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 짭롱베이!
이게 무슨 일인가.
사실 베트남에 온 이유는 하노이보다도 ‘하노이에서 갈 수 있는 하롱베이’ 때문이었다. 하노이에 도착한 다음 날, 시세도 파악할 겸 여행사가 보이면 들어가서 ‘하롱베이 투어’가고 싶다고 물었다. 제 발로 들어오는 손님이라면 버선발로 환영해야 할 직원들이 어쩐지 뜨뜻미지근하다. 갈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을 거라고 한다.
처음 들어간 커다란 여행사에서는 젊은 직원 서너 명이 서로서로 묻고 답하며 잠시간 쑥덕거린 뒤 ‘갈 수 있을 것이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갈 수 있을 것이니 계약금을 내세요.”
“못 갈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왜죠?”
“지금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요. 그런데 아마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내일 올게요. 내일 다시 말해주세요.”
커다랗고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가게를 나가 다른 가게로 갔다. 엄마랑 나랑 손잡고 양팔 나란히 벌리면 끝에서 끝까지 닿을 듯 좁은 가게였다. 짧게 자른 머리를 무스로 바짝 넘긴 아저씨가 노트북 한 대, 전화기 한 대와 함께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
“우리 하롱베이 투어 가고 싶어요.”
“하롱베이 투어요?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절대 불가능인가요? 다른 여행사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절대요. 지금 태풍이 너무 심각해서 출항 나간 배도 다 들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아까 다른 여행사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베트남은 엄마가 유일하게 들어 본 ‘하롱베이’에 가기 위해서 왔다. 코앞까지 와서 하롱베이를 못 간다니!
“그 여행사는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아마 결제를 미리 해 놓게 하고 내일쯤 갈 수 없다고 다른 투어로 변경하라고 할 거예요.”
아저씨의 단호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일리가 있었다. 갈 수만 있다면 더 비싼 하롱베이를 못 가게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하롱베이를 구경하려고 베트남에 왔는데……. 뭘 해야 할까요?”
“하롱베이와 비슷한 닌빈이 있어요. 하롱베이는 바다라면 여기는 강인데, 풍경은 비슷해요.”
“태풍이 와도 닌빈 투어는 하나요?”
“바다만큼 풍랑이 심하지 않아서 닌빈 투어는 비가 와도 합니다.”
“날씨가 좋기만을 기도해야겠네요.”
이틀 뒤 닌빈 투어를 하기로 했다.
당일치기 투어. 하노이에서 출발해서 바이딘 사원을 구경하고 하롱베이 닮은 강에서 보트 타며 유람하고 돌아오는 코스다. 정확한 시간에 픽업 온 관광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 바이딘 사원 앞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가이드 설명을 대략 들어본 결과(영어라 상세히 듣지 못함), 이 바이딘 사원은 지은 지 10년도 안 된 절이라고 했다. 원래 있던 작고 유서 깊은 사원을 이 지역 ‘시멘트 왕’이 다시 크게 지은 것이다. ‘시멘트 왕’이라니? 닌빈 지역은 석회암 지대로 곳곳에 큰 시멘트 공장이 보였다. 시멘트 사업으로 부자가 된 시멘트 왕이 죽은 부인을 기리기 위해 최근에 절을 크게 증축했다고 한다. 돈과 사랑 둘 다 대단한 시멘트 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다. 해안가는 태풍이 무시무시하게 올 거라고 하더니, 다행히 날씨가 조금 흐리기만 하다. 앞으로 두 시간 정도 가이드와 같이 또는 따로 이 사원을 구경할 거라고 했다.
이게 웬일. 버스에서 내리자 좁쌀만 한 비가 시작되었다. 아직은 우산을 꺼내진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이거 걱정이 된다. 사원 내부는 너무나도 넓어서 단순히 걸어서 구경할 수가 없다. 골프 카트 느낌이 나는 전동차가 사원 입구부터 주요 건물까지 우리를 날라준다. 전동차 타고 숲길 따라 5분 정도 달린다. 수십 명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가득 한 관광버스에서 내려, 식물 가득한 도로를 바람맞으며 달리니 진정으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빗방울 따위는 상추에 뿌려주는 분무기 물방울처럼 신선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시멘트 왕’의 배포답게 사찰 내부는 여느 사찰보다도 웅장했다.
'이왕 지을 거, 뭐든 크게! 금으로! 번쩍이게!'가 모토인 것 같았다. 나무문 하나도 통나무를 부처님 부조를 담아 정교하게 깎았고, 5m도 넘어 보이는 금불상과 그 옆 수천 개의 미니 금 불상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5m짜리 금 불상 말고, 적당히 커다란 돌 불상도 많았다. 대단히 넓은 사찰, 가는 곳마다 실제 사람 정도 크기로 깎은 불상이 줄지었다. 돌부처님이 수천 개가 된다고 했다. 늘 보던 온화한 부처님의 표정과 몸짓이 아니다. 어느 부처님은 책을 들고 있고 어떤 부처님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골똘히 머릴 받치고 있기도 했다. 어떤 부처님은 왜 이제야 왔냐는 듯이 손을 들어 한 대 내리 칠 기세였고, 어떤 부처님은 벌떡 일어서 있기도 했다. 각자 부처님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며 불교 경전에 포함된 모든 말씀을 담았다고 했다. 시멘트 왕의 배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규모였다.
초대형 금 불상 구경을 마치고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진다. 여기서 다음 건물까지는 천장에 가림막 따위가 없다. 소나기일 거라 여기고 모두가 잠깐 처마 밑에서 기다렸다. 한 십 분 기다려도 비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빗속으로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스타트를 끊자, 나머지도 따라 빗속으로 달려들었다. 정신없이 달려와 다음 건물에서 내 꼴을 보니 옷 입고 샤워한 모양새다. 축축한 머리칼과 옷이 짜증만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웃음이 낫다. 아주 어릴 때나 비를 맞고도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내게는 20년 전 일이고 엄마에게는 40년 전쯤 일겠지. 의도적으로는 결코 닿기 힘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모든 일에 깔깔깔깔 웃음이 나던 어린 시절 말이다.
다행히 버스로 돌아오니 에어컨을 넉넉히 틀어준다. 그 바람에 잠시 몸을 말리며 ‘내륙의 하롱베이’로 갔다. 아까처럼 양동이로 들이붓지는 않지만, 여전히 비가 내린다. 가이드가 어딘가에서 급히 공수한 우비를 나눠줬다. 서양 아저씨들은 입기 싫다고 꿍시렁 꿍시렁 불만을 표시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들 역시 버스로 돌아와 우비를 썼다.
‘그럼 그렇지.’
초록 물이 비현실적인 절벽을 감으며 굽어 나가는 강. 우리는 그 위를 대나무 보트를 타고 떠내려가며 구경할 것이다. 네 명이 한 보트에 한 줄로 앉는다. 이탈리아 출신 아저씨 두 명과 엄마, 내가 한배를 탔다. 우리가 앞자리, 아저씨들이 뒷자리에 앉았다. 어떤 아저씨들인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앞자리라 풍경은 더 시원하게 보였다.
‘하롱베이, 그놈의 하롱베이.’
대표적인 효도 관광 장소로 귀에 딱지 앉게 들었다. 내게도 감동적일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왠지 하롱베이는 ‘효도 관광’하러 오는 곳 같이 느껴졌다. 막상 나룻배에 앉아 강을 보니 감상이 좀 다르다. 수도 없이 보던 그 ‘하롱베이 사진’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강 수위 높이에 딱 달라붙어 앉아 이상하니 생긴 암벽, 절벽에 달라붙어 자라는 식물을 올려다보는 일은 의외로 젊은 내게도 신기한 시간이었다.
석회암 지역이라 강 곳곳에 동굴이 형성되어 있다. 비가 와서 수위가 높아졌다. 안 그래도 낮은 동굴, 물이 차서 이날은 더 천장이 낮다고 했다. 뱃사공이 ‘머리 낮춰’라고 말하면 우리는 겁이 나 상체를 가능한 한 낮게 바짝 접었다. 이탈리아 아저씨 둘은 오늘 비와 풍경에 취했는지, 동굴을 지날 때마다 ‘오페라의 유령’ 주제가를 불렀다. 처음엔 한 명이 높은 목소리로 ‘이---’ 하며 귀신 목소리를 내더니, 이내 같이 ‘The phantom of the opera’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부른다. 그 상황이 웃기다가 갑자기 나도 따라 하고 싶어져서 다음 동굴에서는 나도 ‘더- 팬텀 없디 오페라 이즈 데얼~’을 불렀다.
우비 쓴 어깨 위로 투둑둑 떨어지는 빗방울, 하롱베이 엽서 속에 들어온 듯한 풍경, 철 덜 든 이탈리아 아저씨들. 진짜 하롱베이는 못 갔지만, 이 시간도 나쁘진 않았다.
여행지에서 보통 비가 오면 별로지만 이날은 그 ‘비’ 때문에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엄마는 아직도 우리가 갔던 곳 이름을 모른다. 그 강에 대해 말하려면 ‘비 맞으면서 배 탔던 하롱베이’라고 말해야 한다. 하롱베이든 강 위의 하롱베이든. 엄마와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푸근하게 남을 장소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