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라고!

그래도 역사는 기록자(?)의 시각에서 써 진다.

by 연쇄도전러 수찌

엄마와 아름다웠던 이야기들 줄줄이 나열했다. 사실 여행에서 엄마와 늘 사이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결혼하기 전에 배낭여행을 한 번 같이 가봐라.’ 따위의 말은 꽤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여행은 상대방의 바닥을 볼 기회가 맞다. 엄마와는 이제는 서로의 밑바닥을 내어 보일 필요도 시간도 없었지만, 번번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나름대로 효도하겠다며 살뜰히 짜온 코스인데 내 마음같이 흘러가지 않을 때 쉽게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종종 모든 것을 내게 ‘아기’처럼 의존하는 엄마가 버겁게 느껴졌다. 가격 묻기, 흥정하기, 길 묻기, 오늘 뭐 하느냐고 묻기, 메뉴 선정과 입에 맞지 않을 시 눈치 보기, 돈 관리, 지갑 단속, 지도 보기, 입장권 끊기 등. 원래도 혼자 했던 일들이다. 유난히도 ‘엄마와 함께’는 더 힘들게 느껴졌다. ‘엄마와 함께’라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가?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배려하는 태도가 내게 체화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인가? 어쩌면 둘 다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주로 혼자 여행하며 제멋대로 하는데 익숙했던 나.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여도 종종 ‘함께한다는 사실’ 자체가 지쳤다. 일과를 마치면 오늘 찍은 사진 중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내줘야 했다. 잘 나온 사진 고르는 일은 초반에는 재미있었으나 종종 그 자체로 부담이 되었다. ‘사진은 내가 더 잘 찍는다’라며 늘 내 카메라와 휴대전화로만 찍어댔으니. 엄마 휴대전화에는 본인 사진이 없었다. 오늘 내 얼굴이 어땠는지, 관광지와 내가 적절히 어우러지면서 찍혔는지 엄마가 얼마나 궁금했을까. 그런데도 귀찮다는 핑계로 ‘내일!’을 외치고, 다음날도 또 옮겨주지 않은 적도 있다.


기껏 짜온 일정이 별로였다며 작게 불평하는 엄마에게 ‘그럼 엄마가 찾아봐!’라고 성질내기도 했다. 엄마가 아무리 네이버를 뒤적여봤자 아주 신통한 할 거리는 못 찾을 줄을 알면서도.


이상한 코끼리 장식에 꽂혀 꼭 저것을 쌍으로 사야겠다는 엄마를 굳이 말렸던 일도 후회된다. 엄마가 이 장식에 빠진 것을 눈치챈 상인이 태국 물가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불렀다. 배짱 장사를 하는 상인에게 화가 나 엄마를 말려 어른 코끼리 한 마리와 새끼 코끼리 한 마리만 샀다. 그래봤자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보다는 싼값인데 엄마가 하자 하는 대로 둘 걸 그랬다.


현지에서 정말 유명한 식당이라기에 엄마를 모시고 갔는데 맥주만 홀짝일 때 속상했다. 입맛은 너무나 주관적이며 확고한 분야라 한순간에 바뀔 수 없는 줄을 알면서도 ‘얼마나 맛있는데 좀 먹어봐!’라고 자꾸 권했다. 나도 싫은 건 죽어도 안 먹으면서.


남들은 딸이랑 여행 갔다 왔다고 하면 ‘너무너무 좋았겠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내심 우리 경숙 씨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마냥 좋았던 건 아니라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태국과 베트남에서 ‘못된 딸년’에게 당한 ‘구박’을 생각하면 아마 억울하여서 하고픈 말이 많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역사(?)는 기록자의 시각에서 써지는 것이니까(?)


방콕과 파타야 그리고 하노이와 하롱베이 대신 닌빈. 의외로 여행 초반에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하루하루가 길었고 생생했다. 파타야쯤부터 미친 듯 시간이 흘렀다. ‘엄마와의 여행’이라는 부담감에서 ‘여행’으로 모드 전환이 이루어졌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행기 타고 이국으로 날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다시 비행기 타는 날이 되었다. 늦은 밤에 뜨는 비행기였다. 짐을 숙소에 맡기고 낮에는 하노이를 마지막으로 거닐다 공항으로 향했다. 하노이의 미친 교통 체증을 경험했으므로 이번에는 택시를 탔다. 뭐든 느긋하게 마음먹다가 늦는 편이지만, 예전에 비행기를 놓친 트라우마(?) 때문에 공항에는 넉넉하게 간다. 베트남 돈이 많이 남았다.


돈을 다 써 보려고 일부러 맛있어 보이는 것을 다 시켜서 마지막 만찬을 먹었다.

하노이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볼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식당도 개인이 운영하는 쌀국수 가게와 간식거리 가게만 몇 군데가 전부였다. 늦은 시간 공항 안은 불이 켜져 있는데도 뭔가 어둡게 느껴졌다. 공항 규모가 작아 괜히 지나치게 서둘렀다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또 식당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음식점에서 캔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기 일보 직전이다. 부담은 손바닥만큼만 남기고 엄마와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딸, 엄마 너무 행복했어. 태국이랑 베트남 둘 다 재미있었어. 네 얼굴 보기도 힘든데, 보름이나 같이 있어서 너무 좋았고 네가 외국까지 데리고 와 줘서 더더욱 좋았어. 엄마가 가끔 성질내서 미안해. 다음에 또 엄마랑 여행 올 거지?”

“나도 짜증 내서 미안해. 근데 우리는 둘 다 성깔도 똑같아.”

“그건 그래. 둘 다 양보가 없잖아.”

“엄마 닮아서 그래.”

“아니야 네 아빠 닮은 거야. 엄마는 성격이 온화하잖니.”

“말 같지도…….”

“그래도 다음에도 같이 여행 오자. 다음에는 좀 덜 싸워보자.”

내가 쫑쫑거리며 찾아본 만큼 엄마가 친구 아줌마에게 가서 풀 일화가 많아졌겠지? 더 잘 해보려다가 서로에게 패악질을 부린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된다.


낮에 시내를 구경한 데다 맥주 두 캔 기운까지 올라오니 엄마는 급히 졸린다고 했다. 자정 가까운 시간. 엄마는 손가방을 메고 공항 의자에 기대듯이 누워 잤다. 사실 거의 누운 자세에 가까웠다. 나도 피곤하면 남 눈치 상관없이 일신의 편안함부터 추구하는데……. 엄마를 닮은 게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이 여행의 책임자이자 가이드다. 비행기 타고 엄마가 말 통하는 곳까지 무사히 모셔둬야, 임무가 끝난다. 엄마가 자도 나는 잠들 수가 없다. 게이트가 열리고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지막 손님이 타야 비행기가 출발하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긴 줄이 줄어들고 앞에 열 명 남짓 남았을 때 엄마를 깨웠다.


“엄마. 이제 집에 가야지!”


밤 비행기에 불편하게 앉아 잠깐 눈을 붙였더니 인천 땅에 도착했다.언제나 반가운 인천공항. 식당가로 가 순두부찌개를 한 뚝배기씩 시켰다. 날달걀 하나를 툭 까 넣은 뜨끈한 국물로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리무진 버스표 사는 곳으로 갔다. 여기서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 엄마는 엄마 집으로, 나는 내 집으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바로 출근이라 대구까지 엄마를 배웅해 줄 수는 없었다.

“엄마, 한국에서는 혼자 버스 잘 타고 갈 수 있지?”

“누굴 바보로 아나! 여기서는 문제없지! 카드도 있겠다, 말도 통하겠다.”

그래도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고 싶어 엄마 버스를 더 빠른 것으로 샀다.

“엄마 다음에 봐!”

“그래. 건강히 지내고, 자주 집에 좀 와!”

“알겠어! 다음 달에 한 번 갈게.”

“거짓말!”

짐칸에 짐을 싣고 엄마도 버스에 올랐다. 대구로 향하는 버스가 무사히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엄마도 알아서 잘 갈 수 있는데.


언제까지 엄마랑 같이 살 줄 알았다. 꼬마 수정이는 엄마 없으면 죽는 줄 알았다. 엄마 따라 마트 가는 게 제일 재미있는 나들이일 때가 있었다. 어느새 수정이는 어른이 되었고 취업을 했으며 타지에 정착해서 혼자 산다. 엄마 없으면 죽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제 잘난 맛에 집에 들르지 않아도 잘 산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집’은 이제 명절과 행사 때만 가는 ‘고향 집’이 되었다. 매일 볼 때는 몰랐는데 반년에 한 번씩 내려가다 보니 부모님이 나이 드는 것이 느껴진다. 엄마가 나이 들어 보이냐고 물으면 한사코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나이 드는 만큼 엄마도 변해가는 것이 체감될 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던 내 방, 내 침대는 이제 조금은 낯설어서 자취방 침대만큼 편하지가 않다.


세상에 엄마 닮은 아줌마가 많고 많지만, 우리 경숙 씨는 지구에서 내 말을 제일 관심 깊게 들어주는 아줌마다. 나랑 입맛이 제일 비슷한 친구다. 몸의 길이와 둘레는 다르지만, 실루엣은 98% 일치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내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이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장에 든 돈을 다 부쳐 줄 세상 유일한 사람이다. (이런 마음에 부모님들이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거겠지) 경숙 씨는 이제 제 남편보다도 어쩌면 제 엄마, 아빠보다도 나를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 나도 엄마를 사랑하지만 언제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 평생 불가능한 크기일 것이다. 경숙 씨 손 마디가 대나무처럼 굵어지게 한, 경숙 씨 다리에 하지 정맥이 생기게 한 사랑의 무게다. 아, 언제쯤 나는 엄마를 엄마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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