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까지 와서 밥하긴 싫다!

바다와 수영장과 하늘이 하나되는 공간

by 연쇄도전러 수찌

닳고 닳은 향락의 도시 파타야. 알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태국에서 가깝고 바다 구경할 수 있는 곳. 파타야 뿐이다. 파타야에서는 에어 비앤비로 괜찮아 보이는 아파트먼트를 예약했다.

“엄마 여기 아파트라 주방이 있어. 우리 며칠 동안 계속 사 먹었는데, 여기서는 요리해 먹을까?”

“아~니! 엄마 태국 와서까지 요리하기 싫다.”

엄마가 밥도 해 먹을 수 있는 숙소 오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 반응이다. 평생 살림 도맡아 한 엄마. 여기까지 와서 주방일 하기 싫은 마음도 이해된다. 엄마에게 이 시간은 ‘다양한 체험’이 아니라 ‘온전한 휴가’일 테지. 저녁에 맥주 한잔하기 위해 과일 깎아 내는 것까지도 내가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숙소를 예약한 또 다른 이유. 새로 지은 옥상 수영장이 깨끗하고 예쁘기로 유명했다. 그냥 수영장이 아니라 벽이 유리로 된 ‘인피니티풀’이란다. 요즘 젊은이들 ‘호캉스’가면 인생샷 남기는 인피니티풀 말이다. 엄마가 이런 곳을 본다면 얼마나 좋아할지 궁금했다. 파타야에 도착한 날, 그것도 이동이라고 지쳐서 배부르게 밥을 먹었다. 배부르고 무료한 시간. 수영하기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여기는 수영장 때문에 온 거야. 우리도 수영복 입고 한번 가 보자.”

수영복 사 오긴 했지만, 막상 입고 나가려니 영 불안한 엄마. 튀어나온 뱃살도, 쳐진 엉덩이도, 굵어져 버린 팔뚝도 다 흉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아이고, 아줌마 뱃살 봐라. 이렇게 출렁거리는데 부끄럽다.”

“사 온 거 안 입을 거야? 이거 봐 아가씨도 똑같아!”

“너는 밥 먹어서 나온 거고, 아줌마 뱃살은 그냥도 장난 아니구먼! 브라자만 입고는 갈~수~가~ 없어요. 그냥 위에만 래시가드 이거 걸치고 갈까?”

“괜찮아. 올라가 봐. 아무도 우리한테 신경도 안 쓴다고!”


부끄럽다고 빼는 엄마를 어르고 달래 옥상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복을 안에 입고 그 위에 훌쩍 벗을 수 있는 통 원피스를 걸쳤다. 엄마 마음과 달리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간다. 마침내 ‘띵’ 소리와 함께 옥상에 도착했다. 늦은 오후, 햇볕이 따갑지 않아 물놀이 하기 좋은 날씨다. 역시 사람이 적지 않다. 다행히 엄마가 자신감 얻을만한(?) 친구가 많았다. 엄마보다 더 덩치 큰 할머니, 더 배 나온 아저씨도 어김없이 수영복만 걸친 모습. 다들 제가 놀기에 정신 팔려 남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는 분위기. 우리 경숙 씨가 용기 내기 충분한 환경이었다. 원피스를 훌렁 벗어 의자에 걸치고 누가 볼세라 얼른 물로 뛰어든다.

솔직히 나도 인피니티 수영장은 처음이다. 가리는 것 없이 높은 건물 옥상. 수영장 물을 타일벽 아닌 유리 벽에 채웠다. 풀장 물과 저 앞 파타야 바다가 이어져 보인다. 유리 벽에 기대어있자면 끝없는 하늘을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 넓은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에 담겨서 왼쪽을 보면 옹기종기한 호텔로 가득한 파타야 시내가 내려다 보였고 앞으로는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해가 누그러들고 파랗던 하늘과 바다가 분홍빛으로 변하는 시간. 수영장과 바다의 경계가 더 희미해졌다.

“와 너무 좋다. 하늘에서 헤엄치는 거 같아! 내일 바다에 가지 말자. 여기 이렇게 좋은데 바다를 왜 가?”

엄마가 아이처럼 좋아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건 엄마를 닮은 모양이다.


가족끼리 계곡, 바다에 갔던 때가 생각났다. 분명 엄마도 같이 갔겠지만 엄마가 물에 들어온 장면은 한 조각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늘 우리가 반쯤 녹초가 되어 돌아오면 간식 주던 역할. 휴가에서조차 엄마는 요리 담당이자 텐트 물건 지킴이였다.

‘엄마도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구나. 엄마는 얼마 만에 하는 물놀이일까?’


물에서 노는 건 좋아한다만 수영은 개헤엄밖에 못 친다. 반면 엄마는 자유형도 꽤 능숙하다.

“엄마, 엄마 수영할 줄 알아?”

“아이고~ 너 하는 것도 수영이라고 하냐? 이 정도는 해야지.”

“엄마 수영 언제 배웠어?”

“배우기는, 원래 할 줄 알았거든. 엄마 아가씨 때 수영장도 다녔어.”

“수영장을 다녔다고? 아까는 수영복도 못 입겠다더니.”

“그건 지금 살이 쪄서 그렇지. 아가씨 때는 날씬했어. 그땐 수영장 가면 인기 좀 끌었지. 지금 너만큼 말랐었다. 엄마도.”

“말도 안 돼.”

“너도 애 낳아봐라. 엄마 몸매 될 거야. 나도 네 팔뚝만큼 말라서 외할머니가 사람 구실이나 하겠나 저거 그랬다고.”

찬찬히 살펴보니, 엄마와 내 몸매 너무 닮았다. 통짜 허리, 가슴 모양, 좁은 골반, 작은 궁뎅이,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떨어지는 라인까지. 나보다 딱 10킬로 더 나가는 엄마. 내 몸매에 지방 10kg을 찰흙처럼 고르게 펴 바르면 엄마 몸매가 될 것 같다. 둘레는 다른데 실루엣은 똑같다. 특히 다리 모양이 닮았다. 전체적으로 짧고 골반은 별로 없으며 종아리는 가을무처럼 통통한… 나, 엄마 딸이 확실하다. 아마 30년 뒤엔 엄마 몸매가 되어있겠지…?


간만에 누군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엄마가 아닌 수영인으로 돌아간 경숙 씨. 길지 않은 수영장에서 오랜만에 힘차게 팔을 저어본다. 자유형도 못 하는 딸은 옆에서 고개 들고 갈 수 있는 만큼 개헤엄으로 따라가 본다.

“어휴 너는 여행도 많이 다녔다는 애가 수영이 그게 뭐냐. 옛날에 수영도 엄마가 보내줬잖아.”

“그렇긴 한데……. 나는 왜 이렇게 팔 저으면서 숨 쉬는 게 안되는지 모르겠어…….”

“엄마 봐봐. 이렇게 팔 저을 때는 고개를 완전히 꺾어야지.”

성인 되고 취업까지 했다. 내 잘난 맛에 살았다. 이제 엄마에게 배울만한 거리는 없겠지,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수영장에서 다시 경숙 씨가 내 엄마로 돌아왔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하고 자식이라면 모든 걸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 아직도 엄마에게 배울 게 너무 많다. 우리 엄마, 수영도 잘하고 삼십 년 전에는 44반 입을 만큼 날씬했다. 그때의 날씬한 경숙 씨도 멋졌겠지만 지금 66 사이즈 우리 엄마도 사랑스럽다. 어쩌면 평생 모를 엄마 능력이 아직도 많을지 모르겠다.

이날은 숙소에서 파타야 야경을 바라보며 샴페인을 마셨다. 물론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술이지만 말이다. 방콕에서 너무 욕심부리는 바람에 다 먹지도 못한 망고 세 개가 가방에 남았더라. 방콕에서는 먹기 좋게 썰려고 껍질 벗겨 복숭아 깎듯 썰었다. 이날은 씨 중심으로 갈라 내어 특별히 더 예쁘게 벌집처럼 썰어본다. 어쩌면 술은 ‘분위기 빨’이니까. 오랜만에 물놀이를 즐기고 남이 깔아둔 침대에서 쉬다가, 딸이 술상 차려와서 먹자고 깨워야 일어나는 엄마. 입이 귀에 걸렸다. 잔을 기울이며 궁금한 엄마의 아가씨 시절에 대해 묻고 또 물어봤다. 지금도 귀염상인 엄마. 44반 시절에는 인기 좀 끌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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