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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Dec 21. 2020

중년 아줌마의 BTS 입덕기

오빠는 안 되겠고 뭐라고 불러야 하는거니

"다이노마잇~다이노마잇~"


다 이놈아! 아니죠. 다이노마잇~ 맞습니다.


이것은 우리 집 여섯 살 꼬마가  BTS의 다이너마이트 부르는 소리다. 아이가 케이팝 노래를 듣고 좋다 느낄 만큼 자라기도 했지만, 내가 요즘 귀가 닳도록 열심히 듣는 노래이다 보니 나름 본인이 알아듣는 대로 요상한 영어를 써가며 열창을 하고 있다.


이 친구들이 데뷔를 하던 해에 나는 결혼을 했다. 뭐라도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 한다면 새로운 출발선이 같은 해였던 것이다. 사실 처음에 '방탄 소년단'이라는 이름이 다소 장난스럽다는 생각까지 했었고, 그저 내 삶이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 사실상 전혀 관심 밖이었다. 게다가 케이팝이란 새로운 장르가 설정된 이후 이런 대중음악은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왔다. 소위 '가요'를 들으며 자라난 세대인 나에게는 김동률 오빠의 '이제~ 버틸 수 없다고~'를 듣는 순간 가슴 찌릿 애절해하던 것이 대중음악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일 뿐이다. (심지어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가수도 마지막이었던 듯)

 



◆ 라떼는 말이야...

내가 어떤 가수들에게 열광하던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6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당시 주옥같은 한국 가수들도 많았지만, 우리 세대라면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룹이 있으니 바로 미국의 '뉴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이다.(아 옛날 사람)

뭔가 각자의 개성과 멋있음을 온몸에 바르고 나타난 다섯 명의 미국 오빠들이 내 맘을 들었다 놨다 했을 뿐이고, 'Step by step'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엔 그야말로 심장이 쿵 내려앉았더랬다. 당시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듣던 시절이라 늘어날 정도로 노래를 돌려 들으면서도 늘어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애지중지 하던 기억이 난다. 미국 방송(당시 AFKN 하나였다)을 돌려보다 우연히라도 우리 오빠들이 나오면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그 행운에 방방 뛰기 마련이었고, 그 잠깐 나오는걸 '녹화' 해보겠다며 비디오테이프를 걸어놓고 리모컨을 재빨리 누르는 순발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우리 오빠들을 남겨놓을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요즘처럼 굿즈가 보편화되어있지 않던 시절이다 보니, 매월 발행되는 음악 잡지 등에서 사은품으로 브로마이드를 증정한다 하면 냅다 쫒아 가 잡지를 사거나 문방구에서 사진을 코팅해 책받침으로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덕질의 전부였었다.

그 시절 내맘을 들끓게 만들었던 New Kids on the Block 과 카세트 테이프


그 이후로 사실 어떤 연예인에 그렇게까지 열광해본 기억이 딱히 나지 않는다. 더구나 아이를 얻으며 치열한 육아 현장을 살아온 지난 몇 년간의 세월을 돌이키자면, 나의 문화생활은 '뽀로로'와 '핑크퐁'이 전부였다. 그나마 지난해 미국에서 '상어 가족'이 열풍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케이 동요'에 부심을 느껴야만 했던.... 그런 나였다.




단순히 BTS가 미국의 각종 대중음악상을 휩쓸고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정말 자랑스럽고 기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2년 전 발표됐던 'idol'이라는 곡에는 다양한 국악의 요소가 가미되었는데, 실제 노래 중간중간 등장하는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러'와 같은 추임새는 그야말로 이 노래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무대 의상도 한복을 응용한 복장으로 진정한 한국의 멋을 보여 주었다. 이들이 우리에게 안겨준 것은 그저 세계적인 유명세뿐만이 아니라, 우리만 아는 그 무엇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보며 느꼈던 '쾌감'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겠다고 갖은 노력을 한다한들, 이들의 노래 한곡을 통해 단숨에 전 세계의 눈에 각인되는 이 효과를 감히 따라갈 수나 있을까. 올해 멤버 '슈가'가 발표한 '대취타'라는 곡에도 전통 한국의 모습이 담겼고, 최근 경복궁에서 촬영한 다이너마이트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우리나라 전통의 모습이 현대의 대중음악을 만나 이렇게 재해석될 수 있다니, 지켜보는 내내 심장이 짜릿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또 우리의 문화가 세계의 눈을 향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느끼게 된다. 

다양한 국악요소가 가미된 2018년 발표곡 'idol' 의 퍼포먼스 무대


한 가지 더 짚어 보자면, 이들이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했던 'Love Myself' 캠페인은 그야말로 학교폭력과 왕따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인해, 유엔(UN)에서 관련 메시지를 연설하는 아이돌의 모습을 내 생애에 보게 되었으니, 이들의 영향력이란 실로 대단하구나 싶다. 아무리 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전문가와 멘토들의 메시지가 넘쳐나도, BTS가 외친 'You can't stop me loving myself' 한 소절이면 다 되는 거였다. 이렇게 대중문화가 미치는 영향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예전에 욘사마 보겠다며 비행기에 몸을 싣던 일본 아주머니들을 보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왜 저런데?'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사실 지금 중년의 아줌마가 된 나 역시 BTS가 너무 멋있다며 그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이 요즘 같은 우울함 가득한 집콕 시대에 최고의 위로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BTS가 자주 언급되며 그들이 해외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기록들을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들어왔는데, 그야말로 정점을 찍은 올해는 나 같은 케이팝 아웃사이더마저도 귀를 기울이고 찾아보게 만들었다. 더구나 이 시점을 겨냥해 만들었다는 '다이너마이트'는 나뿐만이 아니라 우울한 요즘 시절을 살아가는 전 세계인들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선사한 실로 명곡이라 생각된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거의 '아들뻘'이 될 수도 있었던 이 멋진 청년들을 오빠라고 부를 수도 없고 뭐라 불러야 할는지 호칭이 이렇게나 고민일 줄이야... 마치 얼굴 마주 보고 불러볼 것처럼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가 싶지만, 이것은 진정한 팬심의 시작점이기에 중요한 문제라고 나 홀로 외쳐본다.




사람은 물리적인 나이가 들지라도 그 감성이 늙어가는 것은 아니라 한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이 뭘 알겠냐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세대를 넘나드는 좋은 문화 콘텐츠들이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 외국인들의 리액션 영상이 유튜브에 정말 많은데, 단순히 젊은 세대뿐만이 아니라 연세가 지긋하신 부모님 세대까지 함께 뮤직 비디오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참 보기가 좋다. 외국인들의 그런 모습은 자연스러운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세대 간의 선긋기가 너무 분명한 경향이 있는 듯하다. 어떤 누군가는 나에게 아줌마가 주책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줌마도 설렐 만큼 너무 막 멋진 건 누구나 인정하는바 아닐는지. 나는 이담에 우리 딸이 자라나 어떤 누군가의 열성팬이 된다면, 같이 팬클럽도 가입하고 함께 콘서트도 가고 싶다. 그게 BTS라면 더욱 좋을 테고.. 오래도록 BTS의 그 멋짐과 열정 지속되기를!

'여보 나 아미 좀 가입하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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