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어령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다.
나는 가끔 내 아이들이게 욕심이 생겨날 때,
아이들을 구박하고 난 그 밤에
그리고 가끔 내 아이들이 훌쩍 자라나고 있음을 느낄 때
스마트폰 어딘가에 묻어둔 이 글을 꺼내어 읽는다.
왜 나는 이어령 선생님의 제자도 아니면서
이분을 선생님이라 부르나.
이 글을 읽으면 매번 눈물이 나서,라고 답하고 싶다.
후회보다 더한 마음.
그것이 이어령이라는 아버지의 굿나잇 키스, 가 아닐까.
이어령은 분명 역사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 part2에 등장할 분이다.
역시나 내가 아끼는 나무위키에 따르면
이어령
대한민국의 국문학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사회기관단체인, 관료, 정치인. 노태우 정부의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했으며, 소설가, 시인이자 수필에 희곡까지 써낸 작가 그리고 기호학자이다.
이어령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을 총괄 기획했다. 종전에 있었던 모스크바 올림픽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냉전의 여파로 한쪽 진영이 불참하는 불상사를 초래한 데 반해 서울 올림픽은 모든 진영이 참가하면서 화해의 장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어령은 당시 '화합과 전진'이라는 다소 딱딱한 느낌의 문장을 바꿔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를 만들어내어 주제의식과 역동성을 모두 표현해 낸 명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개회식에서 등장한 굴렁쇠 소년 역시 이어령의 기획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던 단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아주 평화로운 정적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이(그것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의 개최지 선정을 선언한 바로 그날 태어난 아이였다)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 중앙을 사선으로 지나가는 모습은 전쟁고아의 이미지에 불과했던 한국의 인상을 새롭게 바꾸어놓겠다는 계획의 소산이었다. 거기다가 여백의 미를 살린 전통적인 문법도 있는 것이었다. 이어령은 이후 인터뷰에서 "왜 문학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원고지에 쓰던 것을 잠실 주 경기장으로 옮긴 것일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이것을 시로 쓰면 1 행시가 될 것이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1988년 서울 올림픽 16년 뒤에 열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회식에서 스타디움 바닥이 에게 해(海)를 상징하는 호수로 변하며 한 소년이 홀로 대형 종이배를 타고 물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연출하여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는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의 총감독을 지낸 예술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에 의하면, 아테네 올림픽의 개회식 연출을 위해 과거 여러 올림픽의 개회식을 참고하던 도중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 장면에서 어린 소년이 혼자 굴렁쇠를 굴리며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던 순간이 자신에게 특별한 감명을 주어 아테네 올림픽에서 어린 소년이 종이배 모양의 보트를 타고 물을 가르 지르던 장면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혔다.
한 가지 일화만 들어도 이런 사람이다.
이 사람의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을 보아도 그는 비범하고 천재적이며,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독보적이었다.
나는 그를 사모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사무치는 회한을 남긴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자가 바로 그의 하나뿐인 딸.
이민아 목사이다.
그녀는 이화여대 영어영문과를 3년 만에 조기졸업한 수재였고
우리가 아는 그 김한길 씨의 첫 번째 배우자였으며
미국땅에서 검사였고, 변호사였으며 목사로 살았다.
그녀는 자폐판정을 받은 두 번째 아이의 엄마였고
꽃 같은 나이의 맏아들을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19일 만에 하늘로 보낸 비련의 여인이었다.
세계 각지의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청소년을 돌보는 일을 하며 남은 생을 보낸 그들의 맘마미아이기도 했다.
망막박리판정으로 실명의 위기를 겪고, 갑상선암과 위암 투병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홀연히 떠났다.
아버지를 세상에 남겨두고.
그녀의 기구한 삶은 마치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명성만큼 세간의 관심사였다.
타고난 총명함. 외적 아름다움.
유명인을 아버지로 둔 자녀가 감내해야 하는 언뜻 보면 배부른(?) 투정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굴곡진 삶의 여울 마디마디에 드라마가 스몄다.
그렇게 딸을 보내고
그녀의 아버지, 이어령은 십 년 후
그가 말한 대로, 딸이 있는 곳으로 갔다.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어느 책의 서문에 남긴 것처럼
그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명명하고
모던보이가 불을 거두듯, 그렇게 떠났다.
낳아서 기르고, 내보내어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기까지
부모라는 이에게 자식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죽음 앞에서 네가 간 길을 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마음의 깊이는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그것은 후회보다 더한 마음.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라던지, 천국이라거나, 그런 형이상학적 장소에서 너를 만날 수 있다는
로맨틱한 서사를 제쳐두고,
나의 죽음 앞에서도 지울 수 없는 혈육의 짙은 농도에 관해 생각한다.
그 사랑의 깊이를 가늠한다.
다시 시간을 돌려 읽던 책을 덮고
졸린 눈으로 망설이며 문턱에 기대어선 너에게
환하게 웃으며 팔을 벌려줄 나.
나에게 사랑 말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던 그때의 너.
너라는 존재 그 자체가 사랑의 실체임을.
그 시간들을 돌이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에 관하여-
나는 다행히 아직 젊고, 내 아이들은 아직 내 미소와 포옹을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도 아니고
역사에 족적을 남길 혁신가도 아니며
제자의 존경을 받는 스승도 아니기에
그런 내가 너희들에게 후회 없는 굿나잇 키스조차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반칙이다.
순리에 대한 배신이다.
오늘도 나는 후회 없는 역사를 쓰기 위해 기도한다.
외롭고 어려운 순간에
마음 넉넉히 떠오르는 친구가 되게 하소서.
걔가 있으니 나는 괜찮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프지도, 가난하지도, 인색하지도 않은
그런 친구로 늙어가게 하소서.
나는 너의 엄마여서 행복했다, 말할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