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을 마무리 짓는 하우스 콘서트, 여행을 마무리 짓는 재즈 콘서트.
하노이 시내는 별로 볼 게 없었다. Must visit! 이라고 소개된 성당은 역시 늘 보던 성당만큼만 멋있었다.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묘’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간 호치민의 묘는 수리 중이라 외관만 슬쩍 구경하고 돌아와야 했다. 한국 사람이 많이 간다는 ‘롯데 타워’도 갔다. 36층 높이에서 내려다본 찌그러진 하트 모양 호수와 홍콩식 딤섬 맛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하노이 관광의 중심지(?)라는 호안끼엠 호수는 사실상 동네 호수공원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또 다른 하노이의 명물, 인형극 역시 초반 10분 정도만 흥미로웠다. 의외로 할 일이 없어져 버린 엄마와 나는 괜히 호안끼엠 호수에서 멀지 않은 백화점까지 기웃거렸다. 베트남 백화점은 뭘 파나 싶어서 들여다봤으나, 이곳 역시 백화점 물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세계적 상품은 글로벌 기준대로, 베트남 물건은 백화점 프리미엄을 붙여서 판다. 우리 같은 단기 여행자가 흥미를 느낄 공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하노이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우리는 그 잉여로운 시간을 커피로 채웠다. 다행이다. 베트남에 커피가 유명해서. 하노이에서 잔뜩 사서 온 인스턴트 ‘G7’ 커피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현지 카페에서 바로 맛보는 독특한 커피들은 꽤 흥미로웠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접근했던 ‘에그 커피’. 달걀로 각종 크림을 만드는 것은 알지만, 생달걀을 저어 에스프레소 위에 올려 먹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비리지 않을까? 살모넬라균은 괜찮나?’
의심 많은 사람답게 각종 걱정거리가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비리면 뱉어내는 어린이 입맛 소유자라 날 것 비린내에는 특히 민감하다. 그래도 인터넷의 칭찬 일색 평을 보니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실험 삼아, 일반 커피 한 잔과 에그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주문 즉시 노른자를 저어 거품을 내는지, 주방 한구석에서 거품 내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나온 블랙커피로 목구멍을 살짝 축였다. 카페인 한 모금으로 ‘날달걀 커피’를 만나기 전 긴장된 마음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그리고서야 배달된 달걀 커피를 눈곱만큼 티 숟가락으로 떠서 맛봤다. 이 커피를 누가 내게 ‘생달걀’로 만들었다는 설명 없이 가져다줬으면 좋았겠다! 갓 저어 뜨거운 채로 내어온 달걀 크림은 전혀 빌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커스터드 크림 같은 맛이 났다. 그렇지만 달걀 커피는 뜨겁게 먹어야 제맛이기 때문에, 몹시 더운 한낮에는 먹고 싶지가 않았다. 해가 지고 나서 커피를 마시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 모녀에게 달걀 커피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 같은 음료로 남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코코넛 커피’가 있다. 코코넛으로 만든 셔벗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내는 커피다. ‘빠다 코코넛’과 ‘밀크커피’. 엄마가 원래도 즐겨 먹던 조합이다. 처음 그 두 개를 합쳐놓은 음료를 맛봤을 때 너무 맛있어서 둘 다 발을 동동 굴렀다. 이름도 귀여운 ‘콩 카페’는 하노이 시내에 여러 지점이 성업 중이다. 다행히 우리 숙소 앞에도 작은 분점이 있었다. 우리는 더위에 굴복해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한 잔, 다시 출발할 때 힘을 얻기 위해 한잔 코코넛 커피를 사 마셨다. 인기가 많아서 에어컨 가동되는 실내에 앉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주로 가게 앞에 깔린 낚시 의자에 앉아야 했다. 이상하게 코코넛 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으면, 등받이 없는 낚시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도 그리 못 견디게 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얽혀 흘러가는 도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엄마와 휴가 온 지 보름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서 바르고 온 손톱과 발톱 그림이 몇 점은 떨어져 덜렁이고 이미 한두 개는 날아가 버렸다. 더 할 일이 없던 우리는 하노이 네일 가게에 가서 손발톱 색칠을 받아보기로 했다. 콩 카페에서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네일아트’ 따위를 검색했다. 코코넛 커피를 아껴 마시며 수많은 사진 속 칠할 싶은 색을 골랐다. 지난번에 엄마가 내 초록 손톱을 보고 멍든 것 같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신중해야 했다.
“나는 이 자개 조각 붙이는 거 할 거야. 엄마도 여기서 화면 밑으로 내리면서 골라.”
“네가 그거 한다고? 나도 그거 할래.”
“아 왜 똑같은 거 해? 다른 거 해 엄마는.”
“그게 예뻐 보이는구먼. 뭐 똑같은 거 좀 바르면 덧나냐?”
물놀이를 거치며 만신창이 된 손톱 위 두꺼운 덩어리를 뜯어내고 손톱을 다시 깔끔하게 갈아 냈다. 이름 모를 베트남 언니가 내 손톱 위에 재료를 겹겹이 올려줬다. 검지와 약지에는 영롱한 빛깔의 자개 껍데기 조각을 한 점 한 점 올렸다. 네일아트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왜 사람들이 이 취미를 끊을 수 없는지는 알겠다. 내 손끝에 달린 보석 같은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꽤 된다.
오늘 저녁에는 ‘재즈 바’에 갈 것이다. 우리 엄마도 흥이 많다. 음악이 쿵쿵대면 몸이 자동으로 들썩이는 건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기질인 듯하다. 요즘에는 엄마가 젊은 트로트 가수 노래에 완전히 빠져버렸지만, 젊었을 때는 엄마도 꽤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늘 모차르트, 쇼팽 음악을 자장가로 들려줬다. CD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 인쇄가 닳을 때까지 클래식 자장가를 들려줬고 들었다. 피아노 학원을 유치원 무렵부터 보냈다. 딸이 피아노쯤은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교양있는 여성으로 컸으면 했나 보다. 안타깝게도 ‘피아노쯤은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교양있는’, ‘여성’ 중에서 결국 달성해 낸 것은 ‘여성’밖에 없지만 말이다. 대충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된 때, 엄마는 ‘소녀의 기도’를 쳐 달라고 했다. 그 시절 엄마도 나도, 소녀의 기도 작곡가가 의도한 ‘소녀’ 나이대는 아닌 것 같지만.
‘미—미 레—레 도—도 시—시 라—라 솔—솔 파—파 미—’
두 소녀는 내리막길을 경쾌하게 폴짝이며 내려오는 듯한 도입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엄마가 좋아할 때면 나는 더 그럴싸해 보이려고 일부러 페달을 더 길게 밟아 분위기를 냈다. 그 덕에 딸은 클래식을 즐겨 연주하는 어른은 되지는 못했지만, 즐겨 듣는 어른이 되기는 했다. 일요일 오후면 서툴게 뚱땅였던 ‘소녀의 기도 하우스 콘서트’가 가끔 생각이 난다. 일주일을 마무리 짓는 초딩 딸의 하우스 콘서트. 비슷한 개념으로 여행을 마무리 짓는 재즈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30분 전에야 예약전화를 걸었지만, 하노이 재즈바는 고맙게도 예약을 받아줬다. 심지어 연주자 앞이라는 최고 명당자리를 내어줬다.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자의 등이 보이는 자리이자 가수 아저씨 옆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맥주를, 나는 피냐콜라다를 우선 주문했다. 가수 아저씨는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대뜸 색소폰을 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대 위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기도 했다. 드럼의 규칙적인 투닥거림, 더블베이스의 묵직한 뚱땅임, 재즈 피아노 선율의 예측할 수 없는 진행, 그리고 한 마리 호랑이 같은 가수 아저씨의 목소리가 멋있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재즈 음악의 무질서한 듯 질서 있는 듯 무질서한 진행이 좋다. 제각기 손 가는 대로 누른 것 같지만 그럴싸한 음악으로 합쳐지는 소리를 들으면 희열이 느껴진다. 넓은 술집이지만 어두운 조명과 커다란 음악 소리 때문에 각자의 테이블 그리고 라이브 음악만이 세상 전부인 듯 느껴졌다. 호랑이 같은 아저씨가 두피까지 빨개질 정도로 색소폰을 불어댈 때는 저 마법 같은 나팔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면 싶었다.
빨갛고 푸른 네온사인이 여태까지 여행하던 하노이와 다른 매력적인 분위기를 공기 중에 흩뿌렸다.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처음에는 낯설어하는 것 같았지만, 엄마도 이내 그 섹시한 분위기에 적응했다. 맥주 한 모금, 칵테일 한 모금, 음악 한 조각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이 밤과 음악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다. 음악이 끝나면 곧 휴가도 끝나고 말 테니까. 그러면 다시 출근해야 하고 언제 엄마와 다시 이런 재즈바에 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