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별에서 온 그녀
사람마다 타고나는 마음의 온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별은 온도가 높을수록 푸른빛을 띤다니까
마음의 온도가 높은 사람은 푸른 심장을 가지고 있겠지.
며칠 전에 화상영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이스와 카인드의 어감 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느 한국인 학생이 미국 서부 사람들은 나이스하고
동부 사람들은 카인드 하다고 했다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 학생의 의견에 따르면 카인드한 사람들이 사는 동쪽에 살고 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nice하다는 것은 신사적이고 예의 바르며 세련된 매너가 있는.이라는 느낌이고
kind 하다 함은 친절하고 상냥하며 친근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된 단어라고 한다.
음.
그럼 나이스는 쿨. 카인드는 웜?
내 질문에 우리는 웃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카인드에 나이스를 한 방울 떨어뜨린 그런 느낌의 사람들이 많은 거 같다고
이야기하니, 그럼 한국은 어떠냐고 물었다.
한국사람?
음.
나이스, 하기에는 좀 덜 가식적(?)인 거 같고
카인드,라고 표현하기에 우리는 좀 무뚝뚝한데..
그래서 음. 엄. 에.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단어가 바로, '정'이라는 단어였다.
- 情 -
초코파이라고 들어봤니?
그 파이는 내가 어릴 때부터 먹던 고전적인 과자인데
그 과자에 담긴 정신이 '정'이라는 거야.
졍??
졍이 모야?
음 그게 뭐냐면 말이지.
카인드랑 비슷한데 더 딥하고 더 강력한 감정이야
아주 끈적한 정서적 연결과 아주 강력한 지속력을 가진. 그러면서도 달고 구수한.
저 과자랑 비슷한 맛이야.
마시멜로와 초코, 그리고 파이가 쓰리콤보로 오는 그런 맛. 느낌.
아하!
뭔지 알 거 같아.
엄청 좋은 거네!
하하하 -
나의 영어는 문학적 소양이 낮으므로
아주 초딩적 단어들을 조합하여 설명했다.
그래서 결론은 '아주 좋은 거'로 났다.
아주 좋은 건가?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뭐.
전통의 초코파이가 몇 십 년째 미는 개념이니 만큼 좋은 거겠지.
하긴, 마시멜로와 초코, 그리고 파이는 다이어트에는 해로울지 몰라도 정서에는 매우 유익하다.
딸아이가 미국에 오고 가장 난감해하는 정서의 격차가 바로 이 초코파이 때문이다.
그 머라고 해야 하나
나이스하고 카인드한 훌륭한 선진 시민 문화(?) 말고
좀 구수하고 끈적한 청국장 같은 무엇을 원하는 우리 집 따수미는
어? 어제는 친한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아니네? 하는 깨달음을 매일 겪는다.
이 아이의 마음의 온도는 내 보기에 한 40도 정도 되는듯하다.
보통은 열병에 걸려 황천길을 오갈만한 온도인데
대책 없이 뜨거워 종종 제 스스로도 데이는 푸른빛 별이다.
미국에서 1학년부터 자란 한국인의 모습을 한 친구를 만나면 온도차는 더 커진다.
어라? 말도 통하고 겉모습도 비슷해서 온도를 최고로 올렸는데
뭐지? 내일부터 그 친구의 온도는 영하권이다.
이건 뭐.
매일 체온조절에 실패해 감기를 달고 사는 신생아처럼.
열 살 먹은 딸아이는 마음에 감기를 달고 산다.
속은 뜨거워도 겉은 미지근한 엄마의 위장술을 아무리 전수하려 해도
이거야 원 당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집에 사는 푸른 별은 매일 가슴속에 초코파이를 하나 넣고
찬바람 쌩쌩부는 들판에서 예쁘고 불그스름한 별을 만나 '情'을 내민다.
상대는 그 맛있는 초코파이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이건 무슨 맛이야?' @.@ 표정을 짓고
딸에게 다시 돌려준다.
이미 포장이 뜯겨나간 초코파이를 다시 주머니에 욱여넣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푸른 별이 묻는다.
엄마
나는 누구에게 이 초코파이를 줄 수 있어요?
응. 주지 마.
함부로 주지 마.
초코파이 맛을 알 만한 녀석인지 잘 살펴보고 주라고.
처음부터 주면 놀란다고.
어휴.
러시아에서는 초코파이가 잘 팔린다던데
거기로 갈걸 그랬나.
나는 오늘도 딸아이의 주머니에서 반쯤 먹다만 초코파이를 꺼낸다.
이렇게 맛있는데 말이지.
딸아이가 자라서
초코파이를 함께 맛있게 먹어줄 푸른 별을 잘 찾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면
내 마음도 좀 편해지려나 생각하며 봉투 안에 남은 가루까지 입 안에 털어 넣는다.
나라마다 미세한 차이는 있겠으나
그래도 푸른 별과 붉은 별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집에 푸른 심장을 가진 여자아이가
나이스한 푸른 별, 카인드한 푸른 별을 용케 찾아 엄마, 걔가 내일 초코파이 더 달래!!! 하고
힘차게 현관문을 여는 그날을 기다린다.
나의 심장도 푸른색이라고,
조심스레 꺼내어 보여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근데 초코파이도 알고 보면 푸른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