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비서’에서 ‘오피스 어드민’으로.
비록 2년의 파견 계약직이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직무 전환의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었다.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보수적인 은행과는 달리,
이곳은 훨씬 더 자유롭고 유연했다.
내가 맡은 일은 회사에서도 처음 생긴 직무였다.
정해진 매뉴얼도, 기준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직접 그 정답을 만들어가야 했다.
문제는 일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없으니
나도 모르게 업무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그래도 회사는 파견 계약직인 나에게도
웬만한 대우는 동일하게 해 주었다.
보너스는 제외였지만,
복지나 문화적인 부분은 똑같이 누릴 수 있었다.
은행 시절부터 이어진 습관 덕분일까.
이곳에 와서도 나는 매일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났다.
출근 후 회사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때론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도 했다.
일찍 오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나는 다시 부지런한 사람,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입사 직후, 첫 번째 미션은
해외 임원단 20여 명의 방문 준비였다.
개개인의 식성,
특징까지 반영해 호텔을 예약하고,
매 끼니를 조율해야 했다.
분 단위 일정 체크는 기본,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내가 책임져야 했다.
입사 두 달 만에 자연스럽게 야근을 경험했고,
그 시절 나는 매일 스타킹이 해질 정도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처음 겪는 고됨에, 눈물도 났다.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외국 직원의 방문은 지금까지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텨내자,
나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결국 2년의 파견 계약을 마쳤고,
회사는 나에게 이번에는 자체 계약직 오퍼를 주었다.
고민이 많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받아들이고 다시 입사했다.
그리고 어느덧 3개월이 더 흘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권태기가 찾아온 시기이기도 하다.
‘퇴사’라는 봉투를 마음속에서
꺼냈다 넣었다, 반복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배우고, 또 성장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 할 만한
네임밸류 있는 회사.
착하고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는 좋은 동료들.
매일 노출되는 영어 환경 속에서 생기는 작은 도전과 배움들.
그리고 그런 나를 위해 영어 공부까지 지원해 주는 회사.
외국계 회사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