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전화

6

by ZAMBY



- 나 결혼한다. -


지워진 메일주소. 이름으로 지은 메일주소.


장마가 시작된 6월의 공기는 눅진하게 온 방 안에 내려앉았다.

3년 전, 유난히 길었던 장마.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두통약 통과 커피잔이 함께 놓여있었다.

2년간의 고시 공부와 두 번의 낙방은

내 이력서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깨끗한 공백으로 채웠다.

나는 내 인생의 빈칸을 메워줄 그럴싸한 경력을 첨가하기 위해

하찮은 무용담들까지 들춰내고 있었다.


메일함 속에는 각종 취업박람회 소식이나

기업 인사담당자의 공지 같은 것들이 있었고,

스팸들도 더러 도착했다.

필요한 메일은 제목부터 달랐다.


- 나 결혼한다. -


제목이 곧 내용인 메일.

결론만 나오는 너의 러브스토리.


‘뭐 하러 이런 메일은 보내. 헤어진 지가 언젠데...’

중얼거렸지만 얼마 못 가 집요하게 너의 결혼식 사진을 찾았다.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의 미니홈피 계정을 타고 들어가

기어코 그 결혼이 불행함을. 그 결혼식이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것임을 확인하려 했었다.


사진 속에 어린 부부는 편안해 보였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소박했다.

경건하고 진지했고 사랑하는 연인의 결합으로 보였다.


어설프게 넥타이를 맨 대학생 하객들이

너와 네 신부 뒤로 엉성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뭘 기대한 거지.’

헛웃음이 나왔다.

네 옆의 아름다운 여인은,

적어도 지금 모니터 앞의 나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나는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됐네.”

마침표를 찍듯 내뱉고 메일을 휴지통으로 보냈다.

“그래. 행복해라.”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휴지통에 들어간 메일을 또 한번 삭제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가장 후 순위 회사의 면접장에 앉아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20대가 당혹스러워,

나는 면접장에서 오히려 담담했다.

그해 겨울, 신입사원 연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연수원에서 만난 적당한 외모와 성격의 동기와 연애를 시작한 즈음.

재미없는 첫 직장을 영혼 없이 오가던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익숙한 번호.

아무 말이 없어도 너임을 아는 전화

말 없이 수화기를 들고 잠시 멈추었다.

왁자지껄한 호프집에서 술에 취한 팀원들이 건배를 외치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하고 심장 소리는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이곳의 나와 수화기 건너편의 너는

끈기 있게 수 분간 멈추어 있었다.

금요일 저녁 호프집의 소음이

의외로 균질하고 지속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즈음

전화는 끊겼다.


그날 이후

다시 일상을 조정했다.

지루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무난한 연인과 이별했다.


너와의 진짜 이별은 그 날이었다.

네 말 없는 전화는 나의 열패감을 위로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런 것은 옛 연인에 대한 미련 같은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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