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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Dec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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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름  - 정민




생일파티는 1차, 2차를 거쳐 3차까지 계속되었다.

모두들 그간 지내온 얘기,

남편이야기,

시어머니 이야기,

새로 만나는 남자친구이야기

회사에 이상한 여자동료 이야기.

다들 저마다의 쌓아둔 이야기들을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웃고 화내고 조롱하고 또 웃다가 다시 엉엉 운다.


정민이는 학교 때부터 예쁘고 여성스러워 인기가 많았다.

요즘 만나는 남자이야기.

대기업에 다니는 프로그래머라고 했다.

와인동호회에서 만난 그 남자는 작은 키에 튀지 않은 얼굴생김새지만

지금까지 자기가 만나온 남자들과는 다르게

예민하지 않고, 쪼잔하지 않다며 눈을 가늘게 늘어뜨리며 조용히 웃는다.

정민이의 예전 남자들을 떠올려 본다.

김동률 같은 목소리로 '정민아' 부르던 선배

유난히 센스가 없어서 늘 정민이를 화나게 했던 순진한 선배.

지나고 보면 그 나이에 당연한 둔탁함인데 그때는 왜 그리도 내 친구를 울렸을까.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정민이의 두 번째 남자친구는

가래떡처럼 길고 하얬다.

길고 하얗고 쪼잔했던 넘

늘 친구들을 질투했고, 취업하고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쁜 정민이를 세상 못된 여자로 매도했다.

마직막에 지가 준 선물을 다 돌려달라며 문자메시지 폭탄을 날렸던 가래떡.

세 번째 남자는 나는 얼굴을 모르는 포르셰를 타고 다녔던 어느 식품회사 집안 둘째.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그의 차량 번호판으로 기억한다

정민이와 만나 짧은 만남을 마치면 그 남자가 근처에 와 있었다.

차에서 내리지도, 차 창문을 열지도 않았던,

그래서 내 기억 속에 그는 그냥 포르셰다.

정민이는 포르셰 이후로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 맘때 나도 새 직장에서 바쁜 때를 보내느라 정민이의 연애가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는 늘 공허했다.

항상 뭔가 하나 부족한 듯, 한껏 행복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종종 연애를 했지만

한 번도 환희에 찬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 늘 그럼 그렇지. 그런 눈빛으로

본인의 연애를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듯했다.

분명 치열한 과정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겉은 심드렁해 보이는.

엄격하고 과묵한 아버지, 조용하고 순종적인 어머니, 똑똑하지만 냉소적인 언니, 아기 같고 늘 칭얼대는 동생.

나는 그녀에게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다.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아서.

가족의 안부를 의미 없는 듯 전하는 그녀의 음성 안에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있는 거 같아서.

그녀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이기를 기대한다.

그녀의 텅 빈 눈 안에 충만한 감정이 차오르기를.



취기가 살짝 오른 정민이는 말한다.

야 너, 너는 괜찮아?

혜정이가 아까 너 걔 만났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



응?

그냥.

나도 모르겠어.



단숨에 사케잔을 들이켠다.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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