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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Dec 13. 2024

6

서른, 여름 - 사케집



정민이는 기다리고 있다.

내 눈 속을 살피며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살핀다.

내 각막과 수정체 이면에 시신경. 시근육. 그것들을 둘러싼 자잘한 혈관들의 미세한 경련까지 샅샅이 살피는듯하다.

그녀는 도사다.

늘 자기 사랑에는 선인장처럼 건조하고 까슬하지만

내 기분에는 잘 구워진 카스텔라처럼 적당히 포송하고 폭닥하다.

내 기분을. 내 심정을.

어쩌면 나보다 더 잘 해석해 줄 그녀다.


안된다


단호한 한마디.


뭐가.


안된다고.


헤헤.


웃지 마. 안된다고.


히죽.

알아.

나도.



눈앞이 조금 뿌옇다.

술인지. 잠인지. 허무인지. 소란인지.

정의 내리기 힘든 원인으로 잠깐 앞이 흐리다.


네 어깨에 기대어 엉엉 울었었는데.

우리 둘이 막 쌍욕하면서 울었지.

각자의 연애를 한탄하면서.




거기.

거기 아직 있나?

그 집에만 들어가면 우리 기어서 나왔었는데  


응? 거기?

지하?


역시 정민이다.

척. 하면 탁. 하는.



우리를 멍멍이로 변신시키는 그 계단

거기 계란탕 생각난다.

분명히 안에 뭘 탔을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어.

아 부끄럽네.


우리는 웃는다.

그리고 다시 정적.

………


한 번 더. 단호하게

안 되는 거 알지?

그녀는 사케잔을 양손으로 감싸고 사무라이처럼 준엄하게 명한다.



알아.

나도 이제 늙었어. ㅎㅎ


생일이다. 서른 번째 생일.

아니 서른 살이 되는 생일.

나는 서른이 되면 내가 제법 늙어있을 줄 알았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마음의 흐름을 좌우하며

무엇이든 내 의지대로 움직일 줄 알았다.

나는 이제 겨우 구청에서 시장상인들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이나 알려주는 2년 차 주사다.

내 하루는 구청과 시장을 오가며

팀장님의 신세한탄과 시장 아주머니들의 불만사항을 듣고

한글파일과 액셀에 치이며 지나간다.

어느 하나 내 의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주말이면 목욕탕에 들러 세신을 받는 정도?

돈을 내고 편안함을 얻는 것.

그 정도만큼 나는 자유롭다.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다 될 거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그 겨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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