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의 설렘

신혼여행 이후 처음 떠나는 여행

by 연쇄도전러 수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2주 휴가를 앞둔 엄마. 신난 티가 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여름에 우리 딸과 여행 간다고 잔뜩 자랑한다. 첫 여행지는 덥고 습한 동남아. 찌는 날씨를 식혀 줄 옷차림이 필요하다. 멀리 사는 딸은 엄마 여행 준비 돕기 위해 주말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자마자 태국에서 입을 옷 좀 사야겠다며 옷가게로 이끈 엄마. 그런데 설레발과는 달리 막상 도착하니 손 가는 코너는 익숙한 무채색 코너뿐이다.


“무슨 옷을 사야 해, 딸?”

“이런 무난한 옷은 그만 사고, 여행지니까 평소에는 안 입는 옷을 사야지! 엄마 좋아하는 사진 잘 나오는 빨강! 아니면 이런 화사한 색으로 고르라고.”

사 줄 것도 아니면서 딸이 훈계를 시작한다.

“이 원피슨 어때? 시원하니 태국에 딱이다.”

커다란 초록 잎사귀가 인쇄된 긴 랩 원피스를 찾아 엄마에게 건넨다.

“이런 건 젊은 애들이나 입는 것 아니야? 이걸 아줌마가 입어도 돼?”

“어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원피스 입어볼 거야. 한번 입어나 봐.”

“그럼요, 들어가셔서 한번 입어나 보세요.”

옷가게 점원도 엄마를 부추겼다.

“다 됐으면 나와 좀.”

어색한 표정으로 탈의실에서 나와 거울 보는 엄마. 우리 엄마, 의외로 초록색 걸치니 얼굴이 더 환하니 산다.

“그것 봐. 의외로 잘 어울리잖아.”

“맞아요. 이런 스타일도 너무 잘 어울리셔요. 약간 위로 끈 묶으시면 뱃살도 커버되고 괜찮잖아요?”

제 것 아닌 옷을 걸친 양, 엄마가 머쓱한 표정으로 원피스 자락을 잡고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옷매무새를 살핀다.

“정말 날씬해 보여?”

“그럼, 아니면 당장 벗으라고 했지. 내가 뭣 하러 예쁘다고 하겠어!”

“자꾸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 정말 화사하니 상큼해! 이걸로 해, 엄마!”

“259,000원입니다.”

“이거 평소에는 못 입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여행이니까 입어보는 거지. 이걸로 할게요.”

결국, 내 카드로 얼른 긁고 말았다. 의외로 화려한 초록 나뭇잎 패턴이 잘 어울리던 엄마. 아줌마 옷이 따로 있나? 잘 어울리면 그만이지. 발 편한 운동화와 샌들도 샀다. 오래 걸을지 모르니 바닥이 푹신한 기능성 제품으로. 초록 원피스와 갈색 가죽 샌들을 새로 맞춰 신은 엄마. 평소 머리 질끈 묶고 집안일 하던 아줌마랑 다른 사람 같다.


엄마 단골 미용실도 들렀다.

“아니~ 우리 딸이 이번엔 나 데리고 자유여행 간다니까?”

“언니, 딸 하나는 정말 잘 뒀어.”

“그치? 태국도 가고 베트남도 간다는 거 아냐.”

“언니는 좋겠다. 우리 딸은 언제 나 데리고 가나.”

“그러니까 이번엔 특히 더 예쁘게 말아줘야 해. 다음 주에 우리 여행가니까 너무 뽀글뽀글하게 말면 안 되는 거 알지?”

머리 손질 간편하게 하려고 파마도 새로 한다. 엄마의 눈에는 자랑 그리고 기대가 가득하다. 이렇게 좋아할걸. 그동안 한 번도 모시고 가지 않았다니 괜히 더 죄송해진다.


“우리, 손톱도 바르고 갈래?”

우리 엄마, 말 그대로 ‘완전히 신났다.’ 예전에 같이 한 번 네일아트 받은 적 있었다. 집안 식구 세 끼 식사, 설거지, 청소, 빨래를 도맡아 하다 보니 엄마 손톱 위 그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예쁘긴 하다만 금방 까져서 별로라던 ‘네일아트’를 하고 가자고 나선다. 엄마는 흰 색으로, 나는 시원한 초록색으로 발랐다. 색을 고를 때는 별말 없더니 완성된 내 손톱을 보며 엄마가 빵 터졌다.

“너 손이 멍든 것 같다.”

“무슨 소리야, 시원해 보이고 예쁘구먼.”

“이 색이 훨씬 예쁘다~”

그래. 엄마만 만족한다면 됐지 뭐.


쇼핑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 엄마 선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운전할 때 쓰는 선글라스는 얼굴 반쯤 가리는 자주색 테에 굵은 금색 장식이 박혔다. 그라데이션 된 선팅까지. 전형적인 ‘부인 선글라스’다.

“엄마, 선글라스도 하나 사지? 이런 거 말고 요즘 젊은 애들이 끼는 거로.”

“그럴까? 엄마도 이 안경은 이제 질리긴 했어.”

차를 틀어 백화점 선글라스 매대로 향했다. 마침 여름 휴가철을 앞둔 시기. 매장 입구서부터 선글라스 수백 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서로 품평해 주며 각자 이 디자인, 저 디자인을 걸쳐봤다. 결국, 둘이 집어온 선글라스는 색만 다르고 같은 모양. 약간 알이 크고 테 끝이 고양이 눈매처럼 올라가 있어서 젊어 보이는 디자인이다. 모녀는 이런 취향까지 닮았다.

“그럼 네가 검은색으로 해. 엄마는 밝은색으로 할래.”

같은 모양을 엄마는 회색, 나는 검은색으로 사 왔다.


집에 엄마 전용 캐리어가 없다.

“이모네 가서 빌릴까?”

“이제 자주 여행 가야지. 이번 기회에 하나 사.”

“그럴까?”

엄마는 손목이 좋지 않으니 가벼운 제품으로, 현지에서 고장 나면 난감하니 바퀴가 튼튼한 것으로 골랐다.

마지막으로 딸은 인터넷 면세점 사이트에 접속했다. 엄마에게 깜짝 선물할 립스틱을 골랐다. 엄마 딸이 확실하다. 물려받은 피부색이 비슷하다. 엄마가 즐겨 바르는 립스틱 내가 발라도 예쁘고 반대도 마찬가지더라. 내 입술에 잘 어울렸던 립스틱 두 개를 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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