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결혼생활

32

by ZAMBY



명절 연휴가 끝났다.

이번 연휴는 주말이 끼어 예년보다 짧았다.


네 어머니와 민욱.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나느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으로 맞선 이후 두번을 만난 사람이었다.


정민의 결혼식날 연애를 제안한 그는

다음 날 정확히 2시에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가 울릴 때 너는 옆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가방 속에 손을 넣어 전화기를 움켜쥐었다.

규칙적인 떨림이 전해질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스크린에서는 총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계단을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전화는 몇번 울리다 잠잠해졌다.

영화가 부수고 망가지며 후반부를 향하고 있었고

나는 .

좀 설렜던 것 같다.


다음 날 그 남자가 집 앞으로 왔다.

그는 검은색의 독일산 세단에 앉아 있었다.

드라이브를 했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좋은 식당이었다.


“전화를 직접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차 안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던 남자는

내가 전날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웃었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는 미소는 남자의낮고 부드러운 음성과 묘하게 어울렸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무겁고 떫은 맛의 고급 와인을 주문했다.


“와인 좋아하시나 봐요.”

“아. 와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합니다. 공부를 하고 나왔어요. 잘 보이려고.”

남자는 빙긋 웃으며 내 눈을 보았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저는 소주 좋아합니다.”

.

“아. 네…”


그는 자기가 하는 일, 테니스를 좋아한 다는 것, 여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침묵이 끼어들 틈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 처럼 보였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유쾌하고 건강한 남자였다.


“한번 더 만나면 마음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해서

좀 무례한 메시지를 드렸어요. 차라리 전화를 할 걸 후회도 했습니다.”


와인잔의 긴 목을 잡은채로 그를 보았다.

“아니에요. 제가 그날 더 무례했죠. 제가 더 죄송해요.”


남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수험생처럼 급해보였다.

“한번 더 뵈서 다행입니다.”


와인은 무겁고 진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고백했다.


“저는 연애도 안될거 같아요.”


그는 디저트를 앞에 두고 두 팔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낮고 무거운 음성이었다.

“혹시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커피 알갱이가 너울 치며 녹아내리는 모습을 내려본다.

녹아 없어지듯 손짓하는 네가

선명하게 손을 내미는 누군가를 이겼다.

목이 긴 스푼을 들어 천천히 휘젓는다.

그제야 깨끗하게 녹아내린 커피 알갱이들이 물과 함께 하나가 된다.

홀짝이며 자리로 돌아온다.


샛노란 카디건을 어깨에 걸친 수정이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는다.

구청에서 나란히 앉은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그녀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면 여자들이 다 아줌마가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더 예뻐지는 사람도 있다.


사랑을 받는 사람.

생활비 때문에 남편과 다투지 않아도 되는 사람.

쌍둥이를 돌보아 줄 도우미 이모와 건강한 친정엄마가 있는 여자.

수정은 신이 그녀를 위한 이야기를 미리 써 놓은 것처럼 어려서 유복하고

자라서도 평안하며 아이를 낳고도 아름다운 인생을 산다.


한 가지. 신이 허락하지 않은 것.

그녀는 침묵이라는 재주를 애초에 부여받지 않았다.

그래서 쉬지 않고 말을 한다.

말.

그녀의 성대와 혀는 온통 가진 행복을 찬양하는 충실한 악기다.

그녀가 연주하는 악기 덕에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남편을 비난하고,

누군가는 일기장에 자기 삶의 비루함을 적는다.


오늘도 나는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의 성실함. 지적 매력.

그리고 그가 제공한 많은 물질적 보상에 대해 듣는다.

교묘하게 다른 이야기들을 섞어가며.


마주 앉아 돈가스를 먹으며 앞에 놓인 양배추 더미를 내려다본다.

포크로 하얗게 채 썬 양배추 한 더미를 집어 입 안에 넣는다.

파삭파삭 씹어보면 달달하다.


너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나.

네 앞에 누군가도 너의 사랑을 하찮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는 않나.

너는 지금 무엇으로 네 연애를 지키려 하는가.

나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다.


그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아무래도 좋아.

뭐라도 좋아. 확답을 주었으면.


나는 문득 수정의 어깨에 걸쳐진 샛노란 카디건이 바닥에 떨어지기를 바란다.

누군가 그 카디건을 밟고 지나갔으면.

고운 빛깔이 구린 색으로 변할 때까지 짓뭉개었으면 그리하여 저 소음이 멈추었으면.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 입에서 더러운 음악이 연주되기를.

나는 추악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쓴 웃음을 짓는다.

입안에 맴도는 양배추 조각을 마저 씹는다.

단맛인 듯 씁쓸한 타액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샛노란 카디건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 위에 있다.


무엇으로도 현실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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