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외국 애들은 다 이렇게 다녀

출렁거리는 팔뚝이 고민인 엄마의 민소매 원피스 입기

by 연쇄도전러 수찌

하루 관광을 끝내고 지하철역에서 숙소로 걸어오던 길, 멀리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코를 킁킁거리며 따라가 보니 붕어빵 포장마차보다 약간 큰 노점에서 ‘굴전’을 굽는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은 끊임없이 전을 붙이고 한 사람은 계산과 서빙을 맡는다. 길거리 요리사 솜씨가 기가 막힌다. 무쇠 팬 위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반죽을 한 국자 떠서 편다. 그 위에 굴을 크게 한주먹 집어서 흩뿌린다. 굴이 통통하게 익어 겉면이 갈색으로 노릇해질 때까지 골고루 지져준다. 전 가장자리는 튀김처럼 바삭 해 보인다. 길거리에 펼쳐둔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다. 맛은 증명된 셈. 물론 아까 저녁도 먹었지만, 이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엄마, 우리 이거 야식으로 이거 한 접시 먹고 갈까?”

“길에서 해산물을 사 먹어도 되나? 그래도 맛있어 보이기는 하네.”

엄마가 길거리 음식 꺼리는 줄을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냄새가 좀 매력적이어야지. 다행히 엄마 반응도 긍정적이다. 얼른 전 한 장을 주문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맥주 두 캔을 샀다.


맛은 냄새 이상! 위생 걱정했던 엄마도 맛만큼은 인정했다. 퇴근길 태국 사람들과 포장마차에서 어울려 앉아 맥주 한 캔 기울이는 경험도 재미있고. 다행히 탈도 나지 않았다. 처음에 ‘노점’에서 뭔가를 사 먹는 것을 꺼렸던 엄마. 며칠 만에 딸 여행 스타일을 닮아간다. 이것저것 군것질하는 것도 좋고 꼭 사지 않을 물건 따위를 구경하는 시간도 즐겁다. 이런 나는 시장만큼 재미있는 데가 없다. 덥지 않은 야시장이라면 더 좋고.


‘딸랑 롯파이 야시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주문 즉시 해물을 골라 담고 양념을 부어 쪄주는 요리가 눈에 띄었다. 태국 시장에서 해물찜이라니. 센세이셔널하다. 종업원이 조리된 해물찜을 우리 테이블에 그대로 엎어버린다. 아, 다행히 테이블에 깨끗한 비닐을 깔아두긴 했다. 다소 게걸스러운 모양새가 연출된다. 맛이 좋으니 이것도 추억이다.


식후엔 산책이지(?) 줄지은 노점을 따라 걸었다. 땡모반(수박 주스), 꼬치 요리, 디저트 등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는 모조리 조금씩 샀다. 혼자 올 때는 여러 음식 맛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는데, 엄마랑 같이 오니 꼭 반씩 갈라 먹을 수 있어 좋다.


먹거리 노점에서 한 차례 꺾으니 이번에는 옷과 장신구를 파는 노점이 모여있었다. 딸은 휴가 맞춰 바로 여행 오느라 준비가 미흡했다. 이곳에 걸려있는 귀걸이, 팔찌 보니 자동으로 눈이 돌아간다. 찰랑거리는 깃털 귀걸이와 시원해 보이는 철제 나뭇잎 모양 귀걸이를 번갈아 가며 거울에 대어 본다. 원색 실을 손으로 땋은 여행자 느낌 나는 실 팔찌도 팔목에 껴 본다. 우리 엄마는 뭐든 ‘금’을 좋아한다. 엄마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 엄마도 큼지막한 ‘금’ 팔찌, 목걸이, 귀걸이를 사랑한다. ‘은’이나 ‘액세서리’는 ‘애들이나 끼는 것’으로 항상 무시당하고 만다. 그랬던 엄마. 야시장에서는 조금 달라 보인다. 내 것 잔뜩 구경하느라 간만에 엄마를 불렀더니 이게 웬일? 엄마도 바쁘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차지 않았을 커다란 디자인 귀걸이를 서너 개 이미 바구니에 담았다.


큐빅도 아닌 알 수 없는 싸구려 보석이 잔뜩 박힌 빈티지 감성 귀걸이, 하늘색과 파란색 비즈가 치렁치렁하게 달린 긴 귀걸이, 내 것보다 더 큰 깃털 달린 깃털 귀걸이가 엄마 장바구니에 들었다.

“오, 네가 골라온 것도 예쁘다. 한번 보자.”

“엄마, 근데 이거 엄마가 끼려고 산 거야?”

“응, 이거 엄마가 낄 건데?”

그리고는 내가 골라온 것들도 자연스레 뺏어가 귀에 대어 보는 엄마. 마치 동갑내기 친구와 장신구 가게에 온 느낌이다. 평소에 보던 엄마랑 다르다. 그렇게 나 2개, 엄마 3개 귀걸이를 샀다. 싸구려 액세서리라 금방 변질 될 줄 알면서도 이번 여행 우리의 얼굴을 환히 밝혀줄 것이라 믿으며.


조금 더 걷다 보니 이번에는 옷 파는 가게가 나왔다. 현지에 왔으면 현지 옷이지. 태국 젊은이들이 즐겨 입을법한 옷이 널렸다. 구멍 숭숭 뚫린 민소매 티셔츠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귀여운 프릴이 달린 빨간 체크 오프 숄더 원피스는 태국의 새파란 가로수와 잘 어울릴 것 같다. 요 며칠, 엄마도 더위 때문에 고생 좀 했다. 여행 오기 전 ‘예쁜’ 옷은 여러 벌 샀지만 ‘시원한’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구슬과 큐빅 달린 쉬폰 블라우스, 새로 산 청바지. 예쁘지만 한낮에 입기에는 무리다.

“엄마, 이런 민소매 원피스 한 번 입어볼래?”

“아이고 얘, 아줌마가 어떻게 이런 걸 입어!”

하긴, 엄마가 민소매 상의를 입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굳이 입는다면 한여름이라도 위에 얇은 카디건은 꼭 걸쳐야 했다.

“아줌마가 어때서, 여기 옷 파는 아줌마도 입고 있구먼.”

가게 사장 아줌마 역시 민소매 티셔츠 차림이다. 엄마 또래로 추정되나 짧은 반바지 또한 입었다.

“그래도 좀 그렇잖아.”

“저기 태국 아줌마도 반바지 입고 다니는데? 여기서는 다 이렇게 입고 다녀.”

“아줌마가 이런 거 입으면 욕해.”

여기서 안 입으면 어디 가서 입어볼래? 여기 아는 사람 누구 있다고! 시원하게 입고 다니면 좋지.”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손으로 옷감을 한번 만져본다. 부드럽게 몸에 감기지만 달라붙지는 않을 찰랑한 원피스의 재질.

“시원하긴 하겠어.”

그래봤자 한 벌에 만 원 남짓. 엄마가 안 입으면 내가 입는다는 심정으로 남색 바탕에 노란 꽃이 그려진 민소매 원피스를 샀다.

다음 날, 의외로 뱃살을 가려주는 통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오늘 엄마가 새 원피스를 입고 가겠다고 나섰다. 거기에 어울리는 흰 깃털 귀걸이까지. 한층 더 태국 멋쟁이 같다.

팔뚝 좀 굵으면 어때서. 시원하면 그만이지. 날씨에 어울리는 차림새로 꾸미고 나온 날.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다.

“민소매가 이렇게 시원하네. 아휴, 진작에 이런 것만 사 올걸. 내일은 네 것 입을까~?”

“사이즈 안 맞아서 못 입거든요?”

엄마가 팔뚝, 뱃살 고민을 잊고 잠시나마 자신감 생긴 모습이 보기 좋다. 어울리는 옷을 입고 태국에 더 잘 녹아나는 우리가 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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