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날, 울음으로 남은 감사
오랜 시간 꿈꿨던 승무원이라는 길이 멀어질 즈음,
친구의 소개로 대형병원 비서직 제안을 받았다.
나는 그저 당장 일할 곳이 필요했기에,
너무 깊은 고민 없이 수락했다.
그런데 그곳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곳이었다.
약 60명이 넘는 교수님들이 계시는
연구실을 관리하며
총괄 비서 역할을 맡았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했다.
내가 도와드리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따뜻한 말 한마디, 식사 한 끼,
소박한 선물로 나를 먼저 챙겨주는 분들이 많았다.
첫 직장이었지만,
지금도 자주 그 시절이 그립다.
월급은 적었지만,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내 인생 최고의 직장.
그렇게 추억 가득한
첫 직장에서의 2년을 마치고 퇴사하던 날,
총무팀 분들에게
정성껏 준비한 작은 선물을 건넸다.
의사 선생님들 한 분 한 분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도 어디서든 잘할 거예요.”
따뜻한 말들이 쏟아질수록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엉엉 울며 고개 숙여 인사했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곳이 너무 좋았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내 커리어의 시작이 그 병원에서였기에,
나는 지금도 누군가를 도우며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2년의 대학병원 비서를 마치고 곧바로
1년은 전혀 다른 일을 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비서’라는 자리로 돌아왔다.
국내 대형 은행 본점,
외환그룹에서 글로벌 그룹까지
2년간 세 분의 임원분을 모셨고,
그 사이 나는 더 단단해지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매일 새벽 5시에 눈을 뜨던 날들.
골프 부킹, 외부 손님의 전화 연결,
나보다 높으신 분들에 대한 '앞존'과 예절.
나의 일정이 아닌,
임원분의 시간을 정확히 흐르게 하기 위해
매 순간 치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년 중 마지막 9개월을 함께한 임원분.
퇴사하던 날, “너무 잘했고, 수고 많았어”
그 한마디에 나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우는 나를 보고 울컥하신 차장님이
“우리 고생한 샤론 씨에게 박수 한 번 주세요”
라고 하셨고,
'박수칠 때 떠나라 ‘는 말처럼
나는 진짜 많은 분들의 박수를 받으며
비서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시절 함께 일했던
임원 운전기사님과도 참 많은 정을 나눴다.
당시 수행기사를 하고 계시던
우리 아빠가 떠올라
기사님을 잘 챙겨드렸고,
기사님은 그걸 기억해 주셨다.
밥도 사주시고, 퇴사 때는 선물도 주셨다.
그런 따뜻함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은행 비서 시절부터 나는 매일 아침
출근룩을 사진으로 남겼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오늘 하루도 예의를 갖춘 마음으로
출근하고 싶었다.
은행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기록은
어느덧 나만의 루틴이 되었다.
거울 앞에 선 나 자신을 카메라에 담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다잡았던 시간들.
옷차림 하나가 오늘의 나를 다잡는 태도가 되었고,
그 꾸준한 기록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4년간의 비서직을 마쳤다.
직책은 끝났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사람’
이라는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비서직 4년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