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0살이 된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예전 한국식 나이 7살 때부터 변함이 없다.
며칠 전에 치과에 가서 충치를 치료하면서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친절하면서 스마트한 여성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와서는 새로운 장래희망이 하나 더 추가 되긴 했지만
그녀의 장래희망 1순위는 5년째 변함이 없다.
샤넬.
그녀는 샤넬이 되고 싶어 한다.
가방 말고, 패션디자이너 샤넬
나는 샤넬을 갖고 싶어 하는데
그녀는 샤넬이 되겠다니.
뭐.
나도 제2의 샤넬이 만들어준 옷이나 가방을 입고 다닌다 생각하면
썩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녀의 장래희망을 응원한다.
해외에 디자인스쿨이 있는 대학을 알아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검색을 해보기도 한다.
내 아이가 샤넬에게 꽂힌 계기는 7살 때 읽은 위인전 때문이다.
나도 좀 놀란 것이
요즘 위인전기는 현대의 인물들을 많이 업데이트한 버전이라는 점이었다.
디자이너 샤넬. 피터래빗의 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등
여성의 비중이 높아졌고, 최근까지 우리와 함께 일상을 누리던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그 전집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중에 샤넬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자매들과 수녀원에서 자란 이야기.
코르셋과 패티코트, 무거운 모자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한 이야기.
그녀가 일요일을 가장 싫어했다는 일화
그리고 '패션은 변해도 스타일은 남는다' 같은 쌔끈한 한 말씀.
그런 것들에 매료되었다.
깡마른 샤넬의 반항적이고 도발적인 자세와 표정
그녀가 완판 시킨 검정색 미니 원피스와 인조진주목걸이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들.
그녀의 옷을 입기 위해 줄을 선 뽕드레스를 입은 여성들.
이런 삽화들도 딸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딸아이에게 위인전을 읽어주다가 그제서야 처음 알았다.
샤넬이 혁신가였구나.
무지한 나에게 샤넬은
주렁주렁 진주목걸이를 늘어뜨리고 약간 할머니 같은 옷을 입은
어깨에 걸쳐지는 손바닥만 한 엠보싱이 들어간 가방을 파는
비싼 브랜드였다.
물론 나도 그런 할머니 같은(죄송해요. 샤넬). 옷을 입고 싶고
손바닥만 한 가방을 들고 싶어 매장을 기웃대기도 하고
중고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샤넬은 여자들을 매료시키는 똑똑한 디자이너. 정도였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패션의 세계만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 급의 혁신가였다.
요즘에는 혁신가.라는 단어보다 '체인지메이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거 같다.
그녀는 치마를 펄럭이며 승마를 하던 상류층들 속에서 당당하게 남성용 승마바지를 입었고
모두가 장례식 때만 입는 옷으로 여겼던 검은색을 전면에 내세워 결국에 오드리 헵번에게 입혔으며
양손에 조그맣게 들고 다니던 손지갑에 끈을 달아 여성들의 양손을 해방시키고
허리라인이 없는 카디건 스타일의 재킷과
더 이상 바닥을 쓸며 다니지 않아도 되는 길이의 스커트로 2차 대전 이후 밥벌이를 해야 했던 여성들을 코르셋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꽃과 잎사귀. 때로는 과일 같은 것들을 머리에 올리고 다니던 여성들에게 간결한 디자인의 모자를 제작해 그녀들의 경추를 보호하기도 했다.
여성용 정장에 호주머니를 만들고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저지소재를 이용하여 여성들의 체온을 보호하고 동시에 그들의 흉골을 구원했다.
거의 패션계의 메시아다.
딸아이 덕에 나는 멋진 여성 한 명을 사귀게 된 것 마냥 즐거웠다.
나는 샤넬을 소비하려는(!) 자에서 샤넬이 되려는 자로 진화하였다.
물론 샤넬이 사업성공을 위해
내가 딸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아이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보니 코르셋을 여성복에서 처음으로 제거한 사람도 샤넬이 아니라
당대 최고 디자이너였던 폴 푸아레였다.
역시 샤넬은 마케팅의 천재다.
그녀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알고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적지향적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고
여성의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시절에
세게 1,2차 대전이라는 역사의 시련을 거치면서
자신의 창의성을 사업적으로 성공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그런데 그 어려운걸 그녀는 해냈다.
내 딸이 그런 길을 가겠다고 하면 나는 말리겠지
그냥 무난하게 둥그렇게 살면 안 되냐고
샤넬은 역경 속에서 피어난 검은 꽃이라고.
늘 애정해 마지않는 작가 애덤그랜트는 저서 <오리지널스>에서 재미있는 인사이트를 준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유명 도루 선수들 중 대부분은 형제 서열이 낮은 막내 혹은 네, 다섯째 들이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동물적인 감각, 과감한 결단력, 신속한 실행력을 발휘해 모두의 예측을 깨고 심판의 세이브, 판정을 받아낸다. 물론 아닐 때도 있다.
심지어 그 도루가 9회 말 2 아웃에 이루어진 것이라.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에 너무 늦었다 해도
그러한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팀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지대하다.
책이 한국에 있는 관계로 정확한 내용을 실을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재미있는 케이스 투성이의 책에서 유난히 도루선수 이야기에 꽂혔다.
형제 서열이 중요해서?
내가 야구팬이니까?
나는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후성유전학 지지자로서
애덤그랜트의 사례가 내 믿음을 또 한 번 공고히 해준 것이 감사했다.
제2의 샤넬이 되고 싶은 내 아이가
도발적이고 독보적으로 자기 길을 만들어 나가려면
나는 어쩌면 이 아이를 어느 먼 수도원에 던져두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 앉아봐. 오늘 여기까지 풀어야 해. 너 한국 가면 정말 큰일 난다. -
뭐. 이런 협박 말고
오늘은 무슨 그림을 그렸어?
이거야? 와 정말 독창적이네!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거야?
이런 지지와 응원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매일
아이들에게 너희 이러다 한국 가서 바보 되면 어쩔 거야.라는 소리를 해댄다.
그래서 우리 둘째는 요즘 자기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너무 부끄럽다.
나는 좋은 엄마이자 좋은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조급한 협박범이 되어가고 있다.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아이가 물으면 늘 말문이 막힌다.
나는 너만 할 때 이유 있는 꿈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어서.
너처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려는 장래희망을 가진 적이 없어서 말이다.
내 주변의 작은 변화도 이끌어가지 못하는 엄마가
원대한 꿈을 가진 딸에게 감히 수학을 말할 수 있나.
오늘 잠깐 반성모드를 작동시킨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오늘은 문제 풀지 말고 나랑 놀자고 해봐야겠다.
잠깐이라도
한국 돌아가면.이라는 미래형 시제를 지우고
현재진행형으로 하루를 채워봐야지.
너의 장래희망은 수많은 현재의 너로 채워지는 거니까.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