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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과자책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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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가꾸어 가는 생활

잼 마들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월요일. 주말 동안 밀린 집안일을 몽땅 해치운 다음 커피 마실 물을 올려놓고 싱크대에 기대어 서 있는데 그날따라 유독 책장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아, 갑자기 싹 들어내서 닦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게 커피는 다 마셨다 싶다. 아니나 다를까 전기포트 물이 바글바글 끓어 탁하고 멈추는 소리와 함께 행동을 개시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마치 얼마간 계획한 것처럼 시작된 ‘책장 뿌시기’  

 창문을 활짝 열고 책장 위에 있는 화분들부터 창틀에 내놓기 시작했다. 원래 같으면 화분들을 왼쪽으로 밀어 오른쪽을 닦고 다시 오른쪽으로 밀어 왼쪽을 닦고, 책은 굳이 꺼내지 않고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의 끄트머리부터 그 앞에 남은 여백에 쌓인 먼지만 대충 쓱쓱 미는 식이지만 오늘은 얄짤없다. 팔짱을 끼고 서서 책장을 한 번 예리하게 싹 훑고는 손을 탁탁 털고 물건들을 다 끄집어냈다.    



 

 두루가 이제는 시시하다고 한 책,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묵혀두었던 내 책 몇 권을 인터넷 중고서점에 내놓았더니 무려 아메리카노 8잔 값이 나왔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더 팔 것이 없나 꽂아두려고 정리해놓은 책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데 아직은 미련이 남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책을 정리하고 나니 두 칸이 빈다. 아, 이것만 끝내고 커피 마시려고 했는데 내 몸은 자연스럽게 책장 옆에 ㄱ자로 놓인 수납장을 열어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잘 가지고 놀지도 않다가도 없어지면 귀신같이 알고 찾는 두루. 오늘만큼은 장난감의 행방을 물어본다면 부서져서 버렸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고 쓰레기봉투에 담아 곧장 내놓았다. 그렇게 정리하고 남은 장난감으로 책장의 빈칸을 채우고 아주 만족스럽게 다시 커피 마실 물을 끓였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물이 끓기도 전에 수납장의 위치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드는 것이 아닌가. 장난감 없는 수납장이 책장 가까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식탁 위치와 바꾸기로 하고 수납장에 남은 잡다한 물건들을 안방 장롱 안 여기저기에 쑤셔 넣은 다음 생활용품 및 식료품 저장고를 만들기로 했다.


 수납장 양쪽 끝에 걸레를 깔고 살살 끌어다 식탁 옆에 놓고, 식탁은 번쩍 들어 수납장이 있던 자리에 놓았다. 곧장 다용도실로 가서 세탁기 선반 위에 꾸역꾸역 박아 놓은 두루마리 휴지와 갑 티슈를 꺼내 수납장에 열 맞춰 정리한 다음 한 칸은 애주가 남편을 위한 술 저장고로, 나머지 한 칸은 나의 베이킹 재료들을 채워 넣었다.

 만족! 대만족!


 정리한답시고 좁은 집안을 종종걸음으로 쏘다니며 힘을 썼더니 뒷목에 땀이 흘렀다. 책 팔아서 돈도 벌었겠다 집 앞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내친김에 장미꽃도 몇 송이 사서 꽃병에 꽂아 식탁에 두었다. 시원한 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며 우리 집 아담한 거실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그래, 당분간은 무리해서 이사할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조금씩 바꿔가면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학창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감쪽같이 집안 구조가 확 바뀌어 있었던 날이 떠오르며 우리 엄마가 왜 그렇게 한 번씩 그 큰 가구를 혼자서 이리 놨다 저리 놨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두루가 좋아해서 자주 만드는 마들렌에 잼을 넣었더니 꽤 괜찮은 디저트가 되었다. 자주 먹는 과자에도 가끔 변신이 필요하겠다고 느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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