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고 많았잖아요

엄마 우리 여행 갈까?

by 연쇄도전러 수찌

지난 십 년간 온 세상 돌아보고 온 딸. 처음엔 내 생각만 해서 외국 가면 ‘엄마’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먹거리나 작은 기념품 사서 오면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 ‘나’만 생각하자며 떠난 여행길이 길어질수록 종종 엄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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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찻잔을 보면 꽃무늬 그릇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났고, 고급인 척하는 싸구려 캐시미어 상점에 들르면 ‘우리 엄마 빨간 숄 두르면 예쁠 텐데.’ 싶어 괜히 한 장 사게 되었다. 딸이 온 세상 떠도는 동안, 카카오톡으로 건네받은 사진만 스마트폰으로 확대하고 확대해 보던 엄마.


'다음엔 엄마도 모시고 와야지.'

생각은 했다. 그래도 내 욕심이 앞서서 더 먼 곳, 특이한 나라 가고 싶었다. 엄마보다는 내가 우선이었다.

“엄마, 우리 여행 갈까?”

“진짜? 엄마도 데리고 가 주나? 진짜야?”

이렇게 덥석 물 줄 몰랐다.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며 묻고 또 되묻는 엄마. 이토록 좋아하는데, 이 말을 건네기까지 왜 이리 오래 걸렸던 걸까?


엄마가 왜 이렇게 활짝 뛰며 기뻐하는지, 알만도 하다. 30년 전 아빠 만나 딸 하나, 아들 하나 삼 년 터울로 낳고 가정주부가 되었다. 결혼 전에는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엄마들이 대부분 그랬듯 결혼하고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세 살 터울, 서로 쥐어뜯고 싸우는 남매지만 나 닮은 애들 커 가는 재미에 본인 늙는 줄도 몰랐다. 그림 같은 가정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빠의 사업 도전과 실패. 십여 년간 주부로 살았지만, 당장 집에 딱지가 붙으니 달라져야 했다. 경력도 사회 경험도 없는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 예나 지금이나 많지 않다. 수소문으로 시작한 일이 바로 ‘고등학교 내 매점’ 장사였다.


학교 매점 장사가 그렇더라. 학생들 등교하기도 전에 가서 빵과 음료수를 상자째로 배달받는다.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 냉장고와 선반에 채우면 하나둘 아이들이 등교한다. 겨울에는 히터 하나,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서 작은 컨테이너 안에서 온종일 버텨야 하는 일. 쉬는 시간마다 컨테이너에 뚫린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에게 몇백 원 받고 빵과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엄마는 동트기 전에 집을 나서서 해 다 지고도 한참 뒤에야 집에 온다. 하도 찬바람 맞으며 동전받고 상자 뜯어대서, 엄마 손톱 옆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겨울이면 건조해진 굳은살이 찢어져 피가 나기도 한다. 어버이날에 화장품 가게 가서 ‘핸드크림 세트’를 샀다.

“엄마, 손이 이게 뭐야. 핸드크림 좀 가게에 두고 발라. 그리고 일할 때 장갑이라도 껴.”

“어이구, 장갑 낄 새가 어딨니! 장갑 끼면 동전 잘 잡히지도 않는구먼.”

종일 먼지 쌓인 물건 만지고 지폐와 동전받고 내어주느라, 그깟 핸드크림 바르고 발라도 엄마 손은 항상 그대로였다. 엄마가 보낸 낮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 마디가 퉁퉁 붓고 손톱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엄마 손을 잡으면 눈물이 났다. 펜만 잡느라 하얗고 보드라운 내 손.

“손가락이 어째 이래 예쁘노, 우리 딸~”

엄마는 본인 손마디가 어린 대나무만큼 굵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아들 딸, 잘 먹이고 뒷바라지만 잘할 수 있다면.


새벽같이 시작한 매점 장사가 끝난다고 해서 엄마의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학원과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올 시간 맞춰서 저녁 차리거나 때로는 데리러 가기도 한다. 다음날 아이들이 한술 뜨고 갈 국 끓이고 밥도 한솥 안쳐둬야 엄마의 하루가 끝난다. 매점에서 샤니 빵과 빙그레 아이스크림을 팔면서 얼마나 벌었을까? 애들 기죽을까 봐 형편 내색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학원도 보내 달라는 대로 보내주고 40만 원짜리 노스페이스 패딩도 사 입혔다. 딸이 인터넷 강의 듣고 싶다고 하면 그 당시 최신 기기였던 PMP도 당장 하이마트 가서 사냈다. 당신은 파마도 육 개월에 한 번 말고, 다 쓴 립스틱 바닥까지 싹싹 긁어 쓰면서도 내 새끼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 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단언컨대 못한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못 산다. 혼자 애 둘 키우느라 억척 바가지 아줌마가 되어버렸어도, 가끔 갱년기 때문에 우리에게 화를 버럭버럭 내도 우리 남매는 화낼 수가 없다.

엄마는 내가 성실하게 살 수 있는 본보기였고, 우리 남매 엇나가지 않게 붙잡아주는 등대였으며, 제 삶 다 없어지고 문드러지는 줄도 모르고 희생하는 촛불이었다. 그 집 장녀 딸로 살아내느라 나 역시 감정이 촉촉하지는 못하다. 이런 내가 첫 문장부터 눈물이 팍 터져버린 책이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이제 갈 거란다. 잠시 내 무릎을 베고 누워라. 좀 쉬렴.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내게 무한한 양보와 희생을 보여준 엄마. 내가 부족한 경험을 쌓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동안 부러워만 한 엄마. 이제는, 엄마도 한번 외국 구경시켜 드려야겠다. 그나마 잘하는 일인 여행으로 손톱의 굳은살만 하게라도 보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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