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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Oct 29. 2023

당신은 단단한 삶을 위해 놓치고 싶지않은 루틴이 있나요

불량 통조림의 다이어트기


최근에 첫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순천 조계산에 위치한 선암사로 1박 2일간 말이다. 늘 로망으로만 품고 있던 템플스테이. 첫 목적지로 그리도 먼 선암사로 향한 건, 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 때문이었다.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을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창작과 비평사, 1999년)



나는 요즘 드디어 눈물이 나지도, 통곡을 쏟아내야 할 만큼 힘들지도 않게 되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선암사에 가보고 싶었다. 기왕 가게 되었으니 템플스테이까지 해보고 돌아오자, 뭐 이 정도의 각오였다.


산사의 예불은 새벽 3시 반에 시작되었다. 아침 예불에 참석해 보고 싶었던 군손님은 3시 20분쯤에야 간신히 눈을 비비고 일어나 고무신을 터덜터덜 끌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질끈 머리를 동여매고 온 대부분의 참여자와는 달리, 스님들은 법복은 물론 가사까지 단단히 둘러맨 차림새였다.

후에 차담을 나누며 들어보니, 사실 이미 그때는 스님의 하루가 시작된 지 1시간 반도 넘은 때라고 했다. 산사에 사는 스님의 하루는 2시에 시작된다고.


‘2시는 너무 한밤중이 아닌가, 조금은 바깥세상에서 일컫는 ‘새벽’에 가깝게 하루를 시작해도 되지 않는가?’

‘스님은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이 시간에 일어나 새벽 타종과 예불을 진행하실까?’

홀로 공상에 빠져 있으니, 그걸 네가 궁금해할 줄 알았다는 듯이 스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바깥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행자니까 당연히 해야 하지요. 예불을 거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건 스님 본인이 부끄러워서 아마 참지 못할 겁니다.”


순천 시내에서 한 시간을 달려서, 주차장에서도 30분은 산길을 따라 걸어야 닿는 조계산 기슭의 작은 세계. 바깥세상의 명암과 달리 그 세계에서는 그 공간의 규칙에 따라 하루가 흘러갔다. 바깥 세계에서 삼시 세끼를 당연하게 챙겨 먹는 것처럼, 그 세계에서는 당연하게도 하루 세 번의 예불이 진행되었다. 짧게 머무른 관찰자가 다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새벽 예불은 누가, 점심 예불은 누가, 저녁 예불은 누가’ 할 것 없이 물 흐르듯 하루가 진행되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누가 먼저 하는지’ 따위를 따지는 일은 없었다.

목어를 두드려 반대편 산골짜기까지 경배하는 마음을 전하고, 수십 번이나 큰 종을 쳐 아랫마을까지 존경하는 마음을 전하는 일. 삼시 세끼 공양(식사)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산사의 루틴 중 하나였다. 어제도 보고 오늘 아침에도 본 그 부처님 앞에서 또 두 눈을 질끈 감고 간절히 무언가를 기도하는 일이란. 스님들이 그토록 닿고 싶은 어떠한 세계를 위한 끝없는 자기 성찰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스님은 1년 365일을 산다고 했다. 월-금을 일하고 주말 이틀은 쉬는, 1년에 며칠이나마 ‘휴가’가 존재하는 바깥 세계 사람과는 달리. 365일 가운데 다르게 생활하는 날은 없다고 했다. 예불이 끝나면 각자 수행을 하거나 절에서 맡은 업무를 보다가 공양을 하고 또 다음 예불을 준비한다고 했다. ‘왜 해야 하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지’ 따위의 질문은 생각보다 촘촘한 스님의 삶 속에 피어날 여가 없어 보였다.


요즘 흔히 말하는 루틴화 된 생활의 ‘끝판왕’을 보고 다시 기차를 타고 나의 세계로 돌아왔다. ‘성실함’ 따위는 너무나 고리타분한 가치로 여겨지는 요즘이지만. 결국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이 바라는 바에 닿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정성스럽고 참된 실천뿐이 아닐까, 반성이 되었다.


참치보다 카놀라유가 더 많이 든 불량 참치캔 같은 내 삶을 추려내고 싶어졌다. 채에 기름을 거르고 살코기만 얻어내듯, 삶에서도 군더더기를 좀 덜어내고 싶어졌다.

나를 행복하고 흡족하게 만드는 몇 가지 행동이 남았다.


- 내 방은 정신세계의 표출이라는데, 붙잡을 수 없는 정신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붙잡을 수 있는 방이라도 깨끗이 정리하려 부단히 노력하기

- 내 몸은 내가 먹은 걸로 구성되는데, 대단치 않아도 건강한 재료로 저녁을 차려 먹으며 건강한 신체를 쌓기 위해 노력하기

- 기쁜 일보다는 빡치는 일이 많은 현생이기에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데, 그래도 가능하면 웃으려 노력하기

- 24시간 중 10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인간답게 목과 허리가 점점 굳어가는 듯함. 하루 20분이라도 운동을 하며 그 커브를 반대로 꺾어주기

- 커피가 몸에 좋진 않다지만, 정신건강과 현생의 균형을 위해 하루 딱 2잔만 커피를 마시기


등등을 적당한 순서로 조합하니 ‘놓치고 싶지 않은 나만의 하루 루틴’이 생겼다. 매일 이 루틴을 모두 해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0/6보다는 3/6이 의미 있기에. 나는 이 놓치고 싶지 않은 루틴을 닿고 싶은 삶에 다가가게 해주는 첫 단추라 여긴다.


산사와는 먼 오염된 도시 한구석에 살아가지만 ‘도심 수행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 토 달지 않기. 단출하고 군더더기 없는 삶이 주는 약간의 성취를 맛본 뒤, 나는 이 흐름에 중독되었다.


각자마다 걸러진 채에 남겨진 핵심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핵심을 반복하는 일은 분명히 각자의 삶을 단단하게 쌓아준다. 이것은 나의 방구석 철학이 아니다. 천오백 년을 이어온 선암사 스님들의 진리이니 내 외침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를, 지난 일주일을 되돌아보며 삶의 군더더기를 추려내는 작업을 한 번쯤 해보길 권한다. 그런 다음 나를 충만케 하는 작은 성취를 반복한다면, 도심 속 삶 수행자인 우리도 반드시 바라는 바에 닿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당신은 단단한 삶을 위해 놓치고 싶지 않은 루틴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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