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사원보단 카페가 좋구나

대프리카 출신 모녀. 왓프라깨우에서 GG치다.

by 연쇄도전러 수찌

대구 출신 모녀. ‘더위’라면 자신 있다. 한창 더운 8월 초에 엄마 모시고 태국으로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둘이 합쳐 80년을 대구에서 살았는데 태국에서 며칠 못 버티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위치, 시설, 청결, 가격, 조식까지. 모든 면에서 적당한 숙소를 예약했다. 다섯 가지 조건에 모두 조금씩 걸쳐진 숙소라 시설이 두드러지게 뛰어난 호텔은 못되었다. 첫날 저녁 어둑한 시간에 숙소에 들어선 엄마,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다음 날, 간신히 이 숙소의 장점 ‘풍성한 조식 뷔페’로 엄마 마음을 달래고 방콕 거리로 나섰다.


아무래도 관광 첫날은 대표적인 관광지 위주로 돌아야겠지. 오늘은 방콕 관광의 중심지 격인 ‘왓 프라깨우’ 사원과 그 옆 왕궁을 돌아볼 예정이다. 숙소 앞 큰길에서 택시를 잡았다.

“왓 프라깨우, 플리즈.”

호텔 바로 앞에서 서툴게 손 흔들며 택시를 잡아탄 데다, 잔뜩 꾸민 차림새까지. 영락없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퍼스트 타임, 방콕? (방콕은 처음인가요)?”

“네, 엄마랑 함께 방콕 여행 왔어요.”

“웰컴 투 더 방콕! (방콕에 온걸 환영해요)”

유창하지는 않은 영어로 끝없는 방콕 자랑을 늘어놓던 기사 아저씨. 백미러 통해 보이는 그의 눈웃음과 환대 덕분에 ‘태국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 좋다.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표 사는 곳이 나와요. 저기에요 저기.”

“고마워요.”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를 내려두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걸어가는 우리 뒤통수에 다시 신신당부한다.


왕궁과 왓 프라깨우는 우리나라 ‘경복궁’과 부속 사찰(?) 정도의 입지라 방콕에 온 관광객이라면 대개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다. 역시 입구부터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다. 멀리 보이는 황금색 지붕에 한 번 압도되고 초입부터 꽉 찬 관광객 무리에 두 번 놀랐다.

“엄마, 여기 사람 좀 봐……. 그래도 가긴 가야겠지?”

“여기까지 왔으니까 들어는 가 봐야지!”

엄마가 더 열정적이다.

관광객이 조식 먹고 슬슬 구경하러 나왔을 오전. 사원 내부에는 사람이 더 많다. ‘건물 반 사람 반’이다. 사원은 과연 그 명성대로 화려하다. 어디로 눈 돌려도 금빛 번쩍거린다. 수십 미터는 될 법한 금빛 스투파도, 금 테두리에 거울 조각과 보석빛 유리알이 박혀있는 탑도, 흩날리는 듯 조각된 황금 지붕도, 황금빛과 에메랄드빛 불상도 멋지다. 화려한 건물은 좋은 사진 배경이 되어 줬다. 금색에 빨갛고 푸른 빛이 더해진 기하학적 무늬 타일 벽 앞에 사면 얼굴도 덩달아 화사하게 나왔다. 우리는 각 건물의 의미는 잘 모른 채 신이나 이 배경 저 배경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머리를 묶은 엄마는 태국 왕비처럼 단아해 보였다. 엄마 ‘인생샷’ 남겨주기 위해 찍고 또 찍었다. 엄마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편. 이런 곳에서 엄마 일 년 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건져 드리는 건 돈 안 드는 최고의 효도다. 우기답게 작은 빗방울이 시작되었다. 개의치 않았다.


휘황찬란한 왓 프라깨우를 지나 꽃밭이 아름다운 왕궁으로 넘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시나브로 젖은 옷과 기온 때문에 마치 습식 사우나 안에 선 것 같았다. 비를 피하려고 챙겨 온 접이식 우산을 폈다. 우산 쓰고 사진 찍으니 영 별로다. 사진 찍을 때만 우산 내던지며 여러 배경으로 찍고 또 찍었다.

“엄마 저쪽으로도 가 보자.”

“그래, 그래.”

“우와! 여기도 멋지지 않아?”

“으응, 멋져.”

엄마 반응이 영 초반 같지 않다. 그 사진 찍히기 좋아하던 엄마가 여기는 찍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뭔가 이상하다.


“엄마, 힘들어?”

“아니, 힘들긴. 더 봐야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아닌게 아니다.

“우리 조금 쉴까?”

“그래도 돼?”


붐비는 관광지를 빠져나와 바로 앞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에어컨 공기로 가득한 실내로 들어서니 습식 사우나 지옥에서 탈출한 기분이다.

“어휴, 살 것 같네.”

엄마가 적잖이 힘들었나 보다.

“엄마 뭐 마실래?”

“시원하고 달달한 걸로 시켜줘.”

엄마는 손발이 차서 여름에도 시원한 음료를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런 엄마가 시원한 커피를 요구하다니. 날씨가 대단하긴 했나 보다. 엄마가 달달한 바닐라라테를 빨대로 반쯤 쭉 들이키고는, 본심을 털어놓는다.

“하, 이제야 살겠다. 아까 솔직히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사람도 많고 얼마나 정신없던지…! 여기가 천국이다 천국."

그렇게 힘들었으면 아까 말 좀 해 주지. 사진기 앞에 선 엄마 표정은 한없이 밝아서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딸이 계속 더 봐야 한다고 말하니 엄마는 그런 줄로만 알았을 테지. 잔뜩 신난 딸 앞에서 ‘힘들다’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간 쾌적한 카페에서 젖은 어깨를 말렸다. 후덥지근한 기운이 한 김 빠지자 좀 살 것 같았다. 커피로 카페인까지 급속 충전했더니 아침에 나서던 길처럼 기운이 솟았다. 왓 프라깨우 바로 건너편 예쁘장한 카페. 커피 두 잔 마셨더니 우리나라 밥값만큼 커피값이 나왔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엄마가 오후 구경을 이어갈 힘을 얻었으니 됐다.

‘엄마는 힘들어도 힘들다. 이야기 못 하는구나. 내가 눈치를 잘 살펴야 하는구나.’

방콕에서 제일 유명한 사원보다 카페가 더 좋다는 엄마를 보며 작지만 함께할 여행에서 유용할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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