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비행기

엄마에게 창가자리를 양보한니다.

by 연쇄도전러 수찌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 가는 날. 사실 오늘은 비행기 타고 방콕 가면 늦은 오후라 바로 숙소 갈 예정이다. 이런 ‘이동만 하는 날’에 굳이 화장할 필요는 없다는 게 개인적 지론이다. 반면 엄마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롤 빗과 드라이기로 앞머리를 부풀리고, 눈화장까지 꼼꼼하게 그렸다. 버스 시간에 늦을까, 딸은 마음이 급하다.

“아, 엄마 오늘은 버스랑 비행기만 탄다고. 화장 안 해도 돼.”

“그래도! 여행 가는데 어떻게 화장을 안하니?”

“아니 여행 가는 건 맞는데, 오늘은 사진 찍을 일이 하나도 없다니까?”

“글쎄, 엄마는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 짐이나 더 챙겨.”

엄마가 머리와 화장을 만족할 때까지 손질한 뒤 원피스와 블라우스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엄마, 이런 날은 편한 옷이 최고야. 오늘 버스 4시간, 비행기 6시간 타야 한다고. 이런 날에 어깨 뽕 들어간 블라우스는 사치일 것 같아.”

“그건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럼 오늘은 원피스 입을게.”

야자수 나뭇잎이 그려진 긴 원피스에 잔뜩 부풀린 반 묶음 머리, 머리 위에 살짝 얹은 새로 산 반짝이는 은색 선글라스. 누가 봐도 우리 엄마는 오늘 ‘여행 가는 사람’이다.


가족들의 배웅 받으며 터미널에서 인천공항 가는 버스를 탔다. 4시간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인천공항 지하에서 노숙도 해 봤을 만큼, 이 공항이 익숙하다. 하지만 공항 자동문이 열리고 수많은 항공사 게이트와 전광판을 마주한 엄마. 바짝 얼어붙은 토끼 같은 눈이 된다.

“엄마는 여기서부터는 모른다~ 딸만 따라갈 거야.”

엄포를 놓는다. 우리는 함께 전광판에서 비행시간과 목적지를 찾고 검지로 쭉 전광판 왼쪽으로 따라가 탑승수속 카운터를 찾았다. 일찍 도착한 덕에 카운터 앞줄은 길지 않았다.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며 두 명 여권을 내밀었다.


“저희 창가 자리 부탁드려요.”

나는 같은 값이면 비행기 창가 좌석이 좋다. 화장실 가거나 움직이기 불편하다고 통로 쪽 좌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어도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이 좋아 창 측을 선호한다.

“네, 두 분 자리 붙여 드렸고 창가로 드렸어요. 좋은 여행 되세요.”

출국장을 지나 보안검사대 앞에 섰다. 가져온 핸드백 속 짐을 바구니에 꺼내고 기다란 금속탐지기로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치로 잘 따라오는 엄마. 엄마가 걱정하던 태국 ‘입국 심사’와 달리 우리말로 하는 ‘출국 심사’는 어려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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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신혼여행 이후 엄마의 첫 비행기. 친구에게라면 살짝 고민했겠지만, 오늘은 엄마에게 창가 자리를 양보합니다. 예상이 맞았다. 이륙하기 전 분주한 창밖 공항 풍경부터 눈을 못 뗀다. 마치 아이같이 모든 게 신기한 눈치다. 이륙하는 순간, 엄마 오른손이 내 자리로 넘어와 나의 왼손을 꼭 잡는다.

“오랜만에 비행기 타려니까 떨린다. 안전하지 이거?”

“그럼, 비행기 사고 나는 확률이 교통사고 확률보다 적다고 했어. 물론 사고 나면 다 죽는 거지만.”
“뭐? 사고 나면 다 죽는다고?”

“아니, 우린 사고 안 나지!”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고, 비행기는 순항 고도에 접어들었다.


기내식 시간이다. 뒤에서 카드 밀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뭔가를 반복적으로 묻는 승무원 목소리가 들린다.

“뭐라는 거야?”

“소고기랑 새우 중에서 뭐 먹을 거냐는데?”

“너는 뭐 먹을 건데? 엄마랑 하나씩 시켜서 맛볼까?”

“좋지.”

“비프 원, 쉬림프 원 플리즈.”

기내식이 꼭 먹어보고 싶었다는 엄마. 태국으로 향하는 저가 항공 많은데도 굳이 이 경험을 위해 기내식 주는 항공편으로 예약했다. 새벽부터 준비하느라 진이 빠졌는지 둘 다 기내식을 싹싹 비웠다. 식후 따라주는 커피 한잔. 자연스레 따듯한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엄마가 창밖을 내려다 본다.

‘나도 비행기 탈 때, 커피 마시면서 창밖 보는 시간이 제일 좋은데. 엄마도 똑같네. 엄마 딸이 맞긴 맞나봐.’


30년 만의 비행. 남들은 힘들다는 이코노미 좌석이지만 6시간 정도는 거뜬했다.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길에서 비행시간 역시 하나의 체험 거리였다.

승무원이 출입국 카드를 나눠준다.

“엄마껀 엄마가 써.”

“엄마는 몰라~”

우리 엄마가 어린아이가 되었다. 두 장 다 내가 꾹꾹 눌러 쓴다.


방콕 공항에 내렸다. 이 줄 끝에는 엄마가 걱정하던 ‘입국 심사’가 기다리고 있다.

“왜 왔냐고 물으면 ‘트레블’이라고 하고, 숙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이 주소 보여줘.”

“아, 그래도 잘 모르겠는데! 영어로만 말해야 하지?”

“당연하지, 여기선 영어 아니면 태국말이야. 태국말보단 영어가 낫잖아.”

걱정되는 마음에 엄마를 먼저 보냈다. 뒤에서 엄마가 당황하지는 않을까 지켜봤다. 우려와 달리 엄마는 질문도 없이 프리패스!


아무래도 엄마의 야자수 원피스와 은색 선글라스가 한마디 말없이도 ‘관광하러 왔소.’ 하는 메시지를 전했나 보다. 다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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