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과자책 1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존재만으로

송편 모양 쿠키

 

 엄마가 내 인생의 고민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자매가 독립하고 나면 앞으로 혼자 남게 될 엄마의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던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건방지고 어이가 없다. 나 닮은 아이 하나 기르면서 마흔 살 가까이 먹고도 발 동동 구르며 사는 주제에.      


 결혼 6년 차인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 안은 엄마가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서 가꾸신 과일과 채소들로 풍성하고, 내가 아프거나 우리 부부가 일이 있을 때는 가장 먼저 엄마에게 내 자식을 부탁할 생각을 하며, 주름 개선에 좋다며 엄마가 선물 받은 화장품 중 하나를 선뜻 내게 주시면 거절하는 시늉 한 번 하고는 가방에 잽싸게 챙겨 넣고, 그것도 모자라 친정에서 놀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꼭 엄마가 새로 산 파자마까지 그대로 입고 온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보살핌 안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 우리 엄마가 내년이면 일흔이 되신다. 나는 이 사실이 왜 이렇게 슬플까? 김치도, 간수를 뺀 최고급 천일염도 내가 다 알아서 사 먹을 테니 엄마는 그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작은 일에도 곧잘 흔들리는 나를 지탱해주는 나의 끈 엄마. 이제 나는 엄마에게 단 한 톨의 서운함도 없다. 우리가 함께 살며 겪었던 어려움과 슬픔은 정말 엄마로선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고, 내 뜻대로 인생이 살아지지 않을 때 엄마를 원망했던 마음 모두 다 오해였다. 엄마는 내게 모든 것을 주셨다.  




  지난주 추석 겸, 일주일 뒤가 엄마 생신이라 예쁜 티셔츠 한 장 사드리려고 모처럼 시내에서 엄마를 만났다. 몇 벌 입어보시더니 ‘딸이 사준다고 해서 하나 얻어 입으려고 했더니만 영 마음에 드는 게 없네’라고 말씀하시고는 더운 날 괜히 우리 딸 멀리 나오게 했다고 미안해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우리 조만간 성서방 차 타고 더 큰 쇼핑몰에 가서 구경도 하고, 경치 좋은 데 가서 바람도 쐬고 오자고 했다.


 맛있는 거라도 먹고 헤어져야겠다 싶어 엄마랑 팔짱을 끼고 식당가를 향해 걷다가 뜨거운 가을 햇볕 아래 드리워진 우리 둘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 차이가 나는 작은 키와 단발머리를 한 엄마의 그림자가 꼭 중학생 같았다. 사진에 담아 둘까 하다 쑥스러워서 그만두었다. 가을 햇볕이 더 뜨거운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엄마가 옛말에 ‘봄볕은 딸을 쬐이고 가을볕은 며느리를 쬐인다.’는 말이 있다고 해서 둘이 크게 웃었다.     






이전 11화 나의 아주 작은 실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