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go, Let it pass
한창 유발하라리에 빠져서 그의 책을 다 주워 모으고 있었다.
딸이 금사빠인 것은 아마도 나의 유전자를 받았음이리라.
나는 대게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반하는데
서정적인 글보다는 논리적인 글을 쓰는 남자사람에게 혹하곤 한다.
논리적인데 뭔가 갬성을 자극하는 글.
유발하라리는 (학계의 비판도 많이 받지만) 정말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마치 쥐라기공원에 들어가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찌나 전. 후. 앞. 뒤를 잘 끼워 맞추는지
맥락을 이어 붙이는 데이터라는 접착제는 또 어찌나 찰진지
나는 그의 서사와 상상. 때로는 과다하다 싶을 만큼의 예측에 늘 매료된다.
어쩌면 나는 '논리적 선지자'를 늘 기다리고 있는지도.
유발하라리는 실리콘밸리 사장님들의 멘토이자 구루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규칙적 명상가이자 정기적 은둔자이기도 하다.
여하튼
하라리에 몰두하던 와중에
주말이면 찾는 서점에서 그의 유명한 사피엔스의 맥락을 잇는 진화론적 제목을 발견했다.
늘 느끼지만
제목은 참 중요하다.
서점에 꽂힌 수많은 책들은 가로세로 2.5x20 센티 긴 사각형안에 쓰인 제목만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베스트셀러나 에디터추천.으로 커다란 테이블에 떡하니 쌓여있지 않고서는.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책 윗꼬투리를 밀어당겨 손바닥 위에 그 책을 올라오게 하기까지 그것은 실로 굉장한 유혹의 기술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영문으로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을 변형한 ‘Survival of the Friendliest’
잘 맞는 놈 말고 다정한 놈이 살아남는다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도서이기도 하다.
결국 사피엔스는 살아남는 필살기로 다정함을 택했다는 이야기.
이후에 이 책의 공동저자인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유인원 보노보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연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화자찬. 자기위로. 자기반성.
어려운 고비들을 넘어온 조직에 대한 찬사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지는 알코올과 기름진 식사
뭐 이런 것들로 연말 일상을 채우던 나는
조금은 특별한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다정함이 병인 딸과
다정함이 오지랖이라며 쿨한 척하는 엄마
다정함이 뭔지도 모른 채 그냥 그 존재자체가 다정함인 더 어린 딸.
이렇게 셋이서 새로운 나라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연말연시라는 한 해를 '보내는' 느낌보다
크리스마스라는 즐거운 이름을 자주 사용하는 듯하다.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선물 혹은 기프트카드(!)와 카드를 드리고
주변 이웃이나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표현하는 크고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정말 선물가게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딸아이는 어제 선생님께 본인이 정성스럽게 만든 카드와 글자가 적힌 비즈를 이은 팔찌를 선물했다.
물론 그 카드 안에 내가 수줍게 붙인 30$짜리 기프트카드도 함께.
미국에서는 선생님의 생일. 크리스마스. 그리고 학기말에 선생님들께 소액의 기프트 카드를 종종 선물한다.
어제는 스쿨버스에서 내린 딸아이가 유독 즐거워 보였다.
아이는 한껏 들떠 있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는데
즐거운 하루를 장식한 주요한 원인이
아이의 카드를 받은 선생님의 반응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께 크고 작은 선물을 드렸다고 했다.
초콜릿. 인형. 향초나 향수 같은 것들.
아이는 본인만 큰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작은 봉투를 드리는 것이 부끄러웠던 거 같다.
그런데
선물들을 열어본 선생님께서
언제나 말이 없는 딸아이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속삭였다고 한다.
- 너가 준 선물이 나에게는 최고였어 -
아이는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식탁 앞에 앉아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를 흉내 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다른 애들한테도 다 그러셨겠지.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아니야. 나한테만 살짝 말씀하셨어.
다른 애들 선물이 훨씬 크고 화려했는데
내 작은 선물이 젤 좋다고 하셨다니까.
나는 또 말했다.
그건 말이지 내가 너의 카드 안에 기프트카드를 넣어서 그런 거야. 씨익 -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야 엄마
내가 카드 안에 브레이슬릿을 넣었는데 그게 젤 맘에 든다고 하셨어.
??
뭐?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플라스틱 팔찌가 뭐가 좋겠어. 그냥 하는 말이지.)
그래도 아이의 동심을 파괴할 순 없으니
형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팔찌가 어떻게 생겼길래?
음 내가 거기에 선생님에게 어울리는 메시지를 넣었어
Let it go, Let it pass
ㅇㅇㅁㅇ LET IT GO ㅇㅁ LET IT PASS ㅇㅁㅁㅇ
아이가 열심히 뭔가 꼼지락거리며 만들 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었다.
뭐 저런 장난감을 만든다니. 선생님한테는 쓰레기가 될 텐데.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웠다.
아이가 선생님의 하루하루를 떠올리며 만든 문장.
엄마. 오늘은 선생님이 기분이 안 좋으셨어.
근데 애들이 계속 말씀을 안 듣고 떠들고 그래서 속상했어.
그런 이야기를 하던 아이에게
뭐. 집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몸이 피곤하시겠지.
하며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미역국을 끓이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쿨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피엔스를 읽으면서도 호모사피엔스의 잔혹함이나 교활함. 어리석음에 집중하는 사람이기에.
인간의 다정함이 우리를 진화의 승자로 만든 것은 우리의 간교함. 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인간성 회의론자 이므로
그래서 나는 늘 덜 다정한 사람이 되고자 애쓴다.
다정하면 지는 거. 같은 마음.
다정하면 구질구질해질 것 같은 불안.
그런 나한테서 저런 딸이 나왔다.
- 내버려 두세요. 다 지나가요.-
어디서 본 글귀인지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이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선생님께 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다정한 딸의 엄마다.
다정하다는 것은.
귀엽다거나. 곰살맞다거나. 친화적이라거나. 애교가 많다거나. 눈치가 빠르거나.
이런 표현으로 모두 포괄할 수 없는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다정하다는 것은
어루만지고. 포용하며.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조금 더 기다리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
나는 그것이 아주 특별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그것이 사소하고 교활한(?) 위장이라 여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오늘 나는 며칠 후에 떠날 여행지에서 보게 될 공연 예매표를
찾지 못해 한국에서 모두들 잠들었을 법한 시각에 여행사 사장님께 톡을 보냈다.
한 달도 더 전에 받아둔 이 티켓을 여태 확인도 하지 않고 있다가
못 찾겠다며 밤 11시 반에 톡을 보내는 스쳐갈 고객.
사장님은 재빠른 솜씨로 티켓을 다시 보내주셨다.
감사합니다. 답을 쓰다가.
딸아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내가 쓴 메시지를 지우고 나로서는 매우 긴 문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늦은 시각 톡을 드려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고 복된 연말연시 되세요.
평소 이모티콘도 잘 사용하지 않는 나는 마침표만 찍어서 톡을 보냈다.
그리고 확인한 답장은
내가 지양하는 긴 인사.
쿨내 나고 싶어서 늘 감정을 간단히 표현하는 도시 아줌마는
오늘 아침에 저 다정한 인사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면 사람을 버티게 하는 것은
조금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다정함이 아닌가.
내 인생이 막 다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느끼는 순간순간에도
거추장스럽게 따라붙는 밥 먹었냐는 따뜻한 인사가 나를 허기지게 한다는 것을.
한 숟가락만 먹어봐.
못 들은 체 일어서는 내 뒷모습에 지긋하게 엉겨 붙는 그 다정한 한마디.
나는 아이가 좁은 등을 웅크린 채
작은 손으로 비즈를 끼우고 있던 어제저녁을 생각한다. 선생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연말 인사를 준비하기 위해 알파벳을 조합하는 그 아이의 진심 어린 다정함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래.
어쩌면 인간은 정말로 다정한 건지도 모르겠다.
교활하고 비겁한 이 세상이 아직도 살만한 것은
내 유전자 어딘가에 숨겨진 그 다정함의 DNA가
불쑥불쑥 발현되기 때문인지도.
너의 다정함이 특별한 능력이 되기를
우리의 다정함이 인간을 생존하게 하는 특권이기를
나는 오늘도
쿨내를 풍기려 애를 쓰다가
여행사 사장님의 한마디에 픽 스러진다.
역시 다정한 것이 이기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