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남들이 너랑 나랑 자매 같단다!

우리 엄마가 예쁘긴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by 연쇄도전러 수찌

내 생각에 우리 엄마는 꽤 예쁜 편이다. 얼굴은 자그마하고 코도 작지만 오똑하다. 나와 달리 눈동자도 까맣고 크다. 눈에 원래는 쌍꺼풀이 없었지만, 나이가 들며 윗눈꺼풀이 쳐져 오묘한 쌍꺼풀이 생겨버렸다. 그 쌍꺼풀은 늘어진 살이 겹겹이 접힌 모양이라 엄마는 매일 ‘쌍꺼풀 수술해야 하는데’를 입에 달고 산다. 오십 평생 얼굴에 점 빼기 외에 어떤 시술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경숙 씨. ‘쌍꺼풀 수술해야 하는데…….’를 최소 5년은 들어왔으나 아플까 봐 무서운 경숙 씨는 매번 결단의 시기를 ‘내년 겨울쯤’으로 미루고 만다. 이마도 판판하니 적당히 넓다. 머리칼은 가끔 흰털이 섞여 있지만, 아직 굵고 찰랑거린다. 딱 한 개 뚫은 귓불 구멍에는 다양한 귀걸이가 걸린다. 평소에는 거슬리지 않는 작은 링 귀걸이를 끼고 계 모임이라도 나가는 날에는 좀 더 화려한 금귀걸이를 낀다. 어릴 때부터 내 친구들은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고 했다. 내 눈에도 그랬다. 우리 엄마는 다른 친구 엄마보다 늘 예뻐 보였다.

그 아름답던 모습 그대로 멈췄으면 좋으련만, 아쉽게 오십 대 경숙의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자리 잡았다. 대표적으로 미간이 내 천(川)자로 주름졌다. 장사하던 억척 아줌마 시절, 다른 상인과 기 싸움할 일도 많았다. 어린 내가 듣기에 항상 엄마 말이 맞긴 했다. 원래 사람들은 다 자기 위주로 말하기 마련이니까. 어쨌든 지난 십여 년간 혼자서 애쓰고 분통 터져 하고 속상해 우는 동안 엄마 눈썹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파여버렸다. 좋은 주름도 있다. 경숙 씨는 웃을 때 눈 끝 주름이 관자놀이까지 구겨진다. 눈가 고랑이 깊지만 이건 선한 느낌을 준다.


경숙 씨는 동년배보다 피부에 기미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두꺼운 피부화장을 선호한다. ‘하-얀 화운데이션’을 발라야 화사해 보인다며 약속 있는 날은 번질거릴 만큼 두껍게 피부화장을 한다. 원래 뚜렷한 이목구비 탓에 기미만 가리면 훨씬 더 어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대부분 자연스러운 화장을 많이들 한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경숙 씨의 메이크업은 조금 남다르다. 피부화장이든 눈썹이든 입술이든 강렬한 것을 선호한다. 이왕 바를 건데 왜 옅은 색을 발라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너무나도 할 말 없는 논리에 매번 나는 입을 다물고 만다. 경숙 씨는 잡티가 다 가려질 때까지 파운데이션을 깔고 눈썹 색칠을 시작한다. 회갈색 연필을 쥐고 앞쪽은 연하고 뒤로 갈수록 진해지는 갈매기 형 눈썹을 그린다. 양쪽 눈썹이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이룰 때까지 그리고 지우고 덧칠한다. 눈두덩이는 전체적으로 금색 펄이 들어간 따듯한 분홍빛 섀도를 깔고 그 안에 1cm 정도 짙은 보랏빛 섀도를 덧바른다. 얼마 전에 개발한 비기인 붓 펜 아이라인도 놓칠 수 없다. 사진 찍을 때 처진 눈이 고민인 경숙 씨. 새카만 리퀴드 형 아이라이너로 속눈썹 사이부터 위로 약 2mm가량을 채워주면 눈이 훨씬 땡그라니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핑크와 빨강 사이 립스틱 혹은 다홍과 빨강 사이 쨍한 립스틱을 바르면 화장이 끝난다.

경숙 씨는 화장에는 능숙하지만, 머리 손질에는 영 소질이 없다. 딸이 고데기를 들거나 드라이기와 롤 빗을 들면 꼭 자기 머리도 다려 달라고 성화다. 어차피 고데기에 온도 오른 김에 앞머리 하나 정도 더 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화룡점정. 경숙 씨가 사랑하는 굵은 금반지와 금팔찌까지 껴 줘야 외출준비가 끝난다. 두께가 2cm에 육박하는 금반지는 경숙 씨 자신감의 원천이다.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 때는 꼭 팔찌, 목걸이와 반지를 맞춰 낀다. 귀걸이는 예외다. 야시장에서 산 도합 다섯 개의 쇠 귀걸이를 오늘 의상에 맞게 곁들인다. 흰 셔츠를 입은 날에는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알록달록한 귀걸이를, 화려한 패턴 상의를 입은 날에는 수수한 흰 깃털 귀걸이를 낀다.


숙 씨는 살림에 있어선 손이 야물지만, 종종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손이 야물지 않다. 특히 목걸이나 팔찌의 고리를 한 손으로 열어 반대쪽 링 안에 넣는 일에 서툴렀다. 귀에 바늘만 한 구멍을 찾아 귀걸이를 끼는 일도 잘 못 했다. 낑낑대며 애쓴다면 스스로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딸을 부르는 게 더 쉽고 빠르다.

“딸 이리 와봐. 이것 좀 끼워줘.”

“거울 보면서 구멍에 딱 끼우면 되잖아. 왜 맨날 해달라 그래!”

“거울 봐도 구멍이 잘 안 보여. 너도 내 나이 돼봐라.”

아직 그 나이가 되지 못해 어떤 심정일지 알 수 없는 나는 더 할 말 없이 귀걸이를 열어 엄마 귀에 끼웠다.

이렇듯 두 여자의 준비시간은 길고도 복잡했다.


가이드북에 하노이 시내에 이런저런 볼거리가 많다고 되어있었지만, 실제 우리를 사로잡는 화끈한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공들인 얼굴로 일찍 나가 길거리를 걸었다. 한낮은 더우므로 일찍 나갈 필요가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일상일 그 거리를 이리저리 걸으며 우스운 대화를 했다.


“엄마! 이거 봐. 이 나라는 개밥도 쌀국수를 준다.”

“진짜네. 이게 뭐야. 개도 질리겠어.”

“개 표정 좀 봐. 완전 우울하다.”

“진돗개를 닮았구먼그래?”

어떤 양념도 없이 하얀 쌀 면 한 덩이 그대로를 개밥으로 던져 줬다. 먹이가 가득한 밥그릇을 두고도 어쩐지 개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깨끗하고 시원해 보이는 물도 가득하다. 개 주인은 아마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애견을 사랑하는 중이겠지.


이른 시간에 찾아간 ‘호찌민의 묘’는 들은 대로 공사 중이었다. 굳게 닫힌 묘라도 구경하려 몰려든 사람이 많았다. 돌아서려는 우리에게 누군가가 투박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5분만 기다리면 근위병 교대식을 해요.”

“그래요? 볼만 한가요?”

“이곳에 왔다면 꼭 봐야죠. 멋져요.”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많았구나. 하노이 주민의 설명을 믿고 5분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칼 각 잡힌 새하얀 복장과 과장되게 큰 걸음. 근위병 교대식은 그의 설명처럼 꼭 봐야 할 것은 아니었지만 ‘왔으니 5분 기다려 볼 만’은 했다. 묘와 연결된 정원을 구경하고 나니 날씨가 참을 수 없이 더워졌다. 한낮 하노이의 더위는 머리가 띵 할 만큼 직접적이다.


어쩔 도리가 없이 오늘도 낮에는 실내로 들어가야겠다. 조식에 딸려 나온 커피의 카페인 효능이 줄어들 시간쯤이기도 하다. 겸사겸사 낮에는 주로 카페에서 1~2시간 정도 쉬었다. 호찌민 묘 바로 앞에 카페가 보였다. 유원지에 딸린 매점 같았다. 사람들은 그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기도 하고 커피를 시켜 먹기도 했다. 실내에는 아찔하게도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 커다란 선풍기만이 윙윙 돌아가서 바깥 그늘에 앉는 편이 더 나았다. 연유 커피와 블랙커피를 한잔 씩 시켰다. 무조건 차가운 것이다. 엄마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기다란 유리잔에 꽝꽝 언 얼음 대여섯 개를 띄운 음료가 나왔다. 바닥에 깔린 연유를 열심히 휘저으니 블랙커피가 카페라테 색으로 변했다. 우리는 두 가지 커피를 바꿔 맛보고 자기 입맛에 더 맞는 잔을 골랐다. 우리는 둘 다 줏대가 없어서 어떤 날은 단 커피가 땡기고 어떤 날은 쓴 커피가 땡기기도 했다. 그래도 절대로 하노이에서 뜨거운 커피가 땡기는 일은 없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영어로 또 말을 걸었다.

“아유 씨스터? (둘이 자매에요?)”

엄마가 찰떡같이 ‘씨스터’를 알아들었다.

“뭐래? 우리 씨스터냐는 거야?”

“그런 것 같은데?”

“맞춰보라고 해.”

“왜?”

“우리 진짜 자매처럼 보이나 한번 보자.”

되물어보니 그 사람이 우리보고 자매 같다고 대답했다. 엄마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남들 보기에는 우리가 자매 같나 보다. 어떻게 하니 우리 동생.”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예쁘긴 하지만 결코 나와 동년배로 보이진 않을 것 같은데!

“선글라스로 눈 가려서 그래!”

그 뒤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엄마는 우리가 ‘자매’라는 점을 어필했다. 그 사실이 몹시도 기쁜 것 같았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색만 다른 선글라스 낀 엄마와 나는 사실 참 닮아 보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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