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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y 03. 2021

어느 관종의 고백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이다.

하루 중 몇십 분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예전 한때 기업 SNS 채널 운영 관리를 맡았던지라 그야말로 하루 종일 소셜 미디어 세계 속에서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기에 당연히 내 개인 계정 운영도 열심이었는데, 지금은 사실 형식적으로나마 가끔씩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정도로 하나의 계정을 가지고 있기는 다. 렇게 끔 이용하는 정 수준으로 '애착'을 떼어 내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린 듯하다.


나는 사실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나의 성장과정 중에 어떠한 원인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남들도 이 정도는 신경을 쓰고 사는지의 여부는 잘 파악이 안 되지만,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주변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는 걸 보면 상대적으로 난 진정 관종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나의 마음속 질문에 대해 한 강연과 책에서 설득력 있는 해답을 던져 주었다.


인간의 뇌는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


우연히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마침 좋아하는 강연 프로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서은국 교수님이 인간의 행복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계셨다. 요컨대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이라 사람을 만날 때 행복 전구가 켜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처럼 사람 좋아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좀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 요지였다.

거봐라 싶은 마음이 들며 남편에게 내가 더 행복한 거라고 열심히 떠들어댔다. 나는 아주 전형적인 인간인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생기는 폐해가 있으니 내 기분이 가라앉는 순간엔 나만 빼고 세상은 다 행복한 것 같아 우울감을 극대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나는 SNS 안 봐요'라는 사람들도 많이 접했는데, 다소 쓸데없는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소셜 미디어를 왜 그리들 열심히 하는가에 대해 최근 읽은 '메타버스'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가 소셜미디어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기록하려는 목적도 있으나 그 저변에는 자신이 겪은 좋은 일에 대한 인정과 축하, 나쁜 일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셜 미디어에 사진이나 글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기대감이 생기고 이때 인간의 보상 기대 시스템이 작용하여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실제 타인이 내가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주면 엔도르핀이 분비되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보상심리는 끝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피드를 올리고 더 많은 반응을 기대하게 된다고 한다.


사실 내 경우에도 기껏 피드에 사진과 글을 올렸는데 막상 반응이 별로인 경우엔 혼자 의기소침해진 경험이 실제 있다. 좀 어이없지만 그게 뭐라고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없이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의 특성상 친구관계가 얽히고설키고 다 연결되어 있다 보니 어떤 사람이 내 게시물에는 반응도 안 해주고 아는 척도 안 하면서 다른 사람 게시물엔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주는 걸 발견하면, 나와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단순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나 역시 어떤 게시물이 그다지 내게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거나 크게 관심 없는 내용일 경우 그냥 무심코 넘겨 버리는 경우가 있긴 한데, 사실 상대방도 나에게 그와 같이 느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나는 그 사람과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을지라도 상대방은 나에 대해 그 정도 관심을 줄 만큼 가까운 관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반응을 잘해주고 안 해주고의 여부도 사실 개개인의 성향 차이일수 있건만, 뭐 이런 시시콜콜한 생각에까지 이르다 보면 내가 도대체 왜 이 가상의 공간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지가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생기곤 한다. 그 혼란의 포인트는 늘 이것이다.

나는 네게 '관심'을 주었는데, 왜 너는 내게 반응해주지 않는 거니...




Do not confuse my personality with my attitude.
My personality is who I am but my attitude depends on who you are.
(나의 성격과 행동을 혼돈하지 말아라. 성격은 나의 본모습이고, 행동은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사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릎을 탁 쳤었다. 크게 공감을 하고 보니 단순히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었는지를 생각해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세심히 더 살피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했었는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는 시덥잖다고 표현할지 모르겠는 그 소셜미디어 상에서조차 상대방의 반응을 나에 대한 애티튜드로 보게 되곤 한다.


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어떤 관계에서든 정도의 차이일 뿐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게 기본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내가 너에게 관심을 보였으니 너도 내게 관심을 줬으면 좋겠는데 상대가 그렇게 안 해주면 마음이 섭섭해지는 게 아니겠나..

다들 사느라 바쁜데 나만 너무 시시콜콜 남들에게 관심을 많이 주고 있나 싶기도 하고, 나는 잘해준 것 같은데 무심한 상대를 보면서 내가 뭘 잘못했던가 곰곰이 생각하는 걸 보면 내가 그냥 좀스러운 사람인 거 같기도 하고.. 반대로 나는 별로 잘해준 것 같지 않은데 내게 손 내밀어주고 잘해주는 사람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왜 그러지?라는 의문을 갖기도 하고.. 이렇게 적어가며 생각해보니 인간관계라는 게 이렇게까지 나노 디테일이었나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주를 한 것 같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정의도 사실 새롭게 내려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라인에서의 인연이 참으로 다양해졌다. 사람은 어차피 한 다리 건너면 다 연결돼있다고 하던데, 실제 온라인에서는 그물처럼 얽힌 관계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그야말로 죄짓고 살면 안 되겠단 생각이 더 많이 드는 요즘이다.


소셜미디어 메타버스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면,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람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일반적인데, 이것은 '암흑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암흑 효과란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의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에 심리적 경계를 낮추는 경향이 있어 상대방에게 쉽게 다가가게 해주는 특성이라고 한다. 또한 잦은 만남으로써 갖게 되는 친밀감이란 게 있을진대, 요즘 같은 세상에 특히나 온라인 상에서 거의 매일 마주하는 관계들이 많다 보니 노출 빈도에서 오는 친밀감이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내용 출처: 메타버스, 김상균 著)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오히려 가까웠던 친구, 가족들과의 만남이 예전 같지 않아 그야말로 친밀하던 사람들과 너무 소원해진 게 아닌가 싶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러나 뼛속까지 사회적인 우리 인간은 이렇게 온라인으로 발 빠르게 이동하여 어디서든 만남을 추구하며 관심을 갈구하고 있건만, 서로가 거리를 두어야만 안전한 세상이라니.. 마치 백신이 나오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처럼 지난 한 해는 그나마 백신 개발을 기다리는 마음에 인내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백신의 실체가 드러난 지금은 오히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순서를 기다리며, 그 또한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에 되려 좌절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서의 고민보다 온라인상의 고민은 사실상 아주 가벼운 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가령 직장에서 얽히는 사람이나 결혼 등을 통해 매이게 되는 관계 등등은 끊어내지 못해 안고 가야 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부분이 있으나, 온라인의 관계란 사실상 내가 언제든 끊어내고자 하거나 혹은 그냥 안 보겠다 결심한다면 그 순간을 결정짓고 실행할 수 있는 칼자루가 내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다 보니 어찌 보면 온라인 중심의 삶을 통해 우리는 마음껏 '관종 짓'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게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진상짓도 하는 쪽이나 보는 쪽이나 언제든 끊어낼 '선택'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음껏 나를 드러내도 되는 세상, 또 그렇게 나를 드러내야 연결이 되는 세상.. 나는 지금 그 어디쯤에 걸쳐 있는 건지, 언제나 과도기에 끼인자들은 이렇게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간은 인간을 마주해야 행복 전구가 켜진다니 관심을 갈구하는 건 그저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본능일 뿐 그것이 유치하다거나 미성숙한 자아 표출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에 관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데, 나는 그냥 그렇게 뼛속까지 사회적인 인간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라나보다. 관심을 갈구하던 지나치게 관심을 부어주던, 그 어느 쪽으로든 관종이면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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