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싸움

7

by ZAMBY



정민의 전화가 울린다.


“응? 오빠. 이제 갈려구. 응 알았어. 지금오면 될 거 같아. 응.”


혜정은 남은 사케를 잔에 따르며 마무리를 예고한다.

“그래. 우리도 이제 가자. 너무 늦었다.”


“야 아, 늦긴 뭘 늦어. 정민이만 가고 우리끼리 계속 놀자앙.”

은정은 콧소리를 내며 다 식어버린 메로구이를 입안으로 가져간다.

그녀의 통통한 손이 내 손을 잡는다.

“아직 멀었어. 아직 멀..었...다궁...”


은정은 돌아왔다.

스물다섯에 첫사랑과 결혼하고 스물여섯에 돌아왔다.

그녀가 결혼할 때 나는 고시원에 있었다.

은정은 대학 동기랑 결혼했다.

활달하고 낙천적인 그녀는 늘 사람에 둘러싸여 지냈다.

항상 웃었고, 큰 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고 꾸밈이 없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은정은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어딘가 부족해졌다.


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엄마가

뒷산 산책로에서 만난 아저씨와 사랑에 빠진 걸 알게된 날.

무슨 사랑이 그런 거냐며 울었다.

그리고 2년 후에 엄마에게 보란 듯이 결혼했다.


다시 1년 후에, 그녀는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그 아저씨도 함께 있는 집으로.


은정은 남편과 헤어지고

2년 동안 어떤 바에서 같은 바텐더를 만났다.

옆으로 길게 찢어지고 웃으면 사라지는 눈을 가진 남자였다.

목소리가 여리고 소곤대며 말하는 남자는

어디서 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 번에 알기 어려웠다.

그는 어느 날 사라졌다가 또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은정은 아마도 그 남자 이야기를 하려는 거 같다.

우리는 안다. 그 끝이 어딘지.

그런 민들레 씨앗 같은 남자를 만나는

은정의 떠도는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휘적대는 은정을 짊어지고 사케집을 나선다.

금요일 밤의 강남역은 시간을 구별하기 힘들 만큼 북적인다.

사람들은 휘청이고 불빛은 휘황하다.

횡단보도 건너 저 위로 빵집 간판이 멀리 보인다.


네가 저기 어디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변한 것이 없었다.

나를 응시하며 걸어오던 모습.

너는 항상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까지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서 나는 늘 몸이 달아 허둥댔다.

그러면 너는

“왜, 부끄러워?”

하고 장난처럼 툭 던졌다.

그리고는 시선을 회수했다.

그 느낌이 좋아서 언제고 네 눈앞에 있고 싶었다.


오늘도 너의 시선은 뜨겁고 잔혹하여

앞에선 자를 스스로 굴복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네가 이겼다.

“늘 지는 싸움이야...”


은정은 듣지 못한채 택시 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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