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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Dec 19. 2024

첫째 아이인 너에게

등을 긁어준다는건


미국에 오고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저녁시간이라고 말하겠다.


남편이 없는 저녁시간이 많이 아쉽지만

한국에서 겨우 주말이 되어서야 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더라도

나와 남편은 우리의 대화를 하려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남편이 없으니

자연히 나의 대화상대는 아이들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게 되었다.

특히 열 살이 된 첫째 아이는 이제 얼추 어른흉내를 내기에

좀 어설프고 논리가 부족하긴 해도 대화가 된다.



아이의 학교생활, 친구관계, 오늘 읽은 책 이야기,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받은 지식들,

본인이 학교에서 검색해서 알게 된 블루웨일에 관한 이야기.. 뭐 이런 것들을 듣다 보면

저녁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중간중간 두 아이가 서로 이야기를 하려고 다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30분가량 아이들과 마주 앉아 내가 차린 맛없는 식사를 나누며

하루 일과와 감정들을 나누다 보면 내가 이 아이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는 기분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노스쿨 데이라 아침부터 여유롭게 떡국을 끓여 나눠먹고 있었다.

아직 여섯 살인 둘째는 종종 차가운 음식을 먹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난 직후에

자신의 혀를 내밀어 내 손가락을 대어보기를 요구한다.

내 손가락이 온도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고 통통한 핑크빛 혀에 조심스럽게 나의 새끼손가락을 올리면

촉촉하게 온도가 느껴진다.

때로는 차갑고. 또 때로는 따뜻한.


오늘은 떡국이 조금 뜨거웠던지

아이는 혀를 내밀고 설온측정을 재촉한다.

나는 관대하게 웃으며 늘 그렇듯 온도를 재고 살짝 오버하며 어머 따뜻하네.라고 말해준다.

아이는 뭐랄까. 약간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혀를 쏙 집어넣는다.

거봐. 이런 표정일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첫째가 입을 뗀다.

동생은 항상 적절한 타이밍에 혀를 내밀어서 엄마가 온도를 잘 재어 주는 거 같다.

나도 어릴 때 저런 행동을 종종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엉.. 엉.. 하면서 그냥 지나쳤다고.

나는 조금 의아해서 되묻는다.


정말? 너도 저렇게 했었어?


응. 근데 나는 늘 길을 걸으면서 혀를 내밀어서 그런지 엄마가 그냥 엉.. 응.. 하면서 지나갔어

아이의 눈치를 살핀다.

목소리의 높낮이. 미간의 움직임. 입꼬리는 얼마나 내려가나.

살짝 서운한듯하다.


엄마가 그랬어? 전혀 기억이 안 나.

왜 그랬지?


내가 늘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길 위에서 얘기해서 그런가 봐



아...

미안해. 엄마는 전혀 기억이 안 나.

내가 왜 그랬지.


최대한 진심을 담아 양해를 구한다.


아이는 별 말이 없다.

괜찮아.라고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웃었던 거 같기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인데 아이의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나는 많이 미안했었나 보다.



형제자매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자라면서 늘 나와 함께 놀아줄 존재가 있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내 편이 되어주며

나이가 들수록 자매들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

물론 성인이 된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을 반으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무척 서글픈 일일 거다.

동생이 태어나던 해에 유난히 떼를 많아 썼던, 겨우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

그 아이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었던 것도.

아이를 처음으로 혼내던 일도

모두 다 둘째가 태어난 후부터였다.

어떤 실수를 해도 짜증 한번 내지 않던 엄마가 동생을 끌어안은 채

무서운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질렀을 때

다섯 살 아이가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난 동생이 엄마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고 있으면

동생보다 훨씬 살이 단단하고 덜 보드라우며 게다가 길죽하기까지 한 소녀는

아기처럼 엄마의 품 안으로 파고든다.

나는 아이가 무거워 살짝 밀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손을 꼭 잡거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도 한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가끔 아이의 5살 사진을 보면

지금 둘째보다 더 어리고 그래서 더 귀엽다.

그렇게 귀여운 아기를 나는 그때 잊고 살았다.

모유수유하느라. 마흔에 출산을 한 내 몸이 내 마음대로 회복이 되지 않아.

수시로 울어대는 신생아를 달래느라.

나는 이렇게 작고 아기 같은 아이에게 좀 더 ‘어른스러워’ 지길 바랐던 건 아닌가.

그 순간들을 생각하며 아이에게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혀를 내밀었을 너.

나는 아마도 네 동생을 안고 있거나 유모차를 밀고 있었을 테지.

어쩌면 어디로 달려 나갈지 모를 동생의  작은 손을 붙잡느라

네 귀여운 혀는 민망하게 허공을 헤매다가 너의 입안으로 숨어 들어갔을지도.

그 어린아이를 다시 불러내 안아준다.



너는 나의 우주야

너는 나의 구원이야

너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늘 실수를 한다.

너는 처음 엄마가 된 부족한 나를 길들이고, 나를 성숙하게 한

최고의 스승이자 친구란다.


혹여라도 너를 외롭게 한 나를 용서하렴.

내 평생을 걸고

네가 나에게 준 사랑을,

네가 나에게 가르친 사랑을 갚아 나갈게



오늘 저녁에는 너의 등을 좀 더 느긋하게 긁어줘야지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너의 귀지를 파줘야겠다.

나에게는 언제고 다섯 살인 너.

솜털이 보송한 너의 작은 등을 조금만 더 여유롭게 긁어줄걸.


언제까지고 등을 긁어달라고 조르는 늙은(?) 너를 상상하며

또 그보다 더 늙어갈 내 모습도 그려본다.


내가 너의 등을 긁어주면 우리는 돌아가자.

아득한 시절로.

너와 내가 오롯이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행복했던 그때로.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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