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 말씀 하나는 정말 잘 듣는 아이였던 거 같다. 지금도 아련히 기억나는 어릴 적 학교길에는 먹어도 먹어도 늘 배고픈 성장기 어린이들의 주머니를 냉큼 열게 만들었던 떡볶이 아줌마가 계셨고, 하나둘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기 삼매경에 빠지던 뽑기(뽀끼) 아저씨도 꼭 계셨다. 그 추억의 뽀끼는 '달고나'라는 고상한이름과 함께 '오징어 게임'에 등장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쳐버리고 말았지만, 오늘 내 추억 한 자락을 붙들고 등장할 주인공은 바로 떡볶이이다.
도대체 왜 길에서 파는 식품들은 죄다 '불량식품'이라 칭하는지조차 납득이 잘 안 가던 어린이 시절, 엄마는 길에서 그런 거 사 먹지 말라는 주의를 단단히 주시곤 했다. 길에서 파는 음식에는 먼지가 가득하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요즘은 그저 숨만 쉬어도 몸에 치명적이라는 미세먼지를 들이마시며 사는 세상이다 보니, 그 시절 떡볶이에 내려앉았을 길거리 먼지 따위야 뭐 그리 안 좋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거 먹고 자란 어린이들이 지금껏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하 간에 나는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아무리 먹고 싶어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도 꿋꿋이 참고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 말씀을 철석같이 잘 들어야 할 것 같은 우리 엄마가 나보다 먼저 낳은 울아부지의 아들이 몰래몰래 길에서 떡볶이를 사 먹어 왔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엄마가 먹지 말라고 했는데~라는 이유가 애매모호한 분노가 올라왔다. 그러나 실상 그 저변에는 그 맛있는걸 몰래 먹어 왔다는 오빠의 용기에 감탄하고, 또 '혼자만' 먹어 왔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꼈던 것이 분명하다.
한 번은 오빠가 같이 먹으러 가자기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선뜻 공범자가 되길 자처했다. 그런데 몰래 떡볶이 먹으러 나가며 왜 나는 새 운동화를 신고 나갔을까? 군더더기 하나 없는 연핑크색의 천 운동화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세상 맛있는 떡볶이 먹느라 무아지경이 되는 대신 새 운동화에 빨갛고 선명한 떡볶이 국물을 증거로 남기고 돌아오는 우를 범했더랬다.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반전은, 지금껏 내 기억에 그 증거로 인해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은 없다. 그러게 뭐하려고 '몰래' 먹는다며 그 맛있는 밀떡을 씹는데 심장마저 쫄깃하게 만들었을까.
아이를 키우며 경험해보니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겠노라며 뭐든 집에서 재료를 사다 직접 만들어주는 일이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요즘은 밀 키트도 너무 다양하게 잘 나와서 사실상 부득부득 어려운 길을 택해 돌아가려 하는 엄마들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그 편리함에 한번, 또 그 맛에 두 번 넘어가 밀 키트를 종종 이용하는데, 어쨌든 가공식품이다 보니 웬만하면 피하자 생각만 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 어릴 적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정말 모든 걸 다 집에서 직접 해주셨다. 그중엔 진짜 요리가 즐거우신 어머님도 계셨겠지만 과연 항상 즐겁기만 했을까. 매일 식구들을 위해 힘듦을 마다하지 않고 죄다 직접 해내시던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정말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싶을 때가 많다.
우리 엄마는 길에서 파는 밀가루 떡볶이가 뭐가 맛있냐며, 부득이 방앗간에 가 쌀떡을 사다가 떡볶이를 만들어 주셨다. 엄마가 만든 떡볶이는 항상 지나치게쫄깃했고(=질겼고), 고추장이 많이 들어가 진했으며, 너무 단맛이 강했다. 즉, 우리 엄마의 떡볶이 양념 조합은 (길거리 떡볶이 대비) 불균형 그 자체였다.
길거리 떡볶이가 압권인 이유는 적절히 보드랍고 질기지 않은 밀가루떡에 하루 종일 끓여 닳고 닳은 양념의 깊은 맛과 적절한 농도의 맵+단+짠맛의 조화에 있을진대, 우리 엄마의 깊은 자식 사랑 덕분에 나는 그 맛있는 떡볶이를 눈으로만 먹어야 했다.
최근에는 소위 전국의 떡볶이 맛집들에서 자신들의 레시피를 그대로 적용한 밀 키트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두어 번 구매해 먹어보며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았더랬다. 어릴 적 엄마 말씀 잘 듣느라 많이 못 사 먹었던 그 맛을 이제는 집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니 정말 신나는 일이건만, 떡볶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릴 때마다 더 진하게 생각나는 건, 그다지 맛이 없어도 맛있는 척 먹어야 했던 그 달고 맵던 엄마의 떡볶이다.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은 뭐가 됐든 정말 다 맛이 좋았었는데, 유독 우리 엄마의 떡볶이만큼은 참 별로였다.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는 걸 하늘에서 엄마가 보신다면 눈을 흘기실까 아니면 웃으실까. 그 시절 엄마가 해주셨던 다양한 음식들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가 참 많은데, 나는 우리 딸에게 어떤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소 귀찮고 움직이기 싫어도, 그래도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을 남겨주고 싶어 나름 고민도 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기도 한다. 나도 내일은 아이에게 떡볶이를 한번 만들어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