경련까지 샅샅이 살피는듯하다.
그녀는 도사다.
늘 자기 사랑에는 선인장처럼 건조하고 까슬하지만
내 기분에는 잘 구워진 카스텔라처럼 적당히 포송하고 폭닥하다.
내 기분을. 내 심정을.
어쩌면 나보다 더 잘 해석해 줄 그녀다.
안된다
단호한 한마디.
뭐가.
안된다고.
헤헤.
웃지 마. 안된다고.
히죽.
알아.
나도.
눈앞이 조금 뿌옇다.
술인지. 잠인지. 허무인지. 소란인지.
정의 내리기 힘든 원인으로 잠깐 앞이 흐리다.
네 어깨에 기대어 엉엉 울었었는데.
우리 둘이 막 쌍욕하면서 울었지.
각자의 연애를 한탄하면서.
거기.
거기 아직 있나?
그 집에만 들어가면 우리 기어서 나왔었는데
응? 거기?
지하?
역시 정민이다.
척. 하면 탁. 하는.
우리를 멍멍이로 변신시키는 그 계단
거기 계란탕 생각난다.
분명히 안에 뭘 탔을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어.
아 부끄럽네.
우리는 웃는다.
그리고 다시 정적.
………
한 번 더. 단호하게
안 되는 거 알지?
그녀는 사케잔을 양손으로 감싸고 사무라이처럼 준엄하게 명한다.
알아.
나도 이제 늙었어. ㅎㅎ
생일이다. 서른 번째 생일.
아니 서른 살이 되는 생일.
나는 서른이 되면 내가 제법 늙어있을 줄 알았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마음의 흐름을 좌우하며
무엇이든 내 의지대로 움직일 줄 알았다.
나는 이제 겨우 구청에서 시장상인들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이나 알려주는 2년 차 주사다.
내 하루는 구청과 시장을 오가며
팀장님의 신세한탄과 시장 아주머니들의 불만사항을 듣고
한글파일과 액셀에 치이며 지나간다.
어느 하나 내 의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주말이면 목욕탕에 들러 세신을 받는 정도?
돈을 내고 편안함을 얻는 것.
그 정도만큼 나는 자유롭다.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다 될 거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그 겨울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