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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ug 03. 2021

소울푸드가 기껏 과자 쪼가리라니..

 얼마 전이었다.

갑자기 어릴 적 먹던 과자가 떠오른 것이다.

아주 가끔씩 엄마가 '미제 집'에서 사주시던 치즈 과자인데, 그야말로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미 8군 부대에서 어떻게 비공식 루트로 빠져나온, 그야말로 미제(美製)들을 모아 두고 파는 가게에 가야만 살 수 있는 제품이었기에, 한통을 쥐어 주시며 엄마는 늘 신신당부하시곤 했다.


"조금씩 아껴서 먹어야 해!"


그러나, 엄마의 당부가 무슨 소용, 뚜껑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가요 손이 가'의 연속이었고 언제나 바닥을 긁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끝은 아쉬운 마음으로 손가락에 묻은 짠 가루까지 쪽쪽 빨아먹고서야 마무리가 되곤 했다. 게다가 오빠 눈에 띄기 전에 모두 먹어 치워야 한다는 엄청난 경쟁심은 결코 내 손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큰 요인이었다. 언제나 먼저 태어났다는 지위적(?) 우선권으로 뭔가 내게 늘 억울함을 선사하던 오빠가 없을 때면, 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내 식욕을 거침없이 채워주곤 했다.


어릴 적 그때의 생각 끝에 치즈과자가 너무도 먹고 싶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나마 치**가 가장 유사한 맛을 내주기에 그걸 꼭 사 먹겠노라 찾아갔건만, 없는 것이다! 모처럼 나를 추억 속에 헤엄치게 만들어준 그 과자를 기어이 먹겠다고 갔는데, 그 허탈함이라니.. 동네 마트로부터 조금 떨어진 편의점까지 모두 순회하며 치즈맛 과자를 그렇게도 애타게 찾았건만, 요즘 유행하는 맛은 따로 있는 건지 내가 찾는 건 아무리 뒤져봐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실망을 끌어안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주 어릴 적 미국으로 모두 이민을 가신 외가 식구들 덕분에, 나는 직간접적으로 미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우리 부모님 세대야 한국 전쟁의 끝자락을 경험하신 분들이다 보니, 우리 아버지는 종종 미군 차량을 쫓아 뛰어가다 군인들이 던져주는 초코바를 받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해주시곤 했다.

우리 엄마는 또 어떠했던가. 그 시절 통역관으로 미군 부대를 드나드시던 외할아버지께서 가끔씩 커다란 통조림 깡통에 들어있는 치즈를 사 오시곤 했다는데, 그 시대에 어울리지도 않는(??) 입맛을 보유하셨던 우리 엄마는 그 치즈를 옆구리에 끼고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셨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한번 먹어보겠냐며 한 숟갈씩 퍼주면, 무슨 이런 비누 같은걸 먹냐고 모두 뱉어버리곤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치즈를 많이 드신 덕인지 우리 엄마는 생전에 골다공증 따위는 염려할 이유조차 없는 건강한 통뼈의 소유자셨는데, 그 유전자를 받은 덕분에 나 역시 어릴 적 치즈를 입에 달고 살았고 지금껏 아주 튼튼한 통뼈를 자랑하고 있다. 엄마로부터 딸로 이어지는 전통이라도 되는 건지, 지금 나는 치즈를 입에 달고 사는 딸아이를 키우고 있고, 아이 역시 뼈대가 튼튼함을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군인을 쫓아다니며 미제 초콜릿을 받아 드신 내 아버지나, 외할아버지께서 사다주시던 미제 치즈를 원 없이 퍼 드시던 내 어머니나, 방식의 차이일 뿐 미국 음식들을 일찍이 접해보신 탓인지, 내가 자라는 내내 가끔씩 미제 집을 드나들며 미국 음식을 사다 쟁여 두는 건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심지어 월급을 '봉투'에 담아 받던 시절, 아버지는 월급날이면 기분 좋게 가족을 위해 그 어딘가 신촌 너머 동네에 있었다던 미제 집에 가서 엄마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한통 사시고, 아이에게 주기 위해 미제 이유식을 잔뜩 사 커다랗고 누런 종이봉투에 가득 담아 안고 버스를 타셨다는데, 그러다 버스 안에서 봉투가 찢어져 모두 쏟아지는 바람에 낭패를 겪었던 사연, 월급봉투를 소매치기당한 사연,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짠한 옛날이야기들이다.




우리 엄마가 단골로 이용하는 '미제 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갈 때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신나는 기분을 느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망사 양말 모양의 주머니 안에 가득 들어있는 버터 스카치 사탕과 지팡이 사탕이 나를 유혹했고, 다 마시고 나면 어느 집이나 보리차를 끓여 넣어두곤 했던 D 오렌지 주스 하며, 하나를 죽어도 다 먹을 수 없었던 달디 단 초코바 등등, 어린 내 눈엔 그곳이 천국이었다. 물론 갈 때마다 무언가를 얻어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다가다 먹고 싶은걸 하나라도 얻어내는 날에는 그야말로 쾌재를 부를 따름이었다.


요즘은 공식적으로 수입되는 제품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많을 뿐만 아니라, '직구'라는 시스템은 너무도 손쉽게 다른 나라 상품을 구해주는 다리가 되어주어, 사실상 물건을 구입함에 있어서는 이제 정말 나라 간에 경계라는 게 사라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아무데서나 외국 제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 왜 유독 내가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치즈 과자는 눈에 안 띄는 건지, 아쉬운 마음으로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찾아보니 사려고 들면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긴 한데 어쩐 일인지 막 12통씩 판다. 어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 많은걸 사서 어떻게 다 먹나 싶은 데다, 기껏 무슨 과자 사는데 금액조차 만만치 않아 그냥 체념했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딱 3통만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낸 것이다. 어머 이건 사야지! 바로 주문을 마치고 그렇게 난 또 뭘 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며 며칠을 보냈다.




현관문 앞에 택배 박스가 와 있다. 요즘은 외출을 극도로 제한하다 보니 사실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게 상당수인데, 그래서 주문하고 나면 도착해서 박스를 열어볼 때까지 뭘 샀는지 잊어버리고 지내기 일쑤다. 아마도 그래서 택배 아저씨가 너무나 반가운 모양이다. 사시사철을 수고해주시는 산타 할아버지가 돼주시니 말이다.

'이게 도대체 뭐지'하는 의아함을 가득 안고 박스를 뜯었는데, 그 안에는 다소곳이 줄지어 그토록 먹고 싶던 치즈 과자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라고, 세상에 그렇게나 반가울 일인지? 내 얼굴을 볼 길은 없었으나 아마도 세상 해맑게 웃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정말 애라도 된 거처럼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뚜껑을 열어젖혔다. 누구는 싫다 할지도 모를 꼬릿 한 치즈 냄새가 훅 올라왔다. 냄새로 과거를 불러오는 '프루스트 효과'가 바로 일어났다. 조금씩 아껴 먹으라는 우리 엄마의 주의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조심스레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하아... 세상에... 이 과자 쪼가리가 도대체 뭐라고...'


나는 그 시절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마냥 행복하게 와그작와그작 치즈 과자를 씹어 넘겼다. 그 짜디짠 과자를 계속 씹고 있자니, 그것은 단순히 그냥 과자가 아니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있었던 어린 시절 그 어느 한 조각의 기억을 고스란히 불러다준 나름의 소울푸드였던 것이다. 갑자기 아삭하던 과자는 입안에서 눅눅해지고 문득 코끝이 시큰해졌다.


현재를 사느라 바빠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느라 정신없어서, 늘 잊고 지내는 그때 내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사무치게 그리운 엄마 생각에 결국 눈물이 뚝 떨어졌다.

엄마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치즈 내가 많이 사드릴 수 있는데...

저물어 가는 하루 끝에, 치즈과자와 함께 아쉬움 한번, 그리움 한번을 그렇게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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