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비서가 되었을까?
중학교 2학년.
학교에서 돌아온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집 안 가득 붙은 빨간딱지들이었다.
그땐 그게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충격도 덜한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까지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분명 내 인생에 깊게 새겨진 첫 번째 사건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내게 닥친 크고 작은 어려움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먼저 챙기고, 보살피는 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되었다.
대학교 3학년.
갑자기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낯선 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불편함을 알아차려 도와주는 그 모습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영어는 be동사조차 헷갈릴 정도였지만,
매일 새벽 6시 40분,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학원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게 내 리듬이 되었고, 곧 삶의 중심이 되었다.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영어 공부는
월드비전 번역 봉사로 이어졌다.
처음엔 단순한 연습이자,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번역하는 한 줄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진심이 담긴 다리가 된다는 것을.
그 후로 10년 넘게 이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용돈을 아끼려고 시작한 화장품 체험단 활동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기록을 위해 만들었던 블로그는
어느덧 나와 함께한 지 18년째다.
기록은 나를 정리하게 했고,
언제나 나를 살리는 힘이 되었다.
국내 항공사, 외항사를 가리지 않고 수차례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불합격’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친구가 대형 병원 비서직을 소개해줬다.
막상 시작해 보니,
비서라는 일은 단순한 전화 응대나 스케줄 조율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2년간 병원에서 계약직 비서로 일하고,
잠깐 다른 일을 한 뒤
은행 본점의 고위 임원 비서로 다시 2년을 근무했다.
임원들의 회의 스케줄 조율, 출장 준비, 외빈 접대, 골프 예약까지.
치밀한 일정 관리와 빠른 대응이 필요한 일이었다.
덕분에 내 대응력과 책임감은 한층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비서라는 직무를 넘어, 나만의 커리어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게 지금 다니고 있는 외국계 회사의
HR팀 오피스 어드민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면접 당시, 외국계 회사 특성상 영어 인터뷰가 기본이었지만
내가 10년 넘게 해온 월드비전 번역 봉사 이야기를 들은 면접관은 이렇게 말했다.
“10년 넘게 꾸준히 번역 봉사를 해오셨다니,
영어는 충분히 검증된 것 같아요.”
그 한마디 덕분에 예정되어 있던 영어 면접은 면제되었고,
나는 예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직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업무 범위는 더 넓어졌고,
조직의 운영을 안에서부터 들여다보는 시야도 얻게 되었다.
내 인생엔 몇 번의 큰 슬픔도 있었다.
2016년, 사랑하는 외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2021년, 아직 40대였던 막내이모를 암으로 잃었다.
그 후 홀로 남은 외할머니는 지금도 늘 마음에 걸린다.
최근에는 자주 찾아뵙고, 시간을 함께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 나는,
갓생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틈틈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봉사도 꾸준히 이어가며,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돌아보면,
승무원을 꿈꾸던 나도,
비서로 일했던 시간도,
지금의 HR 어드민으로서의 나도
모두 같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