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by 연쇄도전러 수찌

엄마와 어디로 여행 가면 좋을까?


“엄마, 어디 가고 싶은 나라 있어?”

“엄마는 파리도 가고 싶고~ 이탈리아도 가고 싶고~”

“다른 데는?”

“.......”


“근데 유럽 가려면 비행기 12시간 넘게 타야 할걸? 환승이라도 하면 훨씬 더 걸리고.”

“12시간? 그동안 계속 앉아있어야 하는 거니?”

“당연하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거의 자리에 앉아있어야 해.”

“아이고, 그건 너무 하다. 엄마 오래 못 앉아있는데…….”


다행히 아빠 사업이 나아져 엄마는 얼마 전 장사를 그만뒀다. 숨 고를 여유도 없이 흘러온 10년이다. 엄마의 40대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만 해도 아까운데, 그간 엄마 건강도 부쩍 나빠져 버렸다. 게다가 중풍 온 외할머니도 우리 집에 모시게 되었다. 겨우 아이들 다 키우니, 아이가 되어버린 외할머니가 다시 엄마 몫이다.

“할머니 혼자 오래 두고 갈 수 없고……. 엄마도 처음이니까 그럼 좀 가까운 데로 가자.”

짧은 토의의 결론, ‘가깝고 멋진 곳으로 가자.’


엄마 허리 건강 고려해 환승 없이 몇 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 중국, 일본, 동남아로 추려졌다. 최대 기간은 2주일. 그 시간 안에 색다른 경험할 수 있는 문화권? 중국과 일본보다는 동남아시아가 낫겠다.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라오스 정도가 후보였다. 사진 보여주고 엄마가 어디 갈지 고르라고 해 볼까?

“엄마, 여기는 태국 사원이야. 금색으로 온통 발라놓아서 화려하대. 어때?”

“와! 멋지네!”

“엄마, 이 사진이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야. 정글 속 수백 년 전 유적지, 들어봤지? 어때?”

“오, 이것도 멋지네. 이건 엄마도 홈쇼핑에서 패키지여행으로 파는 거 많이 봤어.”

“그래? 그러면 여기도 괜찮단 말이지? 여긴 어때 여긴 도시국가인데 작아도 깨끗하고 볼 것이 많대.”

“깔끔해 보이네. 여기도 멋지다 얘.”

“라오스도 요즘에 한국인이 엄청 많이 간대. 꽃보다 청춘 봤어? 여기 파란 폭포에서 수영도 하고 놀이기구도 탄대.”

“아구, 이건 무섭겠다! 여기 가면 엄마도 수영복 입어야 해?”

“아니, 꼭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

“엄마, 베트남도 알지? 하롱베이?”

“어어 그래 하롱베이 들어봤지. 막 배 타고 하는 곳이잖아. 여기니 엄마도 한번 가 보고 싶더라.”

“근데 우리 여기 다 갈 수는 없어. 이 중에 두 나라 정도만 골라야 해.”

“이거 다 가는 거 아니었어?”

“2주 동안 여길 어떻게 다 가!”

“다 멋져 보이는데, 그냥 다 가면 안 되나?”

“여기 다 가려면 2달은 잡아야 할걸?”

“아이구, 할머니 혼자 두고 그렇게는 안 되지.”

어떤 사진을 보여줘도 그저 좋다고 말하는 엄마. 선택은 내 몫이었다. 어디로 가야 짧은 시간 동안 만족스러운 경험을 안겨드릴 수 있을까? 몇 날 며칠 인터넷을 뒤졌다. 마침내, ‘유명한 곳은 이유가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30년 만의 해외 여행지로 엄마 친구 아줌마들 한 번쯤 다 다녀왔다는 ‘태국과 베트남’을 가기로 했다. 도시와 바다, 산 모두 경험시켜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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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 아시아 최대 관광도시에서 패키지 관광 못지않은 체험과 쇼핑을 할 셈이었다.

시간 여유가 없지만, 딸이 좋아하는 바다 구경도 놓칠 수 없기에 방콕과 가까운 파타야에서 해양 레포츠를 체험하려 했다.

베트남 하노이로 넘어가서 태국과 다른 하노이 도심을 구경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베트남 커피를 맛볼 생각이었다.

하롱베이에서 산과 물 어우러진 풍경을 구경하며 여행 마칠 계획을 세웠다.


엄마랑 30년 살았지만,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엄마 역시 삶에 치여 모두 잊은 것 같다. ‘해외여행’하면 떠오르는 것들, 짧은 시간이나마 모두 함께하고 싶었다.


다른 아줌마들이 해 봤을 법한 경험

그리고 ‘우리 딸’이랑 갔다 와서 해봤다 싶은 경험. 둘 다 중요했다.


2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휴가. 엄마가 지치지 않을 만큼.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 낭비되지 않을 만큼 야무지게 일정을 짰다. 혼자 가던 여행이라면 굳이 예약하지 않았을 숙소 역시 살뜰히 찾고 예약해야 했다. 숙소 위치, 방 청결, 예산, 조식 등 고려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숙소는 주로 둘러보고 결정하곤 했지만, 50대 엄마와 캐리어 끌고 도심을 헤맬 수는 없었다. 다행히 세계적 관광지인 방콕, 파타야, 하노이라 선택지가 풍부했다.


‘기본적으로 깨끗해야 하겠지, 엄마는 아침 꼭 먹으니 조식도 나와야 하겠고, 트윈 침대가 더 편할 거야, 위치는 이동하기 좋게 시내 중심으로 해야겠지.’

라고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모든 필터를 설정한 뒤 검색 버튼을 눌렀다. 교집합을 만족하는 숙소 가격,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휴가철인 8월 초에 여행할 예정이라 숙소 값이 평소보다 더 뛰어있는 상태다. 조금씩 필터 단계를 내려가며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할 때 보다 몇 배로 신경 써야 한다. 그래도 엄마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다.


샌달신고 걸어서 냄새나는 내 발. 엄마는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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