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다.

by 연쇄도전러 수찌

아무래도 방콕에 오길 잘한 것 같다.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옛말이 늘 맞는건 아닌 모양이다. 혼자 여행하던 때에는 더 먼 곳, 더 특별한 곳에 가고 싶었다. 엄마의 삼십 년만 여행. 모험을 선사할 수는 없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소문난 잔치를 찾았다. 다행히 작전은 그럭저럭 성공.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 좋았다. ‘마사지’라는 여심 저격 즐길 거리가 지천으로 널린 것도 방콕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 내 손으로 미처 다 못 해드린 효도. 남의 손으로 대신해드리리오. 방콕에 머무르는 일주일. 어쩌다 보니 거의 1일 1 마사지를 실천했다.

사진은 멋있다. 사진만 멋있다!

엄마와 아직도 가끔 방콕에서 첫 번째로 마사지 받은 가게 아줌마에 관해 이야기한다. 방콕 초반, 신나서 지나치게 많이 걸은 날이었다. 저녁 먹고도 체력이 남길래, 괜히 숙소와 먼 ‘아시아 티크’ 쇼핑몰까지 갔다. 막상 도착하니 크게 볼거리도 없다.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야시장과 깨끗한 쇼핑몰의 ‘단점’만 합친 느낌이다. 보잘것없는 물건이 비싸기만 하다. 빠르게 김이 새버렸고, 아드레날린이 떨어지자 체력도 급격히 바닥났다. 한 바퀴 쓱 구경하자 감이 잡혔다.


‘숙소나 가자!’

집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을 타야 했다. 길치, 방향치라서 초행길은 항상 여러 사람에게 묻곤 한다. 지하철도 마찬가지. 방향이 헷갈리면 역무원을 붙들고 꼭 다시 확인하고 탔었다. 그날은 기력이 바닥을 친 나머지, 물을 힘과 의지가 전혀 남지 않았다. 대충 머리 위에 붙은 네모난 안내판을 따라 지하철에 올라탔다. 다행히 지하철엔 빈자리가 많았다.

‘앉아서 갈 수 있어 다행이다.’ 따위의 말을 나누며 한참을 가다, 뭔가 낌새가 이상해 옆에 앉은 태국인에게 물었다.

“라차테위 방향으로 가는 열차 맞죠?”

“아니요, 반대 방향을 타야 해요!”

이럴 수가, 역시 내 방향 센서는 맛이 갔나 보다. 오래간만에 내 감각 믿고 탔더니, 그럼 그렇지! 이번에도 틀려버렸다.

“엄마, 우리 지하철 반대 방향으로 탔대. 다음 역에서 내리자.”

“뭐라고? 돌아가야 한다고? 아이고.”

“미안해…….”


반대 방향 노선을 탔더니, 아까랑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객실 안이 만석이다.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할 판이다. 발이 부어 발 가죽이 가죽 샌들 틈새로 볼록 튀어나왔다. 관광에 정신 팔린 본체 덕에 혹사당한 발바닥은 불에 덴 듯 쓰렸다. 그래도 어째. 숙소까지는 돌아가야 누울 수 있는걸…….


지하철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노란 바탕에 굵게 글자가 적힌 간판이 까만 길거리에서 구세주처럼 빛났다. 알 수 없는 태국어 사이로 눈에 띄는 영어 ‘MASSAGE’! 늦은 시간까지 무리해서 커다란 쇼핑몰을 발에 땀이 나게 누볐다. 땀 난 발로 지하철에서마저 서서 왔더니 당장에 아무 곳에라도 철퍼덕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 마사지라는 글자가 몽롱한 몸과 정신을 꼬드겼다.

“엄마, 태국 마사지 받고 집 갈까?”

“아휴 그럴래? 그러자.”

그렇게 경험한 우리의 첫 태국 마사지. 작은 가게지만 커튼으로나마 공간이 분리되어있다. 들어가자 사장으로 추정되는 덩치 커다란 아주머니가 잘 해 주겠다고 자본주의 미소를 한껏 짓는다. 엄마는 그 사장님이, 나는 다른 관리사가 따라붙었다. 둘 다 타이 마사지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마사지라지만 몸 만지는 일인데, 이렇게 아무 곳에나 들어와서 받아도 될까?’

마사지 복으로 갈아입는 동안까지도 일말의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윽고 이어지는 마사지사의 손길. 의외로 시원하다. 마사지사의 손 압력과 접은 관절을 이용해서 내 몸 구석구석을 안마한다. 의심이 살짝 풀렸고,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돌아누우라면 돌고, 앉으라면 앉았던 것 같다. 작은 업장이지만 나름의 절차가 있는 것 같았다. 마사지사 아주머니의 명령에 따라 물 흐르듯 시간이 흘러갔다.

‘이래서 엄마가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했구나.’

땡땡 부은 종아리가 남 두 손으로 주물러질 때. 내 종아리가 녹아서 매트리스 사이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엄마는 연배가 비슷한 사장 아주머니에게 마사지를 받았다. 서로 말도 안 통하면서, ‘아줌마들끼리의 무언가’가 있나 보다. 한 시간 동안 다른 언어로 대화를 나눴다. 엄마가 ‘으…. 아파요…….’ 한국말로 아프다고 말하면 아주머니는 그럭저럭 알아듣고 강도를 낮추었다. 그러면 엄마 신음이 조금 줄어들었다. 종종 깔깔거리는 두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저분들 팁 좀 넉넉히 드려.”

마사지가 끝나고 옷 갈아입는데 엄마가 이런 소리도 한다. 우리 엄마 진짜 시원했나 보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팁을 남겨두고 조금은 가벼워진 종아리와 발바닥으로 집으로 걸었다.


방콕 여행자라면 반드시 기웃거린다는 까오산 로드에 간 날이다. 태국의 8월 낮, 역시 자비 없었다.

“엄마, 여기는 정원에서 받는 마사지 집이 유명하대. 이 집 엄청 유명해. 그런데…….”

“그런데 뭐?”

“여기는 에어컨이 없대.”

“이 더위에 에어컨이 없다니. 그런 데를 왜 가? 에어컨 달린 데도 널렸더구먼.”

“그렇긴 한데……. 여기는 정말 유명한 곳 맞아. 선풍기만으로도 시원하대.”

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나도 처음 와봐서 정말 시원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카페에서 잠깐 나와 다른 가게까지 걷는 데도 땀이 나는데, 어떻게 선풍기 바람만으로 괜찮을 수 있을까…?


안되면 욕먹을 각오하고 ‘마사지 인 가든’으로 갔다. 작은 자갈이 빼곡히 깔린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야자나무와 이름 알 수 없는 커다란 관엽 식물이 가득한 정원이 나왔다. 다소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카오산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가게. ‘정원 속 마사지’라는 컨셉에 충실하니 고즈넉한 느낌이다. 정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노이즈 캔슬 이어폰’ 켠 듯한 고요했다. 마사지 받는 공간은 두꺼운 각목으로 직육면체 모양 뼈대를 세우고 살짝 비치는 하얀 커튼으로 벽을 쳤다. 그 안에는 각자의 침대가 있고 기둥에 천장형 선풍기 두 대가 좌우로 달렸다. 어둡고 고요한 방에서 마사지하는 가게가 많았다. 이곳은 전혀 다른 분위기. 해가 정수리는 살짝 넘어간 시간. 야자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 누웠다. 야자수 잎사귀가 미처 가리지 못한 부분은 흰 커튼이 막아준다. 선풍기 두 대가 180도로 고개 돌려가며 미풍을 뿌린다. 흰 커튼이 선풍기 바람에 살짝살짝 일렁인다.

‘가만 누워있으니 덥지 않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이미 코 고는 중이다. 한낮의 휴식이 얼마나 꿀맛인지. 엄마는 한 시간 더 마사지 받겠다고 선언했다.


천방지축 말 안 듣는 딸 하나, 아들 하나. 혼자 힘으로 키우느라 억척같이 살아온 세월. 마사지? 엄마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가끔 장사 마치고 아픈 팔다리 딸에게 주물러 달라 했다. 몇 분 주무르면 귀찮아져서 반대쪽 다리는 대충 주무르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엄마는 마사지 받을 때 ‘아프다’고 난리고, 끝나야 ‘시원하다’고 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 오십 넘어 처음 해 보다니. 미안하고 미안하다. 이제라도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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